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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방사능이 두려워요

피폭으로 인한 두려움에 사회적 공

확산…호흡기로 인체에 유입돼
암·백혈병 등 유발

영화 <데어데블>의 주인공 메트 머독(벤 애플렉)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낮에는 범죄 전문변호사로
활동하는 머독이 밤이 되면 악을 응징하는 ‘슈퍼맨’으로 돌변하는 것이
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나이 머독은
어린 시절 방사능 폐기물에 눈을 다쳐 시력을 잃었다. 마치 스파이더맨이
방사능 거미에 물려 힘을 얻은 것처럼
머독도 방사능 폐기물에 노출돼 시력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이 초인적으로
발달했다. 레이더를 이용하듯 음파로
모든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고, 균형감각이 뛰어나 쇠줄 하나로 건물 사
이를 날아다닌다. 이처럼 <데어데블>에서
두려움을 씻고 초인으로 거듭나는 방사능 피폭자를 만날 수 있다. 정말 현
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사진/ 영화 <데어데블>

그것은 어디까지 40여년 전의 만화적 상상력일 뿐이다. 아무리 방사능 곁
에 있어도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을
적당히 버무린 ‘초인적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죽음보다 더한 고
통을 견뎌야 한다. 병원에서 가슴
엑스선(X-ray) 촬영을 할 때 0.03∼0.05밀리시버트(mSv)의 방사선량에 노출
되는 것은 인체에
거의 영향이 없다. 하지만 방사능 무기에 노출됐다면 고통을 대물림해야 한
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시내의
장애아 수용시설 ‘미셔너리 오브 채러티’. 그곳에 수용된 22명의 장애아
들은 대부분 팔과 다리가 없다.
그들이 방사능 활성이 높은 물질이 있는 곳에 갔을 리 없다. 1차 걸프전 당
시 그들의 부모가 미군이 사용한
열화우라늄탄의 잔류 방사능에 피폭된 탓이다.

방사능에 노출돼 슈퍼맨으로 돌변?

현재 이라크로 들어간 미 지상군들은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
다. 열화우라늄은 우라늄을 핵무기나
원자로용으로 농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이를 이용한 열화우
라늄탄은 가공할 만한 폭발력이 있다.
게다가 엄청난 에너지의 전자기파와 방사능 낙진을 공기 중으로 내뿜는다.
일종의 핵폭탄 구실을 하는 셈이다.
미 국방부 산하 육군재료사령부 대변인인 제임스 노턴 대령은 “바그다드
공습과 지상군 진격과정에서 열화우라늄탄을
포함한 효과적 공격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다. 열화우라늄탄 사용을 막으려
는 움직임은 미군의 군사력 약화를 의도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군들이 지상전을 벌이며 1차 걸프전 때 이라크
남부의 요충지 바스라 일대에 열화우라늄탄을
퍼부은 것처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비친 것이다.

열화우라늄은 독성이 있는 중금속으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밀도
는 납의 1.7배로 매우 단단하다.
탱크 같은 표적에 닿으면 끝이 날카롭게 변해 표면을 뚫고 들어간다. 1차
걸프전에서 이라크 탱크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미군 탱크에 포격을 가해도 긁히는 자국만 냈을 뿐이다. 이에 비
해 열화우라늄탄을 장착한 포탄을
맞은 이라크 탱크들은 파괴당하기 일쑤였다. 열화우라늄탄 위력은 목표물
을 파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표적에
명중해 폭발하면 미세입자로 기화돼 파편이나 먼지 형태로 주변을 뒤덮는
다. 만일 시가지에서 폭발하면 가까운
건물의 환기 시스템을 통해 방사능 먼지가 유입된다. 전시상황이라면 진공
청소기나 고압으로 물을 뿜어내는 ‘워터젯’으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 (사이언스 올제)

설령 미군이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라크 전쟁이 방사능전으
로 이어질 수 있다. 결정적 순간에
방사능 폭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사능 무기는 티엔티(TNT)나 화
석연료 같은 재래식 폭발물에
방사능 활성이 높은 물질을 첨가해 만든다. 대표적인 방사성 동위원소는 이
달 초 경기도 안양에서 분실되었다가
나흘 만에 공원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세슘 137을 비롯해 코발트 60, 이리
듐 192 등이 있다. 세슘은
핵분열에서 생기는 것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고가의 물질이다. 하지만 방
사성 동위원소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식품의 세균박멸이나 암세포 파괴, 용접검
사, 원유탐사 등에 널리 쓰인다.
이들을 공포의 방사능으로 바꿔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방사능 무기는 군사적 효용성이 떨어져 전장에 등장하지 않았
다. 무엇보다 방사능만으로는 빠른 효력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방사능 무기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 적어도 수주일이 걸
리고 피해 범위도 제한적이다. 게다가
방사능 무기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방사성 동위원소에 필연적으로 노출된
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특이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방사능 무기가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
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특정 지역에
대한 접근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명분 없는 전쟁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만일 방사능 폭탄이 투
하되면 피폭지역은 암의 자연발생률이
50% 높아지고, 30년 동안 10명 가운데 1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
다.

열화우랴늄탄에 방사능 폭탄도 등장할 태세

지구상에 인도주의적 전쟁이란 없다. 어떤 일이 전쟁 상황에서 벌어질지 아
무도 모른다. 심지어 전쟁과 관련
없는 도시에 방사성 물질이 살포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방사능 테러는 누
구도 경험하지 못했다. 암 클리닉에서
도난당한 의료장비나 휴대용 방사능 열생성기 등을 잘못 작동해 피복당한
정도였다. 만일 도시에서 방사성 물질이
폭발한다면 1차 걸프전 뒤 이라크 사람이나 참전군인들이 암과 백혈병 등
에 시달린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려면 표면이나 틈새에 끼어 있는 먼지까지 모두 제거
해야 한다. 인도의 보도블록이나 도로의
아스팔트를 제거하고 온갖 식물과 동물들을 불태워야 할지 모른다.

방사능 무기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첨단무기의 화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
무리 공포감을 높이더라도 대량살상무기로
한계가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참전국들은 방사능 생화학 무
기에 떨고 있다. 이라크가 사린가스·보툴리누스균·탄저균
등 생화학물질과 함께 방사성 물질을 사용하면 전쟁 양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위험에서 예외는
아니다. 직접 전투를 치르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지상군에 포함되는 공병대
를 파견할 것으로 알려진 때문이다.
만일 방사능 폭탄이나 열화우라늄탄 폭발지역에 우리 군이 주둔한다면 방사
능에 노출될 수 있다. 발칸에 배치된
병사들을 중심으로 방사능이나 독성물질에 감염됐을 것이라는 공포가 유럽
대륙을 휩쓸었다. 지금도 이라크에서만
명분 없는 전쟁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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