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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에서 ‘환경운동’으로,’환경운동 함께 사는 길’, ‘함께 사는 길’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월간 『함께사는 길』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 사회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발과 효율의 질서에 매몰돼 있을 때 『함께사는 길』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었고, 그런 희망들이 모여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인권은 매우 가깝습니다. 1세대 인권 개념이 자유권과 상통했다면, 2세대 인권은 환경권을 포함한 사회권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를 표방해온 월간 『함께 사는 길』이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회사원 임성식

안녕하세요, 임성식입니다. 먼저 ‘함께 사는 길’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제가 벌써 가입한지 10년이 된 고참회원이라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군요. 고교재학 시절 당시 기술 선생님의 적극적인 소개로 인해 환경공해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지만
본격적인 관심과 회원가입은 회사 입사 후 업무와 관련이 있어서였습니다. 정보통신 업종에 근무하는 저는 93년 당시 각 정부부처의
행정정책들을 PC통신을 통해 배포와 홍보를 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주는 업무를 담당했었습니다. 당시 제가 출입하던 곳 중에
환경부와 자원재생공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각 부처들이 위와 같은 일들을 직접 수행하지만 당시만 해도 컴퓨터 통신을 통해서 그와 같은 내용을
전파한다는 것은 전문적인 분야에 속했었으니까요.

암튼 당시에 동일한 사안을 놓고 환경부와 민간 환경단체들간의 첨예한 대립 등을 보면서 양쪽 입장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춰야
겠다는 생각에 이곳 환경운동연합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그로인해 ‘월간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창간호부터 접하게 됐었습니다.
10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매달 접하게 됐었으니 마땅히 통권 120권 전체를 다 갖추고 있어야 하겠거늘, 회사가 두번 이사를
하는 사이에 정신없어 미처 챙기지 못했던 두 권이 이빨처럼 빠져있어 그지없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 사이 ‘월간 환경’에서 ‘환경운동’으로, ‘환경운동 함께 사는 길’, ‘함께 사는 길’로 책 이름의 변경과 판형이 기존 크기에서
훨씬 커진 크기로 인해 일반 책꽃이에 보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크기로 커지기도 했다가 원래크기로 돌아왔고, 한때는 재생지를 사용해서
출간되기도 했었고. (그래서 저는 ‘함께 사는 길’을 전체를 한 책꽃이에 같이 모아 두질 못하고 그판형 커진 책들만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돌아보니 적지 않은 변화였군요.

또한 창간호 전에 창간준비호가 있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그건 전혀 접해 보질 못했으니 아쉽네요. 그리고 그 창간준비호
때 이미 ‘함께 사는 길’이란 책제목이 있었군요.
뜻하는 의미도 그렇고, 참 잘 지은 이름인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10년 ‘함께 사는 길’ 독자로서 느꼈던 좋았던 점은 월간 잡지형태를 띄기는 하지만 전체를 모아놓고 어느 년도 몇
월호를 꺼내 읽어보아도 항상 새롭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버리거나 혹은 더 이상 의미없는 정보들이 아닌 항상 다시금 생각케하는 사고의 틀을 제공해주며 이는 저에게는
나름대로 그 달에 있었던 소사(小史)들을 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랍니다.

제가 추천하는 생생한 ‘함께 사는 길’ 보관법은 이렇습니다. 매달 새책이 오면 그 전월호에 간단하게 포스트 잇으로 그 달에 있었던
국내외적인 Topic이나 가정소사들을 적어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하고 좀 귀찮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자료가 축적되면 시간의 흐름속에서 환경관련 특별한 이슈가 있었을 때
막연히 96년 3월에 어떤 일이 있었구나 하는 것보다는 제 큰아이의 백일이었을 당시에는 국내에서는 이런 일들이 핫 이슈였구나,
그리고 해외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하고 피부에 와 닿게 되거든요. 한번 해보세요. 의외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보아왔던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사는 길’에 대해 두 가지 부탁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해외 유명 환경보호 단체들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모습인데, 대안없는 무책임한 ‘환경보존 지상주의’에 대한 경계입니다.
그런 모습들로 인해 원래의 환경보호의 좋은 의도와 의미는 퇴색되고 아집에 사로잡힌 유아기적 사고와 분별없음으로 치부되어 일반인으로
부터 멀어지게 되고, 또 브르조아적인 압력단체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렁찬 환경보존 외침 뒤에 그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사유재산권의 심각한 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외침은 너무나 공허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둘째는 자칫 ‘지역 이기주의적인 주장’에 편승하는 우를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NIMBY에 편승하게 되면 그 당시의 그 지역주민들에게는
환영받을 수 있지만 이 역시 그 주장의 대안없음으로 인해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버려 특수한, 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환경보호
운동이라는 생각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를 통해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는 ‘환경보호’란 특별한 사람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으로 파고 들어
‘일상화된 환경보호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사는 길’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함께 사는
길’이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다시한번 ‘함께 사는 길’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20주년을 맞이하여 또 기회를 주신다면 창간 1000호
혹은 100주년 기념호를 기대하는 입장에서 다시금 축하메시지를 적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수가 아닌 깨어있는 소수가 돌리는 것이다’
라는 말을 인용해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고생하셨고, 또 앞으로 전심전략을 다하실 ‘최열’발행인 이하 모든 ‘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분 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푸른터가꾸기- 이희용

흔히 동양화에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묘사된다. 반면 서양화에서는 사람이 화면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함께 사는 길은 사람을 자연의 정복자로 여기는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동양화 같은 자세를
가지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함께 산다는 것은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의미한다.
이것은 외살이의 삶을 버리고 인간공동체와 자연공동체와 우주공동체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지난 10년동안 “함께 사는 길”은 이러한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길라잡이로,
행동하는 양심의 목소리로서 많은 생각거리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이제 앞으로도 수많은 생명들의 외침을 대변하고 지켜내는 생명의
대변자요 파숫꾼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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