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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새만금을 풀어라

‘새만금 갯벌을 살려달라’고 삼보일배단이 엎드려 절하며 해창갯벌에서 서울로 향한 지 어느
덧 25일째다. ‘탐진치’ 3독을 넘어 상생의 세상을 끌어당기자는 의지의 발현이다. 방조제
33.5km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것처럼 “그런 결정을 내린 우리 모두 참회하자”고 엎드려 절하
는 800리길 대장정은 가히 초인적이고 세계적인 일이다. 카일라스 성산(聖山)을 향해 오체투지하
는 티베탄들은 개인적 업장해소를 위해서지만, 이들은 우리 시대 모두의 업장을 풀겠다는 면에
서 티베탄들의 일보일배보다 더 감동적이다.

삼보일배 장정의 가혹함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땡볕이 내리쬐는 날도 있었다. 노천의 잠자리는 봄이라지만 을씨년스럽
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어떤 할머니는 속곳에서 꼬깃꼬깃 접은 1만원짜리
를 꺼낸다. “저러면 뭐해? 이제껏 새만금에 처들인 돈이 얼만데…!”라고 혀를 차는 이도 있
다. 수경 스님은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의사의 우려에 스님은 “이 방법밖에 할 일이 없
어”라고 대꾸한다. 반전 몸짓으로 유명한 문정현 신부는 아우 문규현 신부가 삼보일배 길을 떠
나기 전에 “차라리 출발일자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철 같은 영혼을 가진 ‘쌈쟁
이 신부님’에게서 그런 처연한 말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 장정의 가혹함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들이 땅바닥에 고개를 조아리며 떠올릴 ‘우리 현실’이 가슴을 친다.

전북 군산과 부안을 방조제로 연결해 여의도 140배나 되는 땅을 얻겠다는 새만금사업은 알려져
있듯 91년,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비롯되었다. 갯벌의 환경적·
경제적 가치를 알 리 없던 김대중씨가 생각한 것은 오로지 ‘전북지역 발전’이라는 정치적 목적
이었다. 당시에도 ‘사업 타당성에 문제 있다’는 소리가 나왔지만, 완강한 정치논리에 묵살된
채 ‘공사 중단-재개’라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년에 걸쳐 갯벌을 살리려
는 노력과 천문학적 돈을 들여 갯벌을 죽이려는 강집 사이에서 낭비되고 있는 국민 에너지는 아
깝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농지조성’을, 뒤에는 ‘산업단지를 만든다’고 하더니, 최근(2월)
노무현 대통령은 ‘사업을 계속하되 농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 말은 방조제 공사
를 중단한다는 전제로 언표됐어야 했다. 농림부는 ‘농지조성’을 목적으로 공유수면매립면허를
취득했으므로 농지목적이 증발했다면, 공유수면매립법(32조)에 의해 매립면허가 취소되어야 한
다. 그렇지만 방조제 공사는 계속 강행되고 있다.

어차피 정치논리로 비롯된 새만금은 최고권력자의 의지에 의해 삼보일배 같은 극한의 고행이 단
박에 중지될 수 있다. 권력 앞에서는 국립공원 해체도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부 장관의 힘으로는
‘택도 없다’. 무지갯빛 환상으로 지역정서를 호도한 지역언론, 표밭과 떡고물에만 혈안이 되
어 있는 지역 정치가들이 새만금과 관련해 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시화호의 썩은 물처럼 오염되
어 있어 믿기 힘들다. 생명경시와 갯벌가치에 대한 무지, 돈되는 짓이라면 뭐든 달려드는 토목범
죄의 냄새가 ‘새만금’에는 깊고도 짙다. 물론 그자들은 극히 소수다. 만약 새만금 사업의 허구
성이 적실하게 드러나면 전북 주민들도 큰 모욕감을 느낄 것이다. 일찍이 국책사업이 현지인에
게 이익으로 돌아갔던 적은 대한민국 개발시대 30년을 통틀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제때에 필요한 권력을 휘두르라

‘노 대통령, 환경의식이 없어 큰 걱정이다’라는 소리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주
한 인터뷰를 통해 노 대통령은 “시간을 더 달라. 자연친화적으로 사업내용이 변경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분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방조제 공사하면서 ‘자연
친화적’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을. “경기활성화를 위해 상류층이 솔선해 골프치는 모
습을 보이자”는 한심한 말을 받아들이는 그분에게 갯벌의 생명가치를 요구하는 게 연목구어일
까 파병까지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이 뭘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가 ‘새만금’의 결자(結者)는 아
니지만, 멋진 해지자(解之者)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갯벌을 살린다고 그가 말했듯 ‘대통령의
권위와 능력이 소진’되지는 않는다. ‘제때’에 ‘필요한 권력’을 그가 휘두르기 바란다. 시간
이 없기 때문이다.

최성각/ 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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