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2004아시아환경현장]평화를 꿈꾸는 열대우림의 방랑자, 페난족

인류 최후의 방랑민족 ; 페난족

사라와크의 원주민 가운데, 유일하게 정착생활을 하지 않고 정글에서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페난(Penan)족이다. 현재 1만여명의 페난족이 살고있는데, 바깥 세상의 영향을 받은 결과 대부분은 마을을 이루고 정착해 살고
있지만, 3백-4백명 남짓한 페난 사람들은 여전히 정글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비정착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수렵·채집인들은 아프리카의 음부티 피그미(Mbuti pygmy)족과 남미 아마존 북서부의 마쿠(Maku)족 등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몇몇 부족만 남아있다.

▲바람총 사용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페난 원주민 디순

수렵과 바람총

비정착 페난족은 농경과 목축을 하지 않으며, 수렵과 채집으로만 살아간다. 이들은 바람총(blowpipe;
대나무나 나무통 속에 화살을 넣고 입으로 불어서 목표를 맞히는 사냥도구)을 능숙하게 다루어 새와 다람쥐, 원숭이, 도마뱀, 사슴,
멧돼지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사냥해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는다. 특정한 나무 수액을 이용하여 만든 ‘따점’이라고 불리는 심장독소를
화살 끝에 발라 사용하는데, 이 바람총은 현대인이 사냥에 이용하는 엽총보다 더 정확하며 소리 없이 표적을 맞힐 수 있다.

▲페난족의 주식인 사고만들기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의 선물 ; 사고야자

열대우림에서는 야생동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단백질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탄수화물을 상대적으로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탄수화물을 얻기 위해 적은 규모라도 농사를 짓는데, 동남아시아에서는 열대우림이 주는
천혜의 선물, 사고야자(Sago palm)가 있어서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다.

사고야자는 나무 둥치에 전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데, 페난족은 이 사고 전분을 채취하여 주식으로
삼는다. 사고 채취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계유지 방식 가운데 하나로서, 한 가족이 하루만 일하면, 일주일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이다.

열대우림의 또 다른 이름 ; 약 창고

전적으로 열대우림에 의존해 살고있는 페난 사람들은 숲 속의 거의 모든 동식물의 특성을 알고있으며,
이를 약재로도 이용한다. 배탈·설사·두통·피부병 치료뿐만 아니라 기생충 퇴치·뱀 해독·피임·강장 목적에 이용하는 식물도 있다.
심지어 악령을 쫓아내고,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하거나, 사냥개의 사냥능력을 키우는 마법 식물도 있다.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필수품만 가지고 이동하는 페난 원주민들

함께 나누고 평화로운 평등사회

이처럼 단순한 생활을 하는 페난족 사회는 거의 완전히 평등한 사회로서, 사회계층이나 계급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페난 사회에는 빈부의 차이가 없으며, 모든 먹을 것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공평하게 분배된다. 나눈다는
것이 워낙 당연하게 여겨져서 그런지, 페난 말에는 ‘고맙다’라는 표현이 없다. 각 그룹마다 추장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대변인 역할 정도만 한다. 남녀 차별이 없으며, 폭력과 다툼도 완전히 없을 정도이다.

열대우림 파괴

이처럼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부한 열대우림 속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해가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페난족에게
개발과 문명은 파멸을 가져왔다. 사라와크에 있는 이들의 고향은 지구상에서 가장 급속하게 열대우림 나무들이 베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라와크의 벌목은 1980년대에 급격하게 확대되어, 1983년에 말레이시아의 열대목재 수출량은
전세계 열대목재 수출량의 60%를 기록할 정도였다.

숲이 파괴되자 숲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사라졌다. 온갖 야생동물도 사라지고, 사고야자나무와
각종 약재, 나물들도 희귀해졌다. 나무가 베어진 땅의 토양은 연중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에 쉽게 유실되어 맑게 흐르던 강물이 누런
흙탕물로 변했다. 이제는 강물을 마음대로 떠 마실 수도 없으며, 단백질 공급원인 수많은 물고기들이 사라졌다.

저항 ; 페난의 땅과 숲을 파괴하지 말라

숲의 파괴는 페난족과 사라와크에 살고있는 다른 원주민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놓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숲이 벌목 때문에 파괴되고 원주민들의 삶이 황폐화되자 원주민들은 벌목에 반대하며 조상의 땅과 열대우림 보호운동을 시작하였다.

▲롱사얀 마을의 최고 연장자 깨우 할아버지

조직적으로 저항을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숲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던 페난족이었다.
1987년 2월 13일, 사라와크 동부 바람과 림방 지역의 페난족들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선언을 발표했다.

“숲 파괴를 중단하라. 숲은 우리의 삶이며, 우리는 그
누구보다 먼저 이곳에서 살아왔다. 우리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정글에서 사냥하며, 사고를 만들고, 숲의 과일을 따먹어왔다.
우리의 삶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만족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벌목회사가 강물을 흙탕물로 만들어놓으며 정글을 파괴하고
있다. 흙탕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으며, 파괴된 숲에서는 야생동물이 살 수 없다. 이러한 벌목 활동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의 땅과 우리가 살아갈 땅을 되돌려달라. 우리는 그 땅을 보다 현명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페난족의 대표인 우리들은 다음을 촉구한다 : 파괴를 중단하라. 림방과 뚜또, 파타 지역에서의
모든 벌목을 중단하라. 우리의 것들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달라. 우리의 목숨을 살리고 우리 문화를 존중하라. 이러한 우리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위협에 처하게 된다면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다.”

벌목 도로 봉쇄

결국, 1987년 3월 31일, 바람총으로 무장한 한 무리의 페난 사람들이 벌목용 도로를 가로막고
나섰다. 이후, 26개 공동체의 페난 사람들은 25개의 벌목용 도로를 여덟달 동안 봉쇄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카얀, 껀야,
껄라빗 등 다른 원주민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벌목 도로 봉쇄가 사라와크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굶주림과 더위뿐만 아니라 군대와 경찰, 벌목업자가 고용한 용역직원의 발길과 곤봉 등 이들을 괴롭히는
요인은 무수히 많지만, 도로 봉쇄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최근까지도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도로를 가로막던 수백명의 페난 원주민들이 폭행당하고 체포되어 구금되었는데, 이와 관련한 법적 투쟁이 아직까지 진행중이다.

페난족 권리 보호운동과 사라와크 페난협회

이러한 페난족 투쟁을 이끌고 있는 조직이 1989년에 결성된 사라와크 페난협회(Sarawak Penan
Association)이다. 이삼십년 전에 정착하여 건설한 롱사얀 마을의 추장인 아장 깨우씨가 협회의 회장인데, 지금 페난 사람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인 열대우림 파괴뿐만 아니라, 신분증 발급과 교육 시설 확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신분증이 있어야 도회지로 나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숲 속에서 떠돌아다니던 페난
사람들에게 출생증명서가 있을 리 만무하며, 신분증도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관공서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렵게
교통비를 모아 멀리 있는 도시에 가더라도 담당 관청에서는 늦게 등록한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게 한다. 이는 돈이 없는 가난한 페난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분증 없이 지내며, 투표 참여 등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해맑은 미소의 아이들

게다가, 롱사얀과 같은 페난족 마을에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이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 결국, 롱사얀 사람들은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다른 부족 마을에 있는 기숙학교로 아이들을 보내야하지만,
거기에서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곤 한다. 심지어 여학생들은 이곳 어른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페난족은 워낙 싸우기 싫어하고 비폭력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겨도 부모가 그냥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고작이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 부모들과 같은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롱사얀에도 학교가 생길 수 있도록 꼭 도와달라고
아장 깨우씨는 간곡히 부탁했다.

페난족의 희망 ; 롱사얀의 아이들

그러나, 이런 페난족의 미래가 반드시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과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어른들이 있고, 이를 배우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해맑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숲에서 사냥하고 먹을 것을
찾는 방법을 이미 잘 알고있는 17살 뺀디는 “나의 미래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부모들의 숲 보호운동을 지지하며 나이가 들어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 서로
싸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 서로 총을 겨누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뉴스로 접하는데, 그런 것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땅에서 평화스럽게 살고있는 사람들이며, 우리 땅을 잘 지키고 싶다.”
라고 말한다.
이런 아이들이 있는한 롱사얀과 페난족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보르네오섬의 열대목재를 대량 수입하여 이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데 한몫 기여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페난족의 삶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하고 이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어야한다.

숲의
전령 ‘페난족’과 하룻밤을 보내다

– 살아 있는 열대우림이 우리에게 주는 것
‘생명의 숲’이라고 하지만 정말 살아 있는 숲은 어떠한 것인가 생각해봤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이고 천연 자원이 풍부한 그런 곳이 생명의 숲 아닐까. 흔히 살아 있는 숲을 말하자면
울창한 나무, 상쾌한 공기, 다양한 곤충과 동식물이 있는 그런 곳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사라와크의 페난족에게 살아 있는 숲은 다릅니다. 그들에겐 생활을 이어가는 생명 자체가 숲입니다. ‘미샤이’라고
불리는 야생 바나나 나무에 새순이 자라 페난족이 되었다는 신비스러운 전설처럼 페난족은 숲 안에 있었습니다.
롱사얀의 페난족은 우리를 노메딕(Nomadic, 지금 롱사얀의 페난족은 반 정착생활을 하고 있지만 20년 전만해도
정착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시절의 숲 속으로 안내했습니다. 하반신을 적시도록 찬 강을 건너고, 습하디
습한 정글을 헤치며 도착한 그 곳은 바로 옆에 맑은 물이 흐르는 숲 속이었습니다.

“숲은 집이다.” 우선 주변에서
해온 나무를 일정한 길이로 자른 후에 서로 엮어 간이움막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야자나무의 잎을 겹쳐 넓게
엮은 나뭇잎 지붕을 얹혔죠. 울퉁불퉁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허름한 원두막 같았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스위트 홈’이었습니다. 풀벌레 소리, 온갖 숲속의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숲은 식당이다.” 페난족이 주식으로
먹고사는 사고(sagoh)야자 나무 한 그루를 베어 4등분으로 나누었습니다. 페난 사람들은 하얀 속살을
드러내도록 나무 안을 열심히 파냅니다. 옆에서는 캐낸 속살을 직접 만든 여과장치에 물을 부어가며 밟아서
자연스럽게 걸러냅니다. 그냥 그대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페난족은 걸러낸 깨끗한 사고야자의 속살을
말려 가루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요리법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사고야자는
페난족에게 최고의 재산입니다. 이 날 저녁, 만찬이 벌여졌습니다. 다 같이 둘러앉아 찹쌀 풀같은 사고요리와
강에서 잡은 이름 모를 민물고기요리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국물을 떠먹는 숟가락도 잎으로 만든
것이고 모두 주변 숲 속에서 얻은 것이었죠.

“숲은 놀이터이다” 롱사얀의 페난족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손을 꼭 잡고 강을 건너고 숲을 헤치던 아이들에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정글 속에서 함께 뛰어 놀고 민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 속으로 몸을 숨기던 소박한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순간 그들과 동화되었죠. 이들은 숲 속에서
먹을 것을 찾는데 선수입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조그만 낚시대로 물고기 10마리는 거뜬히 잡는 ‘래리’.
야자나무 껍질을 몇 겹 벗겨 달콤한 군것질 꺼리를 만들어내는 ‘팬디’. 페난족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지만
숲에서 생활의 지혜를 배웁니다.

“숲은 병원이다.” 너무 신이
났었나 봅니다. 페난 사람들과 정글생활에 푹 빠져 두통이 심해진 것도 몰랐습니다. 밤이 되니 머리가 너무
아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어요. 그때 바로 부족장 아장 깨우는 식물 뿌리를 빻아 제 머리와 목 주변에
발라주었습니다. ‘또보떠딩’이라는 이 식물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플 때 발라주거나, 즙을 내 그 물로 목욕하면
아픔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준다고 합니다. 그날 밤 저를 위해 약용식물을 구하고 마음을 다해 기도해준
페난족 사람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페난족에게 숲은 집입니다. 병원이고 학교입니다. 또 놀이터입니다. 숲은 상점이며 식당입니다. 결코 숲과
떨어질 수 없는 페난족의 삶. 그들과 함께 보낸 숲 속의 하룻밤은 아름다웠습니다. 글/ 조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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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국제연대국 마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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