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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있어도 재난 보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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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연합 박종학

 

지난해 12월7일 발생한 사상 최악의 원유유출사고에 언론의 책임은 없었을까?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를 통해 본 언론의 역할과 사회 방재시스템의 문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언론이 사고 직후 오염지역의 복구작업을 전달하는 데 치중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재단과 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충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1월31일 오후 2시부터 충남 태안에서 2부로 나눠 진행됐다.

국민성원 이데올로기의 함정…‘IMF 금모으기’처럼 사건의 본질 놓쳐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이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전국민적 성원에 집중하다 보니 사건의 본질과 원인 규명에 소홀하게 된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감동적인 자원봉사의 물결을 강조하다 보니 ‘100만 명의 참여만 있었지 1명의 가해자’는 볼 수 없었다”면서 “언론은 국민의 참여를 조직화하는 부분을 넘어 책임을 규명하는 역할까지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이름 짓기…삼성이라는 아젠다 놓치게 해

이 교수는 또 “이번 원유유출사고는 잘못된 이름짓기의 전형적 사례”라면서 “삼성중공업이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문의 초기 보도에서 삼성과 허베이스피리트라는 명칭이 빠졌다”고 지적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삼성이라는 중요한 아젠다를 놓치게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고는 분명한 인재였다”며 “책임자가 누구이고 또 어떻게 하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정도였지만, 언론들은 인재가 아닌 천재의 프레임으로 사건을 다룸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에 관심 보이지 않는 지역언론

이기동 대전충남민언련 매체감시팀장은 “지역언론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특히 한 태안 주민의 자해사건이 지역방송뉴스에서 ‘보상금에 불만이 있었다’는 식으로 단신 처리된 사례를 들어, “지역에서 발생한 재앙임에도 지역주민들의 직접적 목소리를 거의 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팀장은 또 “이런 가운데 지역언론들이 방제효과를 알리는 보도에 치중했다”며, “피해가 당장 치유될 수 없는 것임에도 과도하게 이를 보도함으로써 ‘할 일을 이제 다한 거 아니냐’는 뉘앙스로 상황 자체를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역시 “지역신문이 그 위상을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지역언론이 자기 정체성을 생각한다면 지역민들의 관점에서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태안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작명 방식 자체가 지역주민들의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보도에 좀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전교육 없이 여론에 떠밀려온 봉사자 있어”

 

신동만 KBS 환경스페셜 팀장은 “이번 사건의 큰 화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방제 활동을 했다”는 점이라며 “자원봉사자가 사고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마치 죄인인 것처럼 몰아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언론이 워낙 자원봉사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계속 보도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여론몰이에 떠밀려온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이들에 대한 사전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신 팀장은 “내 주위에선 다녀온 사람들이 질병을 호소하기도 한다. 알고 보면 오염된 곳 아닌가?”라고 말하며 “신문이든 방송이든 재난보도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쌍방과실’ 발표를 언론이 형식적으로 받아써”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생태사회본부처장은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경위가 1:9 정도로 삼성에 과실이 있는데도, 검찰은 쌍방과실이라고 발표했고, 언론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형식적으로 받아썼다”며 “의도인지 무지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사건 규명이 어렵고 복잡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염 처장은 이어 “삼성이 법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있고,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앞으로 삼성중공업 고발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면서 △가해자 책임 규명 △제도 개선 △주민들의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지원 운동에 대해 언론이 적극적으로 보도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표했다.

 


ⓒ 환경연합 박종학



“피해자 아닌 독자 중심 보도였다”

이연 선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기름 유출사고에 대해 “재난은 있어도 재난보도는 없었다”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재난 보도에는 보도자체의 기능은 물론 방재와 부흥의 기능이 있고, 이 세 가지 프레임이 균형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복구작업 위주로 보도 돼 피해주민의 보상문제가 잘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재난 보도는 피해자 중심으로 가야 맞지만 이번 보도는 독자 중심의 보도였다”며 “피해규모에 대한 정확한 보도로 어민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이 생업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난보도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취재구조 자체의 불가피성”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는 “보도당사자로서 지적된 문제들을 모두 수긍한다”며 “한국 언론들은 환경문제 보도에서 무책임하게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그 이유에 대해  데스크들이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 없다는 점  현실적으로 취재구조 자체가 브리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당시 사고가 연말에 일어나 자원봉사자가 많이 늘어났고  대선기간이라 선거이슈에 보다 주력할 수밖에 없던 것도 사고 현장에서 사려 깊은 눈으로 보도하기 어려웠던 요인으로 지적했다.

장호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시 “이번 재난보도의 문제점은 실질적으로 한국언론의 메커니즘 상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번 사건은 생태환경, 해양오염, 특정 지역의 대형 재난 등 그동안 한국 언론들이 잘 다뤄보지 않은 주제였다”며 “그 때문에  교통사고처럼 배 두 대가 충돌한 것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또 하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도 형식이 미담기사”이기 때문에 “너도나도 자원봉사 내용을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당시 취재했던 기자들이 태안에 살고 있지 않아서 지역 분위기를 잘 몰랐고, 주어진 시간도 짧았기 때문에 결국 브리핑 내용과 현장에 내려 가서 보고 온 것을 적당히 섞어 쓰는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도 사고는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언론은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 장기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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