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관련자료

[한겨레21]치유되지 않는 ‘석유 오염’

식물·미생물 이용한 생물학적 정
화 속수무책…

분해 과정서 소금 발생해 불모지 만들어

오래전부터 식물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간을 치료해왔다. 처방약의 4분의 1이
현화식물의 특정 부분이나 합성물을 담고
있다. 약재로서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던 식물이 이제는 지구 환경의 치료자로 발
돋움하고 있다. 식물이 오염지대를 치료하는
것이다. 10여년 전부터 식물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방법이 널리 적용되
고 있다. 지난 2000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식물정화회사는 다임러크라이슬러 빌딩 주변에 있는 납을 식물을 이용해 처리
했다. 토양층의 상부 1.2m 정도를 걷어내고,
납을 축적시키는 식물로 알려진 해바라기와 인도산 겨자를 심어 납 농축도를 절반
가량 줄였다. 해바라기는 방사성 물질로
죽음의 땅이 된 옛 소련의 체르노빌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원자로 주변
웅덩이로 새어나온 방사능 스트론튬을
85%나 흡수한 것이다

중금속·방사능 등을 삼키는 식물들


사진/ 석유오염 토양은 정화를 해도 완전히 복원되지 않는다. 환경운동연합 조사
원이 서울 용산 미군기지 주변에서 누출된
기름을 수거하고 있다.(한겨레 임종진 기자)

현재까지 400종 이상의 식물들이 유독성 금속물질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
로 밝혀졌다. 이미 환경 치료사로 거듭난
식물들도 수두룩하다. 고산식물인 말랭이는 납·아연·카드뮴을 빨아들인다. 포플
러는 자동으로 태양에너지를 획득해 처리하면서
지하수의 드라이클리닝 용제를 제거한다. 이 밖에도 비소(As)를 영양으로 빨아들
이는 양치식물, 아연을 저장하는 고산초류,
납을 흡수하는 겨자, 납과 같은 중금속을 빨아들이는 털독말풀, 방사능 미립자를
감소시키는 양배추 등이 있다. 이런
식물들은 줄기와 잎의 세포 안에 오염물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가 벌레나 병
균이 침입했을 때 방어용 무기로 사용한다.
환경 치료 식물들은 놀라운 뿌리 흡수력을 지니고 있어서 수경 탱크 등지에서 공
장 폐수를 거르는 생화학적 필터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토양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군기지 주변에
서 유출된 석유로 인한 토양오염이 심각한
상태고 군부대의 기름유출이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서울 남영동 주한 미국대사
관 차고지 담장 주변의 토양에서는 중추신경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휘발성 유독물질 크실렌까지 검출됐다. 환경부는 올해부
터 2006년까지 산업단지 116곳, 군부대
주둔 또는 이전지역 100곳, 석유류 비축기지 및 저유소 56곳, 쓰레기 처리시설 56
곳, 개별토양오염물질 배출사업장
450여곳 등 전국 789곳의 토양오염 우려지역에 대한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앞으
로 개정되는 토양환경보전법에는 땅을
매매할 때 인수한 사람은 오염에 드는 정화비용까지 함께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내
용이 포함돼 있다. 어쩌면 땅값보다 많은
정화비용을 부담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환경기준치를 초과한 석유오염 토양이라면 정부의 복원 명령에 따라야 한다. 이
제까지 석유오염 토양은 굴삭 소각 혹은
매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 굴삭 소각 처리는 대량
처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1㎥에 수십만원의
처리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운송과 소각 과정에서 대기오염을 유발한다. 토양
증기추출법으로 처리해도 토양 1t을 처리하는
데 100만원가량 소요돼 부담이 만만치 않다. 비용이 비싸다고 해서 문제의 땅을
이른바 ‘브라운필드’(Brownfield·오염된
산업지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석유에 의한 오염지대는 식물을 이용한 정
화를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석유오염
토양에서 살아남을 만한 식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포플러나무가 오염 토양에
서 생존력을 보였지만 기후의 영향을 받아
일부 지역에서나 효력을 발휘할 뿐이다.

정말로 석유오염 토양을 생물학적 방법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름대로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 석유오염 물질을
직접 체내로 흡수해 무해한 생성물로 변형시키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
부 박테리아들은 오일이나 가솔린에 있는
탄화수소를 분해하고, 암 유발물질인 폴리아로메틱 하이드로카본 등의 물질을 변
화시킨다. 문제는 토양미생물이 대량 번식할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토양미생물이 활성화되려면 식물이 필요하다. 식물이 삼
출물이나 효소를 방출해야 뿌리 근처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생물학적 분해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미국 퍼듀대학 케더린 벵
크스 교수는 미생물이 석유화학 제품을
치료하도록 돕는 데 잔디류가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실제로 김의털
과 버뮤다풀 등의 잔디류는 토양과 접촉하는
뿌리의 면적이 넓어 미생물의 활성화에 이바지한다.

토양의 독약을 제거할 식물을 찾아라

아무리 생물학적 방법을 동원해도 석유오염 토양이 완전하게 복구되지는 않는다.
미생물과 식물의 환경 치료를 위한 만남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작지 토양에 석유가 스며든 지 15년 정도 지나
면 새로운 양상이 나타난다. 석유는
자체적으로 독성이 없어진다. 그런데 석유가 분해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다. ‘토양의 독약’으로 불리는 염화나트륨이
분자 크기의 알갱이로 토양의 표면에 붙어 있게 된다. 석유에 있는 염화나트륨 성
분은 지층에 함유된 염기성 물이 원유에
섞인 것이다. 석유 1ℓ에 염화나트륨이 4g가량 함유되어 있다. 소금기 있는 토양
에 비가 내려도 소용이 없다. 땅으로
스며든 물은 토양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가라앉는다. 미생물로 정화해도 나트륨으
로 인한 재오염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사진/ 미생물을 활성화시켜 석유의 생물학적 분해를 돕는 식물들. 토끼풀, 김의
털, 버뮤다잔디(왼쪽부터).

앞으로 석유에 의해 오염된 토양이 속속 밝혀질 전망이다. 석유를 분해하더라도
토양의 독약을 제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한번 오염된 토양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일부
에서는 석고를 이용해 토양의 독약을
제거하려고 한다. 석고가 용해될 때 생기는 칼슘은 나트륨을 제거하는 것으로 알
려졌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이용한 환경정화는
비용이 많이 들고 토양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석유에 오염된 토양을 정
화하는 데 곳곳에 암초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지금으로선 석유의 찌꺼기를 부분적으로 제거하는 토끼풀에 효력을 기대
하기도 힘들다. 어디엔가 석유의 화학성분을
모두 빨아들여 증발시킬 수 있는 식물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아직 인간이 식물
의 능력을 미처 깨닫지 못해 이용하지
않을 뿐이다. 이 계절에 마음을 치유하고 지구를 정화하는 식물을 만끽해볼 만하
다.

참고자료

<꽃의 유혹>– 비밀에 가려진 꽃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샤먼 앱트 러셀
지음, 이제이북스 펴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겨레21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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