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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유출 사고와 환경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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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꼭 1주일이 되던 지난 15일, 인구 6만7000명인 태안군에 전국 각지에서 온 5만여명이 가세해 기름 제거작업을 벌였다. 죽음의 기름띠에 휘감겨 신음하는 사고 현장에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무수한 생명들이 질식사했을 바다의 검은 모래와 자갈과 바위를 모두가 닦고 또 닦았다.

지난 1주일을 돌이켜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이 너무 많다. 바지선 예인선단과 유조선이 충돌하기 전 무선교신이 되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기름이 유출되기 시작된 후 헬리콥터나 함정 등으로 선체보수 기술자 몇 명만 유조선에 태워 날랐더라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국은 열악한 기상 상태를 이유로 출동하기 어렵고, 해안까지 기름띠가 오지 않을 것이란 예측만 발표하고 24시간을 그냥 허비했다.

환경오염의 피해는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환경이론이 있다. 이번 서해안 사고도 예외는 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른바 ‘맨손어업’ 주민들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소득증명을 하기 어려워 그동안 피해보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서해안 일대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한 만큼 정부는 빈곤 어민들의 생계 및 생존 대책을 최우선적으로 세워야 한다.

관계 당국이 줄기차게 뿌려댄 유처리제로 현재 80%가량의 기름은 물 속에 가라앉아 조류를 타고 확산 중에 있다. 전문가들은 유처리제 사용으로 해저 생태계는 치명적으로 파괴되었을 것으로 진단한다. 안면도를 지나 군산 앞바다까지 기름덩이가 확산돼 향후 유처리제 사용 결정의 타당성 여부가 새로운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는 최첨단 석유화학 산업과 현대 인류 문명의 뒤안길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고가 난 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전 세계 190개국 정부 대표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등 1만여명이 모여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석유기반 사회가 누려온 물질적 풍요와 욕망을 떠받치고 있는 하부구조가 다름 아닌 낙후된 원유 수송체계라는 사실과, 그 낡은 체계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는 현실은 21세기의 역설이다.

선진국들은 1989년 엑손발데즈호 사고 후 안전 규정을 만들고, 이중선체를 의무화하는 등 법 제도를 정비해 사고 예방 시스템을 마련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95년 여수 앞바다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12년 만에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정유회사들은 유가 담합을 통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해하면서도 운송비 몇 푼 아끼려고 사고 위험성이 높은 단일선체 유조선 사용을 고집하고,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해상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의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는 한편 관련 법·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정박해 있는 유조선을 바지선이 와서 충돌했으니, 자동차 사고처럼 바지선에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해상에서는 동력선인 유조선이 무동력선인 바지선의 접근과의 충돌을 피해야 할 피항 의무도 있다.

주민 피해보상과 해양생태계의 원상 복구를 위해 정부는 물론 이번 사고에 연루된 기업들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12월 17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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