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정책 활동소식

[칼럼]재신임과 파병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글 : 이필렬(에너지대안센터 대표)











한겨레 2003.10.20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발표했을 때 저는 마음속에서 재신임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엇그제 이라크에 파병한다는
발표를 듣고난 후에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저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파병을 하면 재신임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봄에 파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으로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재신임을 할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는 이유는 이번 파병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그리 정직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섣불리 파병결정을 하지 않겠다,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겠다는 이야기를 해왔고, 파병발표 직전에는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파병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이러한 행태가 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서투르다는 것에 큰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경제를 살리고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들고 2만불시대를
가져오는 것을 대통령에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과 제도를 갖추기만 하면 예전처럼 경제성장을
향해 돌진해가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는 최우선의 가치가 아닙니다. 경제는 단지 우리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필요조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경제가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경제 지표가
조금 나빠지거나 국제 신용등급이 조금 떨어지면 큰일날 것처럼 떠듭니다.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쏟아집니다. 이라크 파병도 같은
시각에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시각을 가진 정부 관계자나 많은 보수 인사들은 파병이 우리 경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를 사지로 보내면서 돈을 좀더 버는 것이 무슨 즐거움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저는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이러한 경제중심의 사고를 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사회의 개혁은
대단히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정치인을 부정직과 부패의 대명사 쯤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치인이 그런 이유는 바로 경제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사회의 풍조 때문입니다. 경제를 최고로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천억원대의 부패비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인을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처럼 마구 비난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
개개인도 경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한 그들의 부패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노무현을 지지한 이유는 깨끗한 정치, 깨끗한 사회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바로 깨끗하고 정직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그에게서 우리사회의 개혁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를 지지한 많은 사람도 그런 것을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번 파병 결정과정에서 이러한 기대를 배반했습니다. 이번에 그도 정치라는 것은 술수와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통념에 걸맞는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는 대통령을 재신임할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는데도 재신임을 하는 이유는 불신임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재신임은
차선이 아니라 차악인 셈입니다.

발췌 : 녹색정치준비모임(http://www.greens.or.kr)

admin

초록정책 활동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