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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살아야한다” 불씨 지핀 유랑길 250Km – ‘새만금 유랑단’ 13일간의 여정

△ 13일 동안 새만금갯벌에서 서울까지 새만금 간척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걸어온 새만금 도보순례단 20여명이 28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분수
대 광장 앞에 도착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갯벌은 살아야한다” 불씨 지핀
유랑길 250Km

‘새만금 유랑단’ 13일간의 여정

“생명을 죽이고 삶을 파괴해 얻는 편안함에 맞서고 싶어, 개발과 파괴의
시발점인 서울까지 걷고 싶었습니다.
새만금 갯벌과 바다가 사는 길은 대통령을 바꿔서도 아니고, 정책을 바꿔서
도 아니고, 우리 마음 속에 갯벌이
살아있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어 걷기로 했습니다.”

지난 16일 전북 부안 계화도에서 출발한 ‘새만금 유랑단’이 한겨울 폭설
과 비바람을 뚫고 250여㎞를
걸은 지 12박13일만인 28일 무사히 서울 광화문에 도착했다. 새만금을 반대
하는 부안사람들을 대표해 가족까지
이끌고 유랑에 나선 신형록(38)씨와 고은식(44)씨는 “맛과 모시조개마저
사라져버린 올 겨울 갯벌을 보며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주민들의 아픔과 잊혀져가는 새만금이 안타까워, 우리
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인 걷기를
했다”고 말했다.

생업을 접고 새만금 살리기에 나선 지 5년째인 두 사람은 왜 걸었는지를
답하기 전에 ‘인연의 힘’을 먼저
얘기했다.

“지난해 6월 해창산 지키기 싸움 때처럼 이번에도 무슨 회의나 계획도 없
이 그저 ‘걸어 보자’고 생각중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닿은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게 되더라구요.”

때마침 전국 환경파괴현장답사 행사의 하나로 시화호에서 새만금까지 도보
여행을 준비하던 서울대 환경동아리
씨알(아래 아)의 학생들로부터 연락이 오고, 지난해 전국일주 때 들렀던 자
전거운동단체 발바리 회원들도 모여
들었던 것이다. 지난해 6월 방조제용 채석을 위해 깎여나가는 해창산을 지
키고자 암벽에 매달려 1주일을 버티며
투쟁을 벌였던 산악인 조태경씨, 지난해 전국일주 자전거 여행중에 들렀다
투쟁에 동참했던 풀꽃세상 회원 정상용씨
등도 가세했다.

환경설치미술가 최병수씨가 서울에서 한달음에 내려와 깎아준 ‘망둥이(짱
뚱어)’ 솟대를 리어카를 개조해 만든
수레 위에 세우고, ‘새만금 죽음의 방조제를 생명의 갯벌로’라고 쓰인 새
만금생명평화연대의 플래카드를 걸으니
그럴듯한 유랑단이 꾸려졌다.

부안의 두 가족을 비롯해 모두 15명으로 출발한 유랑행렬은 가는 곳마다
지역 환경단체나 시민단체 지지자들이
동참해 마지막날엔 25명으로 불었다. 연인원으로는 200여명이 참여한 셈이
다.

미처 걷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씨알 회원들이 십시일반 거둔
기금과 다큐멘터리 취재차
동행한 시민방송 알티비의 후원금이 여비의 전부였고, 식비 절약과 다른 지
역단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톤
트럭 한대에 취사도구와 침낭과 노숙용 천막까지 실었다. 하지만 계화도에
서 김제 거전 군산 서천 웅천 보령
홍성 예산 아산 시화호 안양 과천 등을 거쳐 서울까지 오도록 노숙을 할 기
회는 한번도 없었다. 농민회에서는
마을회관을, 종교단체에서는 교회나 성당을, 전교조에서는 폐교 등을 제때
찾아서 휴식을 갖게 해주었던 덕분이다.
밤마다 현지 주민들과 막걸리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새만금과 갯벌과 생명
의 고통을 나누고 살려야 한다는 의지를
다진 것은 물론이다.

걷기 8일째인 지난 23일 충남 아산만 방조제 앞에서 만난 유랑단은 모처
럼 맑은 날씨에 소풍을 나온 듯
신바람이 넘쳤다. 신푸른(6)·새벽(8) 남매를 비롯한 어린이 4명도 지친 기
색도 없이 28㎞에 이르는
이 날 여정을 씩씩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아침에 길을 떠날 때만해도 대책
이 없었던 잠자리가 이 날도 기적처럼
나타났다. 인근 아산군 인주면 모원리 주민들이 제공해준 마을회관은 20여
명이 하룻밤 피로를 풀기에 부족함이
없게 넓고 따뜻한 방과 부엌까지 갖춰져 유랑단은 모처럼 휴식을 즐겼다.

70년대 아산만 간척으로 어업을 버리고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마을 주민들
은 “서해대교가 생기면서 물살이
더 거세져 그나마 남아있던 갯벌마저 없어지고 호수만 남았다”며 새만금
주민들의 투쟁에 깊은 공감과 지지를
전했다.

때아닌 겨울비마저 내린 25일에는 시화호 주민들의 긴급 요청을 받아들여
시화호의 조개무덤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간척사업으로 죽어간 서해갯벌 생명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27일에는 지금도 줄기차게 방조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농업기반공사의 안양 본사와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새만금 갯벌 노제’도 올렸다.

3차례 사전답사로 새만금의 의미를 전하기에 가장 좋은 유랑길 600여리를
찾아낸 장소미(21)씨 등 씨알
회원들은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얼굴은 빨갛다 못해 새카맣게 탓지만 전혀
지친 구석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무모한 발상이라고들 했지만 새만금을 살리는 작은 불씨라도 피울 수 있
다면 얼마든지 더 걸을 수 있습니다.
노 당선자가 밝힌 ‘새만금 신구상 기획단’에 한가닥 기대를 품고도 싶지
만 ‘바다도시안’ 등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대안들이 세련된 개발논리의 반복으로 부안과 전북 주민들에게 또한
번 장밋빛 환상만 심어주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북미 원주민들이 관광수익을 위해 강을 개발하고 댐을 쌓으려는 백인업
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연어가
많이 돌아오는 것이 강과 우리들에게는 개발이다’. 백두대간에서부터 흘러
흘러 새만금에 이르러 갯벌을 이루고
바다와 교류를 하는 이 땅의 맥과 숨통을 가로막고, 생물과 사람들을 떠나
게 하는 것이 무슨 개발입니까.
왜 잘못된 공사인 줄 알면서 중단을 하지 못하고, 또다른 개발대안부터 얘
기해야 합니까”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신 대표의 목소리가 절박한 외침으로 변한다. 해마
다 만경강 동진강 하구갯벌을 거쳐
해창 장승벌까지 바닷길을 걸으며 갯벌살리기 운동을 해온 까닭에 걷기에
는 이골이 난 그이지만 이번 유랑에서는
새삼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는다고 한다.

“사람이 부끄럽습니다. 짱뚱어나 농발게처럼 왜 주민들은 끝까지 싸우지
도, 적응하지도 못하고 지레 포기했는지.

지금도 깎여나간 해창산이, 사라져가는 생합과 짱뚱어들이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는 듯하다는 고은식씨는
“설사 방조제가 사라진다해도 우리가 진정으로 자연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갯벌은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애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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