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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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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행동의 상징이다.”

내일 당장 변화가 오지 않더라도 약간의 차이는 분명
생긴다.

작은 차이의 첫 걸음은 나무를 심는 것이다.

– 왕가리 마타이-

광주에서의 노벨평화상 정상회의 개최소식(6월15일 ~ 17일)은 우리에게 또 다른 관심을 갖게
했다. 바로 케냐의 왕가리마타이 박사가 참석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였다.

‘왕가리 마타이’박사(65세, 현 케냐 환경자연자원부 차관)는 환경운동가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아프리카에서 펼친 그린벨트운동이 궁극적으론 지구촌 평화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환경운동가로서는 최초로 200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환경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환경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당시 이 환경운동가에 대한 수상이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전 세계 논평가들은 당황스런 수상이라고도
했으며, 구체적 인물을 거론하며 “우리는 세계 평화를 위해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경우에 수여되는 노벨평화상을 더 선호할 것이다”하는
논평에서부터 “노벨평화상이 계속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수여되면 노벨평화상에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며 노벨평화상을
받기엔 잘 안 알려진 사람 즉, 평화상을 받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에 이르기가지 불만스런 논평이 팽배했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기존 노벨평화상이 세계 인권이나, 자국의 정치적 반민주 억압에 항거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수여된 것과는 다르게, 구체적인 환경보호운동에
대한 가치 평가를 통해 선정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환경보호’는 “세계 평화, 인권, 생존의 문제를 위해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행동이다‘
라는 것은 이미 세계 정세를 통해 증명이 되고 있다. 나일강 등 강을 중심으로 한 물분쟁, 아마존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숲을
지키기 위한 국제적인 움직임, 각종 환경규제, 에너지 문제, 화석연료 사용저감을 위한 노력, 이에 나아가 노골적인 석유 즉 에너지
문제에서 비롯된 전쟁 등 굵직한 국제 문제에서부터, 국소적인 환경문제는 평화, 생존, 인권, 경제문제와 직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이 여성의 2004년 노벨평화상 수상은 노벨평화상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적인 환경운동가와의 기쁜 만남

6월 17일,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가 열렸던 김대중컨벤션센터 로비에서 왕가리 마타이 박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일행쪽으로 언론에 실린 사진 등에서 본 익숙한, 그래서 바로 왕가리 마타이 박사로 바로 알아 볼
수 있는 아프리카 전통의 화려한 색상 복장과, 머리수건을 한 그리고, 생각보단 훨씬 젊어 보이는 흑인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왕가이 마타이박사를 비롯한 일행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 사전 약속된 기자인터뷰를 끝내고 마침내 기다려온 이야기 나눔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의 공동의장, 중앙 사무총장에서부터 새로 활동을 시작한 새내기 활동가들, 20여명이 함께한 자리는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가치와 신념으로 환경운동을 펼쳐온 동료애를 함께 느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서 왕가리 마타이 박사와 함께 한 간담회
▲김대중 컨벤션 센터에서 왕가리 마타이 박사와 함께 한 간담회

우리 환경운동연합, 그리고 주요 활동내용과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우리 단체의 이해를 갖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 반핵, 댐반대, 새만금갯벌등 갯벌보전활동, 기후보호, 그리고 국제연대활동, 특히 아시아권의 환경운동 및 시민운동의
지원 활동 등을 중심으로 소개를 하고 한정된 시간이므로 가능한 왕가리 마타이박사의 말을 많이 듣자하고, 주로 질문에 답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왕가리 마타이 박사는 우선 본인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개인의 상이 아닌 환경운동이 세계평화를 만들어가는 구체적 실천이며 이런
활동을 하는 모든 일들에 내린 상이다라는 의미부여로 말을 시작하였다. 그분의 환경운동에 갖는 소신과 신념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1977년부터 펼쳐온 나무심기운동-그린벨트 운동은 참 우연히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무심기를 통해
훼손된 밀림을 되살리게 됨으로써 기상재난에 대한 대비, 토양유실 방지 등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또 가난한 케냐여성의 일자리까지
함께 만드는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환경보전과 빈곤퇴치가 함께 맞닿아 있다며 적극 그린벨트 운동을 펼쳐나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본인의 조국 케냐의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현재 케냐를 넘어서 아프리카 전역에 3천5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나무심기가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케냐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배경을 보면 한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온 이 운동은 엄청난 일이며 또 험난한 과정이었다.

우리의 선배 활동가들도 그러했지만, 구속과 가택연금, 폭행 때론 목숨까지 담보를 해야 할 이런
일들을 지속하게 했던 근본적인 힘은 무었이었냐는 질문에, 환경이 나아지면 주민의 삶 또한 나아진다는 확신과 신념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먼 나라의 환경운동 후배 동료들에게 그런 믿음과 신념을 가지라는 당부와 그런 믿음은 꼭 좋은 결과를 이끈다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펼쳐진 ‘아나바다’운동과 비슷한 일본에서 본 모타이에나이 운동을 소개하며, 순환형사회를 만드는
시민적 실천(본인의 고향 아프리카의 나무심기가 시민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한 풀뿌리운동차원에서 행해진 것처럼)의 중요성을 또한번
강조를 한다. 미국의 기후보호를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거부에 대한 비판의 말과 함께, 올해 12월 케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한국의 환경연합이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1시간 밖에 여유가 없어 가볍게 만나지만 다음에 우리
환경연합이 초청할 것이니, 꼭 방문해 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다.

한 시간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현재로써의 많은 공감과 함께 앞으로 함께 해야 할 과제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이미 자리를 잡은 그분의 그린벨트 운동은 늘 새롭게 계속 될 것이며,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그 가치는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그 뜻과 가치를 이미 함께 하고 세계의 모든 환경운동가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또한 지구촌 녹색평화를
위해 계속해서 뛸 것이다.


왕가리 마타이 :

1940년 녜리(Nyeri)에서 태어난 왕가리 마타이는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생물학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에서 2년간
수학한 뒤 1971년 케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나이로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6년 첫 여성 교수가 된다.
1977년 부터는 평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을, ‘그린벨트운동’을 시작한다.
숲을 지킴으로써 사막화를 방지하고 아프리카의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대단히 실천적인 이 운동은 나중에 아프리카 전역에
3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기에 이른다. 2002년 케냐에서 독재정권이 물러난 뒤에 왕가리 마타이는 환경·천연자원·야생생물부
차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80년대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올바른 생활상, 페트라 켈리상, 골드만 환경상, 노벨평화상
등 3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예일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들을 수여 받기고 했다.
현재 왕가리 마타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그린벨트운동을 이끌어가는 인물로서 활동하면서, 무장해제관련 유엔사무총장
자문위원회 위원, 제인구달연구소(Jane Goodall Institute), 여성환경개발기구(Women’s Environment
and Development Organization), 케냐 국립여성심의회 등 여러 단체에서 인권과 환경 문제에 몸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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