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정책 활동소식

변화하는 북촌, 잠식당하는 북촌의 삶

“이 동네 무지 이상한 동넨가 봐, 시골 같아” 서울에 올라 와 10개월만에
처음으로 안국동 쪽에 자취방을 얻은 나를 만나러 부산에서 온 친구가, 잠깐 집을 비웠다 돌아온 나에게 말한다. “왜?”라며
되묻자, “밖에서 아저씨들이, ‘여기는 며칠 전에 아가씨 혼자 이사와서 사는데 아직 집들이도 안하고 있어’라고 수근거리더라”
친구의 말을 들은 순간 정말 이상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곧 이사하던 첫날 이삿짐을 옮겨 주시던
동네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 온지 30년 됐는데 이젠 다른데 이사가려고 해도 못 가.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북촌은 이방인과
난민으로 넘쳐나는 서울이라는 도심에서 마을 사람들간의 유대가 이루어지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였다. 그들에겐 누가 이사 들어와서
사는 것쯤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이며 이사하고서도 간단한 신고식도 하지 않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으리라.

북촌은 지금의 가회동, 사간동, 삼청동, 계동, 재동, 안국동, 원서동 일대를 일컫는다. 조선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사대부들의 주거지였는데 청계천과 종로 윗동네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대분들의 대저택에서 오늘날 북촌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36~45년 경성부시가지 계획에 따라 필지가 분할, ‘집장사’들에 의해 집단 개발되면서이다. 그리고 1970년대 강남개발
정책으로 경기고(1976), 휘문고(1977)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북촌은 큰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1977년 건물 최고높이를
10m로 제한하는 ‘최고 고도지구’, 1983년 한국 고유 건축양식의 보전과 주거생활 환경의 미관 유지를 취지로 하는 ‘제4종
집단미관지구’, 1984년에는 ‘한옥보존지구’로 지정 받았다. 하지만 규제에 참다 못한 주민들이 ‘사단법인 종로 북촌가꾸기회’를
조직, 반대운동에 나서자 서울시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91년 ‘한옥보존지구’를 해제, 1994년에는 16m까지로 건축물
높이를 완화하더니 1996년에는 종로구가 직접 나서 ‘제4종 미관지구’ 해제 신청을 했다. 이렇게 북촌이 망가질만큼 망가진
시점에 고건 시장은 ‘지원’ 정책으로 전환하여 민, 관, 전문가가 함께 노력하여 2000년 ‘북촌가꾸기 종합대책’을 수립,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서울시 정책은 현재 북촌의 모습에 그대로 나타난다. 재동초등학교 옆 중앙로의 서편으로는 낡은 한옥들 사이에 90년대
초의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이 군데군데 늘어서 있다. 반면 중앙로의 동편은 주로 80년대의 다세대 다가구들이 밀집되어 있고
한 두채의 한옥들이 눈에 뛴다. 이는 1977년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정책을 펼쳐온 결과로 현대 본사가 바로 이때
만들어졌다. 한편 중앙로의 끝 가회동 1번지에 가면 최근에 지어진 빌라군들을 볼 수 있다. 1층에서 5층까지 다양한데 지붕만
경사 지붕으로 하여 북촌에 기생하고자 하는 노력이 안스러울 정도다. 이것은 96년 종로구의 ‘제4종 미관지구’해제 신청으로
인한 결과다. 또한 이에 앞서 94년 16층까지 고도제한을 완화했을 때 5층 규모의 많은 다세대 주택들이 생겨났다. 윤보선
생가를 아래로 내려다보듯 서 있는 건너편 다세대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 북촌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자 북촌으로 들어와 사는 건축가나 개인들이 늘고 있고 북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그럴 듯하게 개보수 하는 한옥들도 많다. 이는 북촌이 온갖 정책의 시달림 속에서도 북촌의 살리려고 애써온 이들의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최근 북촌의 가치를 상품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인사동에서 폭파하는 수요를 북촌으로 잇자는 것이다. 서울시도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풍문여고에서 정독도 서관으로 이어지는 길만해도 지난 1년간 네, 다섯 가게를
제외하고는 모두 리노베이션을 했다. 밥집에서 까페, 샌드위치 가게로 바꾸거나 고급음식점이 생겨났다. 경복궁 맞은편 삼청동에서도
사이 골목골목으로 가게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주거지들이 잠식되는 것이다. 과거 경복궁 맞은 편 갤러리들도 모두 한옥들을 밀어내고
들어선 것들이다. 그리고 지난 9월에 비워진 사간동과 송현동의 미대사관직원숙소도 향후 삼성이 사들여서 복합문화센터로 개발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걱정이 앞선다.

북촌은 일제 침략기 후반부터 근대적 개발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과 10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개발, 완화, 자율,
지원이라는 정책의 격동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이제는 상품화라는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언제 한번 정말 주민의
입장에서 정책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변화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변화란 긍정적일 때는 기존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미래의 희망적인 청사진을 제시해 줄 수 있을 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책은 그곳의 사람들의 삶을
돌보기 보다 북촌을 대상화해 오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싶다. 북촌은 계속 변화한다. 북촌은 계속 변하는데 30년 된 풍문여고
담벼락을 30년 후에도 이민 갔던 교포가 다시 찾으며 감동의 눈물을 글썽일지, 그리고 사간동 미대사관직원숙소의 키 큰 나무들에
지저귀는 새소리와 가끔 깊은 밤 들려오는 ‘소쩍새'(‘뻐꾸기’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글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활동가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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