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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동 방사능아스팔트 찾은 건 ‘엄마’였다”


▲  “캐나다에서 1년 반 정도 지내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거예요. 운명처럼 다시 탈핵운동을 하게 됐죠.”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준비위원장. ⓒ오마이뉴스 권우성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많이 울었어요. 밥도 못 먹고, 자다가 가위에도 눌리고…그 사고가 제 잘못 같았어요.”

18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사무실, 인터뷰 내내 활기차게 말하던 김혜정(50)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준비위원장의 목소리가 순간 낮아졌다.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20년 넘게 탈핵운동가로 살아온 그였다. 그러나 막을 수 없었다. “비록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오염물질이 나오고 아이들이 고통 받는 게 가슴 아팠고, 우리들(탈핵운동가) 책임이라 생각했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는 그에게 ‘또 다른 계기’이기도 했다.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위원장은 1988년 고향에서 울진 원전 1호기가 가동하는 모습을 보며 탈핵운동을 시작했다. 2007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뒤 그는 쉬면서 다른 운동을 고민했다. 탈핵의 가치를 믿고 오랫동안 현장에서 싸웠지만, 현실은 척박했다. 김 위원장은 “대중의 호응이 없어 (운동가로서) 외로웠고, 탈핵운동이 소멸되어간다고 느꼈다”며 “저도 그만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1년 반 정도 지내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후쿠시마 사고가 터진 거예요. 운명처럼 다시 탈핵운동을 하게 됐죠. 다행히 후쿠시마 사고 전후 탈핵운동을 비교하면,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졌어요. 종교계, 생활협동조합, 인터넷 카페 등 다양한 집단이 활동하고 있고, 엄마들이 많아요. 그건 큰 변화죠.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고리 원전을 폐쇄하고, 원전을 더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요. 대선 공간에서 탈핵이 이슈로 등장한 것 역시 처음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로 불안해진 시민들, 직접 방사능감시센터 세우기로

김 위원장은 특히 ‘엄마’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탈핵은 무거운 주제이지만, 생명·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 사고 후, 탈핵 관련 행사나 집회에선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방사능아스팔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엄마였다”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불안해진 엄마들이 직접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 길을 가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 좋은 측정기를 갖고 있더라도, 개인이 모든 식품 속 방사선량을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술적 한계도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환경운동연합,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두레생협연합회, 여성민우회생협연합회, 에코생협, 차일드세이브, 한살림연합과 ‘모의(?)’를 했다. 일반 시민들의 생활이 정말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가 알아보기 위해 시민들 스스로 측정센터를 세우자고. 곧바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준비위원회'(아래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  “시민들의 모금으로, 전문성을 갖춘 방사능감시센터를 만든다는 건 탈핵운동이 굉장히 발전했다는 뜻이죠. 탈핵운동이 생활 속으로 확장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준비위원장.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 위원장은 시민방사능감시센터를 세우려는 이유 중 하나가 “정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식품 속 함유량 기준치를 관리하는 방사성 원소는 세슘 134와 137, 요오드 131로, 세슘의 기준치는 1킬로그램(kg)당 370베크렐(Bq), 요오드는 300Bq/kg이다. 그는 “일본도 원래 370이었는데, 후쿠시마 사고 후 국내외 유통되는 식품 기준치를 100으로 낮추면서 사실상 모든 농축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인정했다”며 “한국 정부는 이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은 채 기준치 이하면 그냥 유통시킨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범위도 제한적이다. 수산물 방사능 정보의 경우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홈페이지에 매일 현황보고서가 올라오지만 내용이 상세하지 않다. 전문기관에 의뢰를 하려고 해도 적당한 규모나 기술력을 갖춘 곳이 적다. 그나마 검사가 가능한 곳들은 대개 정부기관이라 일반 시민이나 환경단체들이 검사를 의뢰하기조차 어렵다. 준비위원회가 시민방사능감시센터를 ‘정부 수준’으로 세우기로 목표를 정한 까닭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필요한 예산만 1억5000만 원에 달했다. 준비위원회 소속 단체들은 각각 모금운동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은 “설마’했는데 진짜 걷혔다”며 환하게 웃었다. 준비위원회는 지난 1월 방사능핵종분석시스템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설치했고, 현재 담당 연구원을 모집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세운 방사능감시기구는 독일 방사선방호협회, 일본 시민방사능측정소가 있지만, 한국에는 처음이다. 현재 울진과 영광·월성·신고리 원전에 있는 ‘민간환경감시기구’들은 지식경제부의 ‘원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민간환경감시기구 운영지침’에 따라 운영 중인 곳이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성격이 다르다. 위원장도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맡고 있다.

“시민들의 모금으로, 전문성을 갖춘 방사능감시센터를 만든다는 건 탈핵운동이 굉장히 발전했다는 뜻이죠. 탈핵운동이 생활 속으로 확장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국내 유통 중인 식품들을 조사해서 방사선량을 있는 그대로 공개할 계획이에요. 우리가 발표해야 사람들이 조심하고, 방사능 오염 실태도 명확히 파악할 수 하고 정부도 제대로 규제할 테니까요.”

“목표는 정부 기준치 강화… 결국 핵 없는 세상으로 가야”


▲  “우리나라에만 원전이 23곳이고, 서해 쪽에는 중국 원전이 있어요. 후쿠시마 사고로 방사능 오염 수산물이 들어올 수도 있는 등 위험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건강을 지키려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죠.”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준비위원장. ⓒ오마이뉴스 권우성     

김 위원장은 “궁극적인 목표는 정부 기준치를 완전히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바스찬 플루크바일 독일 방사선방호협회장이 식품섭취에 따른 방사선 노출정도 등을 감안, 성인은 8Bq/kg, 유아는 4Bq/kg로  방사성 물질 허용치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모든 국민은 0Bq/kg을 원한다”며 “기준치를 제로(0)로 할 수 없다면, 이정도로 엄격하게 해야 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방사선량 측정치, 정부 정책 해설 등은 물론 독일 방사선방호협회 등 해외 연구기관과 교류, 다양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가까운 일본과는 언제든 관련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핫라인’을 연결하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4월 15일 창립기념식과 더불어 개최할 ‘방사능시민건강국제심포지엄’에는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현 국경없는 의사회)’ 공동창립자로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호주의 탈핵운동가 헬렌 캘디컷을 기조강연자로 초청했다. 일본 시민방사능측정소와 ‘방사능 피폭과 건강관리 방식에 대한 시민전문가위원회’ 관계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인터뷰 끝 무렵, 김 위원장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꺼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를 세운 데에도 공짜는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있었고, 자신들의 돈으로 방사선 측정기를 구입해 직접 방사능 오염 아스팔트를 찾아낸 엄마들이, 센터 설립에 힘을 보탠 시민들이 있었다.

“우리의 관심이 건강을 지켜요.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 것 역시 내가 변하고 실천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공짜로 얻을 수 없어요. 우리나라에만 원전이 23곳이고, 서해 쪽에는 중국 원전이 있어요. 후쿠시마 사고로 방사능 오염 수산물이 들어올 수도 있는 등 위험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건강을 지키려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야죠.

근본적으로는 결국 핵이 없어져야 해요. 우리는 값싸다고, 어쩔 수 없다며 원자력을 이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원자력을 택하지 않은 어린 세대들에게 핵폐기물과 방사능에 오염된 땅, 먹거리를 물려주게 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 출처 : “월계동 방사능아스팔트 찾은 건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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