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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환경단체 총선활동 이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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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과학적인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간혹 기후 변화가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탓이 아니라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다수 과학자는 기후 변화를 현재 빠르게 진행중인 분명한 사실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기후 변화에 대한 확실한 증거나 상세한 정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연대를 통해서 기후 변화를 막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가까울수록 지구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이는 2020년 쯤에라도 전 인류를 극심한 식량과 에너지 부족으로 내몰 수 있다는 미국 국방부(펜타곤)의 예측은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미국 부시행정부조차도 사태가 꽤 절박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펜타곤의 비밀보고서에서는 20년도 채 안 돼서 영국의 기후가 시베리아처럼 바뀌고, 방글라데시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하며, 유럽 서부의 저지대가 물에 잠기고, 동북아에서 폭염과 황사와 폭우가 쏟아지게 되는 경우를 가정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대로, 기후 변화로 인해 생존과 문명의 유지에 필수적인 식량과 에너지 수급에 큰 혼란이 온다면, 지금 우리가 야심차게 벌이고 있는 거대 사업은 삼풍백화점을 수천, 수만 개 쌓아가는 것이고, 국민소득 2만달러, 동북아 중심, 질 높은 삶 같은 정부의 각종 약속은 그야말로 허공에 내지르는 공약일 뿐이다.

물론 예측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맞을 수도 있다. 여러 기후학자들과 펜타곤의 예측이 틀리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들어맞는다면 우리는 거대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는 우리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따라서 펜타곤의 예측이 들어맞을 가능성이 설령 10%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재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려한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때의 혼란을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깨끗하면서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를 개발하고, 가까운 곳에서 먹을 것을 찾고, 거대 사업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재난이 닥쳐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도록 다져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은, 준비는 고사하고 그러한 예측과 논의를 비웃는 듯이 대하고 있다. 아니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를 더 많이 내놓고, 에너지와 물과 식량을 더 많이 쓸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이미 한사람의 에너지 소비가 유럽 선진국 수준을 넘어섰는데도, 정부에서는 앞으로도 수 십 년간 해마다 6∼7%씩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에너지를 찾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도 별로 나을 바 없다.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는 원자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핵 신봉자, 새만금에 국가와 후손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처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땅만 늘리면 된다는 간척주의자, 과학기술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해결할 수 있으며 과학 연구는 생명을 파괴하든 비윤리적이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애국이고 선한 것이라는 과학지상주의자, 바로 이런 선량들도 국회에 들어가서 활개치고 있다.

이들은 부안의 함성과 시화호의 재난과 무너진 삼풍백화점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앞으로도 이들은 기후 변화와 우리 삶터의 파괴에는 아랑곳없이 원자력과 간척을 찬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가 다시 선량으로 만들 수는 없다. 2004년부터 4년 동안 이들이 다시 국회에서 활동하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후손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환경 단체들이 총선연대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환경 단체는 2002년 대선에서도 각 후보의 환경정책을 평가했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던 후보가 지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지금 우리의 환경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핵폐기장 문제로 1년 가까이 시끄러웠고, 새만금 간척은 계속됐으며, 북한산과 천성산도 가차없이 잘리고 뚫려나갔다. 환경 단체의 총선연대 활동은 대통령의 환경불감증을 질책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글 : 이필렬 / 방송통신대 교수, 에너지대안센터 상임이사

<문화일보 3월 5일자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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