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캄보디아 현장소식③]라타나키리의 소수민족과 얄리 댐

지나온 일정

6월 26일 토: 서울에서 프놈펜으로 이동. 하루 종일
걸리다.
6월 27일 일: 칸달 지역 섬유 공장 폐수 문제 조사
6월 28일 월: CEPA, NGO Forum 등의 환경 단체 면담
6월 29일 화: 환경학과 교수, 환경기자협회 등과 면담
6월 30일 수: 프놈펜에서 라타나키리의 반룽으로 이동. 하루 종일 걸리다.
7월 1일 목: 라타나키리에서 맥 미안과 함께 얄리 댐 피해를 입은 소수민족 방문

방문 계기

베트남에서 발원하여 캄보디아로 흘러드는 세산 강에는 양국 간 국경에서 약 20km 떨어진 베트남
지역에 얄리 댐이 있습니다. 1995년 경 수력발전용으로 만들어져 담수를 시작하다 1996년 폭우 때 방수구가 너무 작아 유입되는
수량을 다 내보내지 못하고 댐이 일부 무너져 그 하류지역에 많은 피해를 초래하였습니다. 물에 휩쓸려 사망한 사람만 3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 후로도 수질 오염, 수량 감소 등의 하류 지역 피해가 있다는 얘기가 IRN(International Rivers
Network, 국제강네트워크)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피해를 입었으며, 입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여기에
온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상황, 편견을 버려라.

방문 계기와 위와 같았지만 처음부터 저는 저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를 가이드해주기로 한 CEPA (Culture and Evironment Protection Association)의
활동가 Vanarra Tek (반나라 텍)에게 대략 어느 어느 이슈에 관심이 있으니 세부적인 것들은 알아서 적절히 결정해 주고,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방문지를 추천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고, 이 상황에서 펼치고 있는 운동의 방식도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의 경험을 가능한 한 잊어버리고 여기 사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어떻게 풀어 나가려고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두 가지 핵심: 소수민족과 NGO

라타나키리 지역의 환경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소수민족과 시민단체입니다.

_ 소수민족

캄보디아 전체를 통틀어 인구의 95%는 크메르 민족이고 나머지가 소수민족입니다. 그런데 여기 캄보디아
북동쪽 끝에 있는 라나타키리는 인구가 약 100,000명인데, 크메르인이 20%밖에 안 되고 80%가 소수민족입니다. 소수민족에는
라오스 민족과 크룽족 등 9개 민족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캄보디아는 국토의 75%가 논과 같은 평지습지인데 반해, 여기 라타나키리는
산지가 대부분이며, 소수민족들은 세산 강 유역에 사는 라오스 민족과 산악지대에 사는 나머지 8개 고산족으로 구성됩니다. 크메르
민족은 라타나키리 지방의 행정중심인 반룽의 시내에만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 소수민족들은 놀랍게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룽 시내에 있는 크메르
민족들은 전기를 사용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등의 현대적인 생활을 하는 반면, 소수민족은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라는 사실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라오스
민족은 원래 강 유역에서 물소를 이용해 쌀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는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끄룽족 등의 고산족은 산에서 과일
채집, 사냥, 작은 규모의 화전을 이용한 밭 농사를 주로 하고 생활합니다. 아직도 이들의 삶의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단지,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면 원래는 남녀 모두 치마만 입고 생활했었는데, 요새는 바지와 웃옷을 입는다는 정도입니다. 지금도
많은 남자들이 무릎까지 오는 한 겹 치마를 입고 있으며, 웃옷을 안 입은 여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_ 얄리 댐으로 인한 소수민족의 피해

위와 같은 소수민족의 전통적인 생활이 피해를 입게 되는 두 계기가 얄리 댐과 불법 벌목입니다.
우선 얄리 댐으로 인한 피해를 보면, 1996년에 댐의 사고로 인해 마을의 지표면에서 2m 높이까지 물이 쓸고 가버렸습니다.
지금도 기울어진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원래 이들의 집은 지표면에서 약 1m 높이의 기둥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짓는데,
이제 새로 짓는 집들은 기둥의 높이를 2m 이상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2000년부터 얄리 댐이 수력발전을 시작하면서 그 전까지는 댐에 물을 담느라
세산 강이 완전히 말라 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 땅에 농사를 짓고 한창 모가 자라는데 수력발전을 위해 물을 방류함에 따라 갑자기
불어난 물이 농작물을 다 쓸어가 버렸습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심어놓은 벼가 쓸려 가버리는 피해를 해마다 세 번이나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이들은 강 주변에서 농사 짓는 것을 포기하고, 일부는 물소를 팔아 생계를 이어 가고 일부는 산으로
올라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이 지역 산은 전부 습지라서 고산지대임에도 쌀 농사가 가능합니다. 지금도 원래 강 주변에
사는 라오스 민족이 산으로 올라가 숲을 베어내고 쌀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집은 강 아래 있고, 일터는
산 위에 있으니 오가는 어려움이 큽니다. 그래서 아예 농사철에는 산 위로 올라와서 살고, 농사철이 끝나면 다시 고향마을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세번째 피해는 어족자원입니다. 건기에 댐이 담수를 하느라 세산 강의 물이 완전히 말라 버리자 그렇게
풍족했던 어족자원이 거의 전멸했습니다. 세산 강만이 아니라 스뛩 뜨렝 지역에서 메콩 강과 만나는 콩 강, 세산 강, 스레폭 강
모두 댐 때문에 건기에 강이 말라 어족자원이 거의 전멸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생계를 이어가지 위해 숲에서 길이가 1~2m 되는
도마뱀이나 앵무새 등을 잡아서 팔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_ 불법 벌목으로 인한 피해

불법 벌목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두 나라로 쪼개져 각각 한쪽은 베트남의 식민지처럼 되고
한쪽은 식민지는 아닐지언정 태국의 압력을 받았던 1980년에서 1989년 사이, 베트남과 태국은 캄보디아로 진출해 나무를 베어갔습니다.
우리가 건너온 스레폭 강의 스레폭 다리도 베트남 정부가 벌목된 목재의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그 당시에 건설한 것이었습니다.

시하누크 국왕이 1989년에 중국에서 돌아와 갈라진 나라의 통일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93년에
통합 선거가 이루어지고 내각이 구성됩니다. 캄보디아 원년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는 1993년 제로에서 시작하였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후 불법 벌목을 자행한 그룹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외국계 벌목 회사이고, 또 하나는 Powerman이라고
불리는 지방의 지주, 군인, 경찰, 지방정부, 마약 두목 등입니다. 외국계 벌목 회사의 경우 정부와의 계약을 맺긴 하지만 이를
위배해도 그만입니다. 예를 들어 100 헥타르 넓이의 숲에 대한 벌목권을 계약상 얻었는데 인근 10,000헥타르 넓이의 숲에서
벌목을 하는 방식입니다. 두번째 그룹 powerman은 그런 계약도 전혀 없이 그냥 벌목을 해서 외국으로 팔아 넘기는 방식입니다.

2001년,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Global Witness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불법 벌목의 현황을 샅샅이 조사하여 캄보디아 정부를 압박한 결과 향후 벌목회사에 벌목권을 주는 것은 아예 금지하도록 법률이 개정되었습니다.
캄보디아 환경운동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이 이후 불법 벌목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외국계 회사에 의한 것입니다. 2001년의 법률 개정으로 벌목권을 파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토지이용권을 파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그래서 벌목회사는 숲이라는 토지의 이용권을 매입함으로써 그 숲에서 벌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계약서 상에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토지를 이용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를 위반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또한 지방의 powerman에 의한 불법벌목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라타나키리의 경우 2000년 경 어느 벌목 회사가 매입한 벌목권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서 불법벌목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법벌목은, 숲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고산족들의 삶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고산족들이 신성한
숲으로 여겨 범접하지 않는 숲에서까지 비싼 목재를 얻기 위해 그 회사는 벌목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안내해준 세산네트워크(Sesan
Network)의 맥 미안 (Maech Mean) 씨 등의 활동가와 소수민족들이 모두 힘을 합쳐 이들의 불법성을 밝혀내고 결국은
이 회사를 몰아냈다고 합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삶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역주민

_ NGO들의 활동: 그냥 NGO가 아니다.

소수민족들은 무슨 어려움이 있을 때 정부를 찾아가지 않고 NGO를 찾아갑니다. 여기 라타나키리
지역에만 30개 정도의 NGO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활동도 도로, 학교, 병원 등의 건설과 운영, 벌목 감시, 댐 피해
조사 등 매우 다양합니다.

정부는 부정부패의 온상인 것처럼 보입니다. 지방 정부와 벌목회사, 군인, 경찰이 서로 협력해서
불법 벌목을 자행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지금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여전합니다. 특이한 것은
중앙정부도 그렇고 지방정부도 그런 것이, 각 부처 별로 건물도 완전히 따로 있고, 성격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라타나키리 지역의 환경부 부장관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산림부 등은 바로 불법 벌목과 결탁했던 세력이라고 합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공무원은 월급이 너무 작아서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믿고 기댈 곳이 시민단체입니다. 우리가 만난 세산네트워크의 맥 미안 씨의
경우 지역운동가의 전형을 보여 주는 존경스런 활동가였습니다. 35세의 맥 미안 씨는 라오스 민족 출신으로서 라타나키리의 소수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16년째 하고 있습니다. 유엔과 함께 이 지역의 지리와 자연자원을 조사하는 작업에 3년간 참여함으로써 세산강
유역에 있는 모든 마을 하나하나를 다 알게 되었고, 9개 소수민족어와 크메르어와 영어를 구사합니다. 활동하게 된 계기를 묻는
저의 어리석은 질문에 “이 곳은 우리의 고향이요, 이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다.”라고 답합니다.

맥 미안 씨 등 세산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이 곳에 있는 10개 민족을 연결하고 이들을 중앙정부와
연결하고 전세계와 연결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맥 미안 씨는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소수민족어를 모두 익힌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각 민족의 각 부락 (community)에서 한 명씩을 네트워크의 활동가로 삼아 매월마다 이들 부락 활동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정보를 공유합니다. 또한 세산네크워크는 이렇게 모인 정보를 재정지원자인 외국 시민단체와 캄보디아 중앙정부,
라타나키리 지방정부에 제공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이들의 삶을 보호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프놈펜에서
14시간이 걸리는 이 곳을 찾아오게 된 배경에도 바로 이들의 활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숲을 개간해 쌀을 재배하고 있다

■ 라타나키리의 환경 사안

요약해서 말하면, 라타나키리의 환경 사안은 어떻게 하면 소수민족들의 삶을 보호하는가입니다. 소수
민족들은 애초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 왔으므로 이들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 곧 이 지역의 환경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 얄리 댐이나 불법 벌목 등 자연 자원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이런 파괴를 막는 것이 곧 이들의 삶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이들의 고유한 문화는 전세계에서 보기 드문 것으로서 그 자체로서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얄리 댐의 문제는 바로 이런 소수민족 삶의 보호라는 주요한 줄기 중 일부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얄리 댐의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세산 강이 물고기로 넘쳐 남으로써 이들이 영위해왔던 전통적인 어업이라는 문화가 다시 복원될 수 있습니다.

얄리 댐 때문에 고기를 못 잡고 있는 빠끌람 마을의 끼 싸이 이장님은 얄리 댐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1. 그저 옛날처럼 살게 해 달라. 2. 그게 어렵다면 물을 매일 일정하게 방류해서
강이 안 마르게 하면 고기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3. 과거의 피해에 대해 보상해 달라.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산으로
올라간 논이 다시 강으로 내려오고, 사라진 고기잡이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록/ 2004-7-01 장용창

이 기사는 현지에서 소식이 오는대로 업데이트됩니다.

admin

국제연대 활동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