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2004아시아환경현장]흙빛 바람강에서 불어오는 희망의 물결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엄마,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프로 봤지?
원주민들과 정글 속을 내가 누비고 다닐거야. 믿겨져?”

도전 지구탐험대는 극한상황에 도전하여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방송한다. 처음 우리가 한국을 떠날 때 이렇게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설레임도 잠시 말레이시아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우리의 입장은 그곳에서 볼 것만 보고 그대로 지나쳐가는 방문객의 수준이 아니었다. 현지에서
바로 접하게 되는 진지하고 놀라운 상황의 현장을 기록하고 영상으로 담느라 무척 바빴다. 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서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곳에 갔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자세하게 기록하려한다. 바로 ‘내가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지금부터 숭가이 껄루안(Sungai Keluan: 껄루안 강
유역)의 원주민 공동체 마을의 삶과 치열한 투쟁 이야기, 파괴되어 가고 있는 열대우림을 복원하기 위한 그들만의
숲 살리기 운동들을 소개한다.

“와~ 숲 속에 이런 롱하우스가 다 있네”

▲껄루안 롱하우스 모습 ⓒ마용운

지난 6월 17일 오후 6시, 백 미터쯤 되는 롱하우스(longhouse; 하나의 길다란 목조건물을
벽으로 막아 여러 가족이 독립된 생활을 하며 공동으로 살고 있는 사라와크 원주민들의 독특한 연립 주거형식)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껄루안 사람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우리를 껄루안 호텔에 안내를 했고, 그곳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외부인들을 위해 롱하우스 방 켠을 이용해 마련된 잠자리였다.
내부의 구조는 더욱더 특별했다(우리팀 4명이 한 침대에서 잤다). 호텔 지배인인 루카스는 모기장도 쳐주고 물탱크에 물도 담아주는
등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짐을 풀고 7시정도에 20여명의 사람들이 마루에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밥과 반찬을 한곳에 모여 서로 나눠 먹었다. 특별히 손님을 위해 식사 후에는 손 씻을 물을 가져다주었다. 롱하우스에서
마루의 의미는 공동생활의 공간이자 문화의 공간이다. 전통춤도 추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회의도
하고, 모든 일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식사 후에는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 목적과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선물(탈과 부채, 라면 등)을 건네줬다. 분위기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쌀로 만든 이들의 전통주인 ‘부락(burak)‘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이들과의 생활을 시작했다.

▲사라와크 지도

껄루안 사람들은 카얀(Kayan) 부족에 속한다. 카얀족의 조상들은 보르네오 섬 남서부, 현재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Kalimantan)에서 이주해 왔다고 전해진다. 1800년대 껄루안 사람들은 바람강 유역으로 이동했을 때 사람사냥,
노예제, 사회분쟁 등의 매우 격렬한 시기를 보냈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사람 사냥(일명 헤드헌팅)과 같이 잔인한 관례는
법으로 금지되었고, 그 때의 생활, 문화, 전통 등을 존속시킬 수 있었다. 이런 전통적인 풍습이 잘 지켜졌기 때문에 껄루안의
롱하우스 공동체가 현재까지 잘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60여개의 원주민 공동체가 현재는 20여개로 축소되고 있고, 그들만의
전통적인 문화도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UBRA의 숲살리기 운동
“땅은 우리의 생명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사라와크에도 근대화가 시작하면서 주 토지법의 원주민의 관습적 권리(Native
Customary Rights)에 의해 보호되던 지역에 사라와크 주정부가 ‘벌목 허가서’를 발행하면서 롱하우스 내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벌목회사들은 숲의 나무들을 계속해서 베어갔다. 점점 잃어 가는 땅과 나무에 대한 보상도 없었고, 그에 따른 적절한
해명도 없어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뭔가 대책을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1987년 우마바왕 주민협회(Uma
Bawang Residents’ Association; UBRA)를 결성했다.
처음 설립 때부터 현재까지 17년간 UBRA 대표로 활동해온 족 자우 에봉(Jok Jau Evong)은 “벌목 때문에 파괴된
숲과 천연자원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UBRA는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공동체 프로젝트를 만들어
그런 복원 프로젝트들에서 모은 기금을 또 다른 프로젝트들을 만드는데 다시 쓰고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껄루안이 첫 시도를 한 것이었기 때문에, 실패도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례를 토대로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고기 양어장의 모습 ⓒ마용운

18일 오전 9시에 우리팀은 UBRA에서 진행해온 프로젝트들을 직접 보기 위해 이동했다.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숲 복원 프로그램과 지도 제작을 들 수 있다. 숲 복원은 처음 92년 9월에 10에이커 규모의 묘목들이 심어지는
것으로 시작됐다. 현재 까뽈, 마란띠, 앵까방 등의 9천 여그루의 나무들이 자라서 키가 15미터 이상에 이르고 있다. 앵까방의 경우
내구성이 좋아 집을 지을 때 많이 사용되는 목재이다. 주로 보트나 관 등을 만들 때 사용된다. 최근에는 벌목꾼들에 의해서 몰래
베어지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 물고기 양어장, 개구리 양식장(4달만 운영하고 중단됐다), 후추농장, 공동 쌀 은행(땅이 기름지기 때문에 거의 매년 많은
쌀을 수확한다)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지도 제작은 95년 7월에 보르네오 프로젝트의 몇몇의 지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본적인 지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껄루안에서 열린 ‘지도 제작 워크숍’은 UBRA와 SAM(지구의
벗 말레이시아)이 공동 조직한 것이다.
처음부터 지도 제작에 참여해 온 루이스는 “처음에 벌목회사는 우리에게 토지소유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땅과 숲을
표시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지도 제작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GPS, 나침반, 측정줄자 등을
가지고와서 가르쳐줬다. 지금은 우리들이 지도 전문가가 되어 다른 지역 사람들의 지도 제작을 돕고 있다. 지도 제작은 매우 중요하다.
땅에 대한 권리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벌목회사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최근, SAM은 GIS(지리
정보 시스템)을 이용하여 껄루안 지도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있다. 위성상과 결합된 GIS 레이어의 사용은 자원 관리가 주 목적인
껄루안 지도의 사용을 크게 도울 수 있다.

현재 껄루안 사람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전통방식의 새롱하우스를 짓는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롱하우스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양철 지붕은 내부의 공기를 덥게 하고 기둥엔 값 싼 목재가 사용돼 튼튼하지 못하다. 또 수용할 수 있는 가구의 수가 적다.
1999년부터 공사가 중단되었고, 지금은 너무 낡아서 기둥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다.
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이렇다. 새로 짓는 롱하우스의 경우, 널빤지 지붕과 목재 기둥, 그리고 보를 사용하는 등 현대적인 재료로
만들어질 예정인데 전통양식의 롱하우스를 만들려면 훨씬 비용이 많이 들고 만드는 과정도 힘들다. 불행히도 요즈음은 널빤지를 만들
흑단과 같은 값비싼 목재가 이미 예전에 벌목회사가 많이 벌목해가서 외부에서 사와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숲을 지키기 위한 17년간의 투쟁
“우리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건강해”



▲고기잡이를 하기까지 ⓒ마용운

18일 오후에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껄루안의 지류인 떰하강으로 고기 잡으러 가기 위해 ‘그루바작’이라는
나무뿌리를 찧었다. 이 나무의 뿌리는 우리나라의 ‘여뀌’처럼 독성을 가지고 있어 물고기를 기절시킨다. 우리는 ‘라와’라고 불리는
물고기 잡는 뜰채를 들고 숲 속을 누비며 통나무 다리를 건너 한 시간정도 걸었다. 적당한 위치에 그물망을 풀어 ‘그루바작’을
물속에 담그자 물 위로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다시 못해볼 신기한 경험이었다. 잡은 물고기와 함께 식사를 하고 롱하우스로
돌아왔다. 저녁시간에는 UBRA의 투쟁이야기가 시작되었다.

UBRA는 숲 보존을 위해 벌목용 도로를 봉쇄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이것은 사라와크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도로 봉쇄 가운데 하나였고, 사라와크의 벌목 문제에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불행히도, 결국 이 도로
봉쇄는 정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1988년에 두 번째 도로 봉쇄가 있었으나, 42명의 주민들이 체포되어 아무 죄도 없이 2주 동안이나 갇히는 것으로 끝났다.
이때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체포되었던 당시 19살이었던 조오지는 “우리가 잡혀있는 2주동안 경찰은 아무것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42명이 작은 방에
갇혀 있었고, 화장실도 하나뿐인 열악한 상황에서 신문은 계속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속옷만 입은 상태에서
추위를 견디며 힘들게 버텼다. 결국 더 이상 시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풀려났다. 한달 후 법정에서 재판 결과로
무죄임이 판명되었고, 소송에서 값진 승리를 얻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에 정부로부터 보상금 25만 링깃을 받았다.
현재도 UBRA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다른 공동체에 희망과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UBRA의
사례는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껄루안 롱하우스에 붙어있는 플래카드 ⓒ마용운

마지막 날 밤은 무척이나 길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모두 건강해” 우마바왕 사람들은 가족을
아주 소중히 여기며 가족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더라도 모두 건강하게 잘 살면 그것이 곧 행복인 것이다“
숲은 그들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글/ 시민환경정보센터 최홍성미

admin

국제연대 활동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