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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새만금3보1배] 이 무지와 탐욕, 걷어주소서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삼보일배
수행을 따라다닌 이틀간의 뜨거운 체험

사진/ 고난의 삼보일배 대열. 수경 스님(오
른쪽)과
문규현 신부님이 앞장선다. 뒷줄 맨 왼쪽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이가 필자.(새만
금갯벌 생명평화연대 천주교모임)

대학 입학 직후로부터 근 12년간 객지를 떠돌다 귀향한 나의 지난
3월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10여년 전, 나의 시선을 가두었던 고향의 저 답답한 산봉우리들이 이제는 푸근하
고 정다운 곡선으로 느껴지는 것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갈돌처럼 구르며 웃고 떠드는 교실의 아이들을 보면서도 나
는 진한 행복감에 젖는다. 그러나 이
행복감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무거운 상념이 달라붙는다. 피투성이로 울부짖는 이
라크의 소년소녀들, 그리고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면서 천리길을 걸어가는 무시무시한 수행을
시작하신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소식. 내가 남도의 한구석에서 홀로 느끼는 이 행복감은 대체 무엇인가, 나쁜 짓
하다 들킨 아이마냥 갑자기 나는 움츠러든다.

무릎에 물이 차와도 노숙으로 버티며

4월5일 아침 일찍 대구의 지우들과 김제로 향한다. 몇명의 교통경찰들이 힘겹게
차선을 확보해주는, 길지 않은 대열
끄트머리에서 앞을 내다보니 맨 앞자리 회색 장삼의 수경 스님과 검정 모자를 뒤
로 돌려쓴 문규현 신부님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렸다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득, 눈앞이 흐려진다. 나뿐 아니
라 함께 갔던 친구들도, 그리고 내
옆의 어느 중년 부인도 글썽이는 눈으로 연신 합장을 하며 천천히 그 대열을 따른
다. 지난 3월28일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시작된 그 장정이 여드레 동안 쉬지 않고 걸어온 길의 총연장은 겨우 60여km. 자
동차로는 40분이면 좋을 그 길을
세 걸음에 절 한번,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걸어온 것이다.

삼보일배의 대열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 박경일
원불교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이 삼보일배로
앞장서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든 사람들이 세 걸음 뒤 한번의 합장이
나 목례로 그 뒤를 따른다. 삼보일배는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에 한번의 걸음은 20분을 넘지 않고,
쉬는 시간마다 다섯분의 성직자들은
길 옆, 혹은 논두렁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혹은 누워서 몸을 푼다.

4월5일의 일정은 군산시 대야면에 도착한 오후 4시 반쯤에 끝났다. 이제 하루일
정을 마친 대열의 일부는 돌아가고,
다음 일정까지 함께할 일행은 숙소가 마련된 대야면 상리 마을창고 앞으로 옮겨간
다.

진행팀의 설명을 들어보면, 다섯분의 성직자들은 삼보일배 수행 기간에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한다. 우선,
수행 중에는 따뜻한 방에서 자지 않으며 모든 기간을 노숙한다. 그리고 자동차를
타지 않으며 모든 구간을 걸어서 이동한다.
그리고 대외적인 발언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침묵한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은 ‘노숙’ 원칙이다. 그동안
진행팀들은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의 지시로 한번 샤워를 하였다지만 이분들
은 요지부동 철저히 찬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노숙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수경 스님은 무릎에 물이 차와서 이틀마다 한의
사의 도움으로 숙소에서 무릎의 물을
뽑아낸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걸을 때마다 한쪽 발을 약간 저는 게 느껴진다.

개혁당 전북 진안 지구당 당원분들이 정성스레 마련해준 저녁을 먹고 나는 같이
간 지우들과 함께 새만금 방조제로 향한다.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전북 지역의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급조했음이 틀림
없을 새만금 간척사업. 그로부터 15년
뒤인 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농지조성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상실
되었음을 선언하였으나, 총연장 33km의
방조제 중 28.5km의 공사가 이미 끝나버린, 그래서 그곳을 공장부지로 만들어 이
제 전북의 산업기지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미 전북 지역 사람들로부터 ‘의견 정리’된 새만금 간척사업. 대야면
숙소로부터 사십여분을 달려 저녁해가 넘어가는
새만금 방조제 위에 서본다. 방조제 왼편으로는 방조제에 쓰일 돌을 위해 제 몸
을 모두 빼앗겨버리고 작은 언덕으로만
남은 해창산이 보인다. 설사 이 죽음의 갯벌을 덮어 산업기지로 조성한다고 치
자.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원장에 의하면
감사원에서는 새만금 간척지를 공단 부지로 전용할 경우 예상되는 평당 조성비는
50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다.
지금 평당 20만원도 안 되는 공단 부지가 전국에 남아도는 상황이라는데 어떻게
새만금 간척지에 공단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이 모순과 불합리는 왜 ‘이곳도 이제
개발해야 한다’는 상식을 넘어설 수
없는가 새만금 방조제에서 숙소로 되돌아오면서 나는 말할 수 없이 비감했고 쓸쓸
했다.

오소소한 한기로 몸이 시린 침낭 위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인 다음날 새벽
추위에 잠을 깬다. 번쩍 드는 생각은,
나는 한 이틀 여기서 자다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앞으로 50일 넘게 이
런 새벽을 맞이해야 할 일행들은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나 한편 가슴이 느꺼워진 것은, 어제 저녁 내가 새만금 방조
제에서 느꼈던 절망감과 쓸쓸함의 몇배나
될 크기의 감정들을 모두 안고 이 힘든 길을 쉬임 없이 지켜갈 성직자들과 일행들
에 대한 깊은 존경심 때문이었다.

4월6일 일요일 아침 나는 성직자 분들의 맨 뒤, 그리고 일반 참가 대열의 맨 선
두에서 플래카드를 드는 것을 자청하였다.
조금 더 가까이 이 현장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다시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
은 한발 걷고, 두발 걷고, 다시 바닥에
엎드려 절하기를 시작한다. 보고, 또 보아도, 먹먹한 감동은 좀체 가시지 않고,
같이 플래카드를 든 친구들도 말 없이,
그러나 붉어진 눈으로 천천히 그 길을 따른다. 대열이 군산시 대야면 시내로 진입
한다. 이날은 대야면 장날, 많은 인파가
우리 대열을 지켜본다. 할머니들, 이미 허리가 굽은 촌로들이 대열에 지켜서고 있
다가 성직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박수를
치고,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이 가까이 다가오자 눈물을 글썽인다.


문정현 신부님의 ‘위문공연’

오후 일정에는 피로가 엄습한다. 그러나 역시 대열의 맨 앞 쉬임 없이 절하는 성
직자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고, 인적
없는 국도를 한참 걸어 저녁 한적한 공터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작은 음악회가 예정되어 있다. 전북
지역의 노래패와 가수들, 시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고 우리들은 둥글게 모
여 앉았다. ‘임시방편’이라는 전북 지역의
젊은 노래패가 신나게 분위기를 돋우고, 모악산 처사로 불리는 박남준 시인이 시
를 낭송한다. 노래를 부르는 사이 문규현
신부님의 형님이기도 한 하얀 수염의 문정현 신부님은 ‘나를 살려주세요’라고
쓰인 게 모양의 붉은 형광색 종이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고 앞으로 나와 백댄서라면서 게모양으로 걸음질치면서 좌중을 웃
음바다로 만든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문규현
신부님은 으으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다. 맨 뒷줄 바위 위에 걸터앉은 수경 스님
은 싱긋이 웃으면서 바라보시고.

사진/ 수경 스님이 도로 위에 앉아 팔을 주무르고 있다.
무릎이 안 좋아
팔에 힘을 주며 수행을 하기 때문이다.(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 천주교모임)

이제 저녁이 짙어오고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이
음악회라도 마저 하고 싶지만 시간이
녹록지 않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수경 스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의 말을
건넨다. ‘건강하시고,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차마 하진 못하고 그냥 ‘건강하세요’라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우리들
을 향해 조용히 합장해주신다. 또 오늘
일정을 마치고 저분들은 추운 잠자리에 드실 테고, 내일은, 또 내일은, 종일토록
세 걸음에 절 한번, 그렇게 6km를
나아가실 것이다. 수경 스님은 다리도 편찮으신데, 역시나 마음이 무겁다.

전쟁과 살육, 무지와 탐욕과 개발의 이름을 빌린 파괴의 한가운데서, 이 기도의
행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방송사에 다니는 한 친구에게 이 현장을 취재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
면서 이렇게 뇌까렸다.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부름에 우리 사회가 응답하는 메아리의 크기,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
의 희망의 크기다”라고.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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