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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자기를 던지는 저항

자기를 던지는 저항!

마음을 흔드는 무서운 시위 ‘삼보일배’… “투쟁하는 노조 깎아내린
다” 비판적 시각도

“한 걸음 내디디며 전생 현생 제가 지은 죄를 고해하고, 한 걸음 내디디
며 치열하지 못한 수행의 자세를
가다듬고, 한 걸음 내디디며 두 손 모아 발로참회의 절을 올리겠습니다.”
(수경 스님의 ‘새만금을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를 기도수행을 떠나며’ 중에서)

5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둘레는 마치 파도가 일렁거리는 듯
했다. 이날 오전 동작구 보라매공원을
출발한 삼보일배 행렬이 여의도를 돌고 있었다. 맨 앞에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등의 뒤를 600명의 사람들이 따라 삼보일배를 하고 있었다. 행렬을 따
라 일어섰다 엎드리며 출렁이는
인파는 지난해 월드컵 때 파도타기 응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함성
이 없었다.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은 말 없이 걷다 절하는 동작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시위 때면 등장
하는 날카로운 확성기 소리도 잠잠하고,
날선 구호를 외치는 성난 목소리들도 들리지 않았다.

사진/ 함성은 없다.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은 말 없
이 걷다 절하는 동작만을
되풀이한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앞장선 삼보일배 행렬.(류우종 기
자)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다

길에서 삼보일배 행렬을 지켜보던 김민수(39·서울 여의도동)씨는 “며
칠 전 신문에서 삼보일배를 하던
스님 한분이 쓰러졌다는 기사를 읽었지만 별 느낌이 없었다. 속세를 떠난
분이 세상일에 너무 나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솔직히 새만금 사업을 해야 할지 중단해
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산도 없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절하는 성직자들을 보면서 생명
을 살리려는 그분들의 진실한 마음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목소리 큰 사람이 행세하는 요즘 백 마디 말보다 행
동으로 보여주는 이분들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고 말했다. 털어놓자면, 두달 전 문규현 신부, 수
경 스님, 김경일 원불교 교무,
이희운 목사가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305km를 삼보일배로 출
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새만금 갯벌과 온 세상의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성직자들
의 의도야 백번 공감했지만, 세 걸음에
한번 절하며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걸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
다.

절을 해본 사람은 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절은 고역이다
.

발을 가지런하게, 몸을 바르게 하고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인다. 손으로
옷을 들어올리며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이어 왼 무릎을 땅에 댄다. 왼 팔꿈치, 오른 팔꿈치 순으로 땅에 대
고 두 손바닥을 펴 이마를 거쳐
머리 위로 쳐들고 이마를 땅에 대는 순서로 절을 한다.


사진/ 최근 의사표현 수단으로 활발히 벌어지는 나홀로 시
위.(한겨레 김종수 기자)

군복무를 할 때 연대장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연대장은 부대 안에 있는
사찰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했다.
덕분에 사찰에는 초코파이, 사과, 떡, 음료수가 넘쳐났다. 매주 일요일 오
전 종교활동 시간에는 ‘잿밥’에
눈이 멀어 불교를 선택한 병사들이 급증했다. 법당을 관리하던 군종병은
‘초코파이 불자’이 들끓자 묘안을
냈다. 30분가량 쉼 없이 부처님께 제대로 절을 한 뒤 이를 완수한 병사들에
게 초코파이와 떡, 음료수를
나눠줬다. 30분가량 절을 하면 허리가 끊어져나가는 것 같고, 팔다리가 사
시나무 떨듯 후들거린다. 불심이라곤
없던 ‘초코파이 불자’들은 “오늘 부처님한테 한 따까리 당했다”고 투덜
거리며 법당으로 가는 발길을 끊었다.

세 걸음마다 한 차례 절을 하면 한번에 2~3m 이상 가기 힘들다. 더구나 수
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50대가 아닌가. 성직자들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800리 길 동안 절을 하
며 걸을 수는 없다고 봤다.
이런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삼보일배가 용두사미가 될 것으로 지레짐
작했다. 그래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 초 삼보일배 행렬이 안양, 과천 등 서울 근처에 왔다는 이
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했지만 한편으로 ‘이분들이 남들이 안 볼 때
는 적당히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또 ‘수경 스님과 김경일 교무야 절을 하겠지만, 이 목사
와 문 신부는 과연 절을 할까’
등의 시시껄렁한 호기심도 품었다.

간디의 ‘소금 만들기 행렬’을 떠올리다

5월21일 삼보일배단의 일정을 확인하고 과천으로 갔다. 21일 오후 행렬
을 쫓아 과천정부청사에서 남태령
방면으로 30분가량 걸어가는데 뙤약볕이라 금세 땀이 나고 힘들었다. 과천
체육공원을 출발해 남태령 고개쪽으로
가고 있는 삼보일배 행렬을 봤다. 이들은 후끈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매연
을 맡아가며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며 가고 있었다. ‘묵언’이란 명찰을 단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
경일 원불교 교무, 이희운 목사
등의 땀에 절고 햇볕에 탄 얼굴을 보는 순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삼보일배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탐(탐욕), 진(성냄), 치(어리석음)를 걷어
내고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불교의
수련법이다. 절은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
는 몸의 동작으로서 가장 경건한 예법이다.
진정한 예법은 마음속에 교만함이 없어야 하는데 절은 교만과 거만을 떨쳐
버리는 행동예법이다.

사진/ 70년대 보편적이었던 학생들의 스크럼 행렬. 구호를 외치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 곧바로 흩어지곤
했다.('75보도사진연감)

삼보일배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온몸으
로 참회하고 변화를 기대하는 수행 정진이기에
마음이 닫힌 사람들에게도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한 환경운동 단체의 활동가는 삼보일배에 나선 성직자들을 보면서 부끄럽
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환경운동가들이 뭘 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어려운 여
건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그때그때 현안을 따라가다 보면 큰 흐름을 놓치거나 현실에 머물
러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언론의 관심을 끌어야 하고,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시의적절한
이벤트성 행사도 기획해야 합니다. 남의 잘못을 묻기 전에 스스로 참회의
길을 자청한 이분들은 고행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생명 경시 생각을 돌이켜보게 했
습니다.”

삼보일배 행렬은 인도의 지도자 간디의 ‘소금 만들기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소금에까
지 부당한 세금을 물리자, 1930년
3월 간디는 제자들을 이끌고 322km 떨어진 바닷가로 향했다. 만 60살이 넘
은 간디는 지팡이를 짚고
선두에 서서 젊은이보다 빨리 걸었다. 행진 도중 간디는 물레를 돌리고 집
회를 열기도 했다. 행렬이 통과하는
인도 사람들은 간디 행렬의 뒤를 2~3km씩 따랐다. 목적지인 바닷가에 다다
른 간디 일행은 소금을 만들어
영국이 만든 소금세금 제도를 무시했다. 소금 행렬은 물레와 함께 영국에
대한 인도 민중의 비폭력 불복종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낮게 너무 길고도 짧은 길을 걸었습니다. 아무 소
리 내지 못하고 그저 낮게 엎드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낮게 머리를 조아리고 가장 낮은 시선으로 땅
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먼지와 매연으로
검게 찌든 아스팔트마저 안타까이 가슴에 품었습니다. …당곡 사거리에서
보라매역까지 그리 길어보이지 않는
거리, 잰 걸음으로라면 30분 안에, 차로라면 10분 안에 닿을 그 길을 낮게
엎드리고 또 엎드리며 두
시간여를 지나 허리 굽혀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더
무섭고 힘있는 데모…. 두분은
자신을 내놓음으로써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그래서 그 어떤 돈과
권력과 이권으로도 흔들 수 없는
영혼을 흔듭니다.”(배리은희씨가 삼보일배 홈페이지(3bo1bae.or.kr)에 올
린 글)

3보1배, 불교계에선 일반화돼 있어


사진/ 돌멩이와 화염병이 난무했던 80∼90년대의 살벌한 거리시위.(한겨
레 이정우 기자)

‘소리 없이 강한’ 삼보일배에 대한 찬사에 대해 8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
가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는
이진수(40·서울 중랑구 면목동)씨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80년대 학생운동이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도덕성에다 군
부독재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섰기
때문이었다. 87년 6월항쟁 때나 88년 통일투쟁 때 연행을 각오하고 도로에
드러누워 연와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은 자기 희생적인 학생운동을 지지했다. 삼보일배에 참가한 성직
자들이 남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자세는 숭고하다. 하지만 이런 성직자들 모습과
‘나라가 거덜나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겠다’는 노동자들을 대비시켜 은연중 노조를 깎아내리는 시각도 보인
다. 이런 주장은 삼보일배 정신과도
동떨어진 편향된 것이다.”

수경 스님과 김경일 원불교 교무뿐만 아니라 가톨릭 사제인 문규현 신부
와 이희운 목사가 불교의 수행법인
삼보일배에 동참한 것은 생명과 평화란 큰 가치에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열
었기 때문이다. 문규현 신부는 절을
하고 이희운 목사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들고 세 걸음 걷고 엎드려 한번
기도하는 삼보일도를 한다. 4개
종교 성직자들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기도수행에 작은 차이는 큰 문
제가 되지 않았다.

문 신부는 부안을 출발할 때 “생명과 죽음, 그 가운데 중립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
없이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는 없으니 이 고행을 기꺼이 받겠습니
다. 나의 땀 한줌, 나의 기도 한마디가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의 생명들과 공감을 이루고 나눠질 수 있도록 간절히
마음을 모으겠습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바다와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느님을 생각할 때 목사의 한 사람
인 저는 이 생명 죽임과 어촌공동체의
파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기에 하나님께 간절히 새만금 갯벌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위해 기도합니다”고 말했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만 불교계에서 삼보일배는 일반화되어 있다.

삼보일배는 92년 3월 통도사에서 열린 조계종 행자 교육 때 처음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극기훈련하느냐’, ‘체력단련하느냐’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가장 기억
에 남은 행자 교육 프로그램으로 꼽는
행자들이 많다. 90년대 후반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확대되어 사찰수련대회
가 열리면 삼보일배가 필수 프로그램으로
들어갔다.

5월31일, 서울시청 광장으로

사진/ 지난해 11월20일 수경 스님, 지율 스님, 문규현 신부가 천성산과 새
만금을 살리기 위해 스페인
발렌시아 ‘람사협약’ 회의장 부근에서 실시한 삼보일배.(환경운동연합)

지난해는 직장직능 불교단체에게도 삼보일배가 확대되었고 의사표시 수단으
로도 확대되었다.

지난해 7월 조계종 포교원이 대구 동화사에서 연 전국직장직능불교단체 임
원 및 지도자들도 삼보일배를 하였고,
지난 9월 통도사에서 열린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창립 2주년 기념법회에서
도 삼보일배가 등장했다. 지난해 5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광화
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삼보일배를 했고,
지난해 8월에는 대한불교청년회, 한국대학생 불교연합회 등이 서울 탑골공
원에서 조계사까지 통일을 향한 청년불교
삼보일배를 했다. 지난해 7월에는 수경 스님 등이 북한산 살리기 삼보일배
를 했고 지난해 11월20일 수경
스님, 지율 스님, 문규현 신부가 천성산과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스페인 발
렌시아 ‘람사협약’ 회의장 부근에서
삼보일배를 한 적도 있다.

삼보일배 참가자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의 중단을 계기로 탐욕과 교만으로
그릇된 인류문명을, 정부의 쟁책기조를,
우리들의 삶을 전환하는 새 문명 운동의 계기로 삼자고 한다. 이들은 5월31
일 오후 2시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자연에게 용서를 빌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 회복을 호소할 예정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자료출처 :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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