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일반 관련자료

[한겨레21]삼보일배의 끝

삼보일배의 끝

삼보일배 기도는 이제 우리 사회 모두의 참회를 촉구하고 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데 우리 모두 책임이
있다”고 온몸을 던져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목불인견의 처참한 고행을 외면
할 길이 없다.

새만금’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까닭은 순전히 ‘삼보일배’(三步一排) 기
도수행 중인 성직자들 때문이다.
3월28일 전북 부안의 해창갯벌을 떠난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
무, 이희운 목사 네분이 국도를
따라 ‘세 걸음에 한 차례’씩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서울을 향해 올라오
기를 50여일이다.

수원을 지나 과천을 거쳐, 일정에 의하면 5월23일에 서울 사당동을 경유한
다. 목적지인 서울시청까지 자그마치
305km다. 일언이폐지하여 이 혹독한 참회기도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시대 새만금은 무엇인가

누가 이들을 이 좋은 계절, 5월에 아스팔트 맨바닥에 몸을 투신하게 만들
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자그마치 12년간 우리 사회의 엄청난 에너지를 탕진하고도 부족해 아직도
기승을 떨치고 있는 ‘새만금 망집(妄執)’이다.
그러므로 다시 정색하고 질문한다. 우리 시대, ‘새만금’은 무엇인가?

‘새만금’은 개발시대에 붙여진 전북 부안-김제 사이의 갯벌 이름이다.
12년 전, 영남지역에 비해 호남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사실을 참지 못한 전직 대통령이 당시 신군부 출
신 대통령을 압박해 따낸 정치흥정이
‘새만금 갯벌 매립사업’이다. 잘 산다는 일이 곧 경제발전이고, 경제발전
은 길을 넓히고, 여기저기 다리를
놓고, 굴뚝에서 연기가 펑펑 나게 하고, 멀쩡한 집 허물어 새로 짓고, 대량
생산에 대량소비하면서 호기롭게
많이 버리고, 책상 위에 지도를 펴놓고 잣대로 일직선을 그어 방조제 쌓은
뒤 멀쩡한 산을 허물어 갯벌을
메워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새만금 사업은 그런 개발욕구에 강박
적으로 시달리던 시절에 내린 무지의
결정이었다.

그러므로 광기어린 개발이 ‘참다운 좋은 삶’에 반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제는 그 대가로 치러야 할 정신적·실질적
비용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개발로 얻은 눈부신 성취가 그 대가로 잃어버
린 비용을 상회하지 못한다는 진실에
수긍해야 한다. 가장 뛰어난 최고경영자(CEO)일수록 무한정의 발전과 끝없
는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나라, 파괴되는 산천이 내는 소리를 일찍 들어버린 소수의 사람들이 말
했다. ‘새만금은 안 된다’고.
그렇지만 일찌감치 그 목소리들은 묻혔다. 묻혔지만 그 소리들은 덜 꺼진
불씨처럼 되살아나곤 했다. 책임질
기회가 허락된 지난 정권 때도 갯벌을 살리겠다는 생명의 소리들은 불합리
한 절차를 통해 묵살되고야 말았다.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참회해야

환경운동하는 일부 명망가들은 내가 보기에 이 일에 집중하지 않았다. 백
화점식 과시용 환경운동, 팽창주의와
독단주의의 악취, 이벤트 중심의 성찰적이지 못한 ‘화려한 환경운동’은
권력과 기업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마침내 ‘생명’을 살리는 일이 본업인 종교인들이 이 나라 환경운동에 뛰
어들었다. 종교인들의 생명사랑 실천은
마땅한 일이지만, 환경운동하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
다.

삼보일배 기도는 이제 우리 사회 모두의 참회를 촉구하고 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된 데 우리 모두 책임이
있다”고 온몸을 던져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목불인견의 처참한 고행을 외면
할 길이 없다. 이 고행으로 성직자들이
세속에서 얻을 게 없으므로 비로소 우리 사회는 엄청난 감동의 기회를 얻
게 되었다. 새만금 갯벌이 설사 메워져도
우리가 잃어버리면 안 될 것들을 성직자들은 말하고 있다. 비극적이지만,
새만금이라는 재앙이 삼보일배라는
정신을 낳은 셈이다.

자원이 부족한 이 나라가 무엇으로 세계를 감동시킬 것인가? 문화란 무엇
인가? 흥행에 성공한 문화만 가치
있을까? 아니다. 대박과 관계없는 삼보일배와 같은 평화운동만이, 대영제
국의 폭력과 간디의 비폭력이 등가(等價)로
평가되듯이 우리 사회가 고이고 썩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삼보일배는 이제 중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천이나 사당동
이나 시청앞이 어떻게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네분 성직자들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충분하고도 족하다.
그분들을 서둘러 모셔야 할 곳은
이름난 환경운동가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시청의 잘 마련된 행사장이 아니
라 병원 응급실이다.

최성각 | 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 소장

자료출처 : 한겨레21

admin

정책·일반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