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초록정책 활동소식

[참가기]2003년 전국 환경활동가 워크숍

2003년 전국환경활동가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산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리산으로 간다기에 ‘언제 한번 가 볼까’하는 얄팍한 마음으로 선뜻
마음이 동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에 있는 실상사가 바로 활동가들이 묵을 숙소이면서 교육장소였습니다. 지리산 깊숙이 자리잡은 실상사를 하늘에서
보면 실상사를 중심으로 지리산 자락자락이 연꽃잎처럼 펼쳐져 있답니다.자연 스스로 서로서로 그들의 형상을 닮아 가는
모습이 신기해 보이고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리산의 첫인상은 뭐라고 할까요.. 제 언어표현능력의 한계로 무력감이 느껴졌습니다. 저 모습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하고요..
대학교 때 읽은 태백산맥의 한 구절도 생각나지 않고 조정래 선생님께서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지니 같이 나타나주셔서 지리산의
자태를 언어로 표현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그래서 더욱 제 눈이 카메라 렌즈가 되어서 저 상들을 찍어
모두 다 마음속에 간직했음 좋겠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습니다.
실상사로 출발하는 전 날밤 TV에서 유럽영화 한편을 방송했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헐리우드에서도 제작한 영화가 있었지요.
원작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미국과 유럽의 문화는 확연히 다르구나, 배경 하나하나에 세월과 문화가 담겨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상사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으니 어제 보았던 영화가 생각나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제가 앉아 있는 마루 나무결에 어제 보았던 영화의 남자주인공이 오르던 계단 마디마디에 깊이 패여 있던 나무결이 겹쳐져
보이더군요. 그 깊히 패인 나무결 사이에 쌓여 있는 세월과 바람과 나무향이 제 손바닥 마디마디 사이로 전해지는 듯
하였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은 손으로 잡을 수도 볼 수 도 없지만 시, 공간을 초월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끔 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고단 정상에서

첫째 날은 지리산을 만난다는 반가운 마음에 들떠 토론자의 발제내용과 토론내용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도법스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도 기억나지 않고 다만 지리산을 닮은 스님의 의연한 음성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둘째 날 새벽에는 노고단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노고단 입구까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정상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잠이 부족한 부은 눈에 힘을 주고 일출을 맞아야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산에서
일출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산에서의 일출은 어떠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노고단 정상에서 맞는 일출은
날이 밝아도 굽이굽이 연결되어 대체 지리산의 끝자락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어둠에 가려져 있던 지리산의 신비감을
배로 증폭 시켜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초록색 색종이로 촘촘히 모자이크 된 지리산 기슭에서 금새라도 하얀 늑대와
함께 원령공주가 뛰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리산 생명을 지켜주시는 산신령님도 저희와 함께 아침공기를
호흡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었고요.


오후시간에는 “도로건설과 환경파괴, 그리고 생태적 삶”
주제의 토론마당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나라 도로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 없이는 부지부식간에 그 정책의 결과들에
적응하여 생활하는 우리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새벽
노고단 정상에 오르기 위해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나 단 2시간의 노력으로 노고단의 일출을 볼 수 있었던 건 말끔히
포장된 도로를 1시간동안 버스로 이동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도로가 없었다면 어림잡아 6시간은 걸어 올라가야
했을텐데… 덕분에 우리는 6시간을 2시간으로 단축시켜 좀 더 편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지만 도로를 통해 편안하고
짧은 시간동안 등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결과들로 이루어진
프레임의 사회를 살아간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사회로부터 우리가 얻은 혜택과 잃은 것과는 상관
없이요…

토론마당 전에는 체험마당이 있었습니다. 저는 “춤 명상” 마당에 참여했는데, 춤을 통해서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파트너와 함께 서로의 걸음을 따라 해보고 나의 걸음을 파트너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각자의 생김이 다르듯이 걸음모양도 모두 다르고 이에 따른 성격도 각각 다르게 나타나더군요.. 제 성격이 걸음걸이에
정확히 나타나는 것을 보고 약간 무안하였습니다. 나의 성격을 내 자신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비춰진
모습을 통해 접하게 되었을 때 제 모든 것에 대해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파트너분과 함께 손바닥을 마주 대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물론 춤이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움직임에 불과한 몸짓이었는데 제 파트너 되시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군요,
” 선생님(저를 지칭하시는 호칭이었습니다.)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으시는 분 같아요”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요… 어떻게 그 작은 몸짓과 접촉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몸이라는 것은 다만
우리가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단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생명이라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소중히 해야
하는것이겠지요..이런 개념으로부터 환경운동이 시작되고요.

이번 워크숍은 2001년 이후로 2번째 맞은 워크숍이었습니다. 그때보다
경험도 많아지고 두 살이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주변환경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데 좀 더 여유로워진 제 자신을 만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2001년 워크숍에서는 제 상황에 대한 불안함과 조급함을 감당하지 못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몇 주 전 선배와 했던 게임이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그 게임에서 졌었는데 이제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게임인데요. 상대와 번갈아 가면서 내가 왜 지금 행복한지 이유를 말하는 게임입니다. 그때는
몇 가지 말하고 나니 할말이 하나도 없었는데 워크숍을 다녀오고 나서 행복한 이유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도법스님을 만나 뵈어서 행복하고,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우리 지역활동가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얼굴을 스치는 지리산 바람의
간지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실상사 머리 위에 별을 보며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작은학교 선생님께서 나무로 만드신
예쁜 우편함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지리산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행복하고

…..

이 모든 것에 행복해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

글 : 시민환경정보센터 사서간사 황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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