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인류에게 마약보다 심각한 중독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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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쓰>(황대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라는 책을 쓴 저명한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이 지난 2003년 한국을 방문했다. 새로운 책을 쓰기 위해 DMZ 등 한국의 자연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이 내용이 포함된 그의 책 <인간 없는 세상>이 2007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당시 한 특강 자리에서 그는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인류에게 마약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청중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곧 “에너지”라고 스스로 답했다. “우리는 마약보다 더 심각하게 에너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류의 에너지 소비는 10배 가량 증가했다. 지금 당장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에너지 없이 잠시 잠깐이라도 이 생활을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에너지 또는 에너지 소비와 연관돼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지어먹고 세수하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하는 것부터, 집에 돌아와 공부를 하건 여가를 즐기건 심지어 잠 자는 동안에도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현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 20세기 전 인류의 에너지 소비 그래프. 전체 에너지는 10배 이상, 1인당 에너지 소비는 4배 가량 증가했다. ⓒ프레시안


지금은 견딜만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에너지 중독에 따른 후폭풍을 심하게 맞게 될 것이다. 석유가 고갈되기도 전에 석유 대란이 올 것이다. 지금이야 석유의 공급이 소비보다 어느 정도 많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을 주고 구입할 수 있지만,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지나는그 순간부터 즉, 공급보다 소비가 많아지는 상황이 되면 돈이 있어도 석유 구하는 것이 어려운 위기가 도래한다. 또한 북극과 남극, 그린란드를 덮고 있는 빙하가 기어이 다 녹아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린란드가 말 그대로 빙하 대신 푸른 풀들이 자란다고 즐거워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녹색 성장 담론에서 핵심 중 하나는 에너지 문제다. 우리 정부의 에너지 계획엔 원자력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진정한 녹색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원자력에서 벗어나 그나마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역할을 해야 할까?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국가 정책의 중요

두말하면 잔소리다. 국가의 명확한, 그리고 올바른 장기 비전 제시가 절실하다. 이 비전에 따라 세부적인 정책이나 제도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부적인 정책이나 제도는 기업의 투자나 개인의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가령, 독일의 경우 202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기업이 이 정부의 계획 앞에서 원자력 발전소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또 어떤 학생들이 원자력 공학을 공부하려 하겠는가.

반면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50%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부터 얻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기업들의 투자는 줄을 잇고 있다. 2006년 한 해에만 독일 한 국가에서 230억 유로가 이 새로운 산업에 투입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언급할 때마다 운하 관련 주식들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 갯벌 매립을 반대하는 환경단체 활동가의 퍼포먼스. ⓒ환경운동연합


만약 정부가 현재와 같이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할 경우 아주 괴로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정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밑 빠진 독에 계속해서 물을 부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부고속철도, 새만금사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민들의 혈세가 밑 빠진 독 채우는 데 쓰이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속도전을 부르짖다 보면 과거의 크나큰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하루빨리 국가의 장기 에너지 비전을 다시 고민해야만 한다. 에너지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에너지 소비 증가를 계속해서 유도할 심산으로 ‘저렴한 에너지 공급’,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운운하면서 원자력 발전과 화석 에너지에 안주할 경우, 이 정권은 역사에 오래오래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녹색 성장은 방사능 덩어리 녹색’이었다고.

내가 정부에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로부터 비난받는, 그러나 힘이 제일 세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전혀 아랑곳 않는 미국만 따르지 말고, 시야를 좀더 넓혀 무엇이 진정한 녹색 성장인지 두루 살펴보라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 정부가 미국에 의존하는 정책은 비단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다.

교토의정서를 휴짓조각으로 만든 부시 전 대통령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낸 ‘아시아·태평양 기후 변화 파트너십’에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당당히’ 참여하여 온실가스 줄일 생각은 않고 엉뚱한 계획만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증설하면 지구 온난화 문제가 끝나나. 땅 속에 이산화탄소 묻으면 기후 변화는 해결되는가.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에서도 미국 편향 현상은 두드러진다. 2002년 독일식 기준 가격 매입 제도, 즉 발전 차액 지원 제도가 도입된 이래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는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과 관련해서도, 2012년부터 시작될 의무 할당제(RPS)로 인해 기업들의 장기적인 투자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해 국제에너지기구에서도 독일식 제도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미국식 RPS는 미국에서 공부한 전문가와 관료의 제안으로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 정부의 아시아·태양평 기후 변화 파트너십 참여를 비판하는 환경단체 활동가. ⓒ환경운동연합


지방 정부의 역할

지방자치 분권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도 크다 하겠다. 덴마크의 삼쇠 섬이나 스웨덴의 백스웨는 초기에 중앙정부로부터 도움을 받긴 했으나, 지역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구현해 나가는 데 있어 전적으로 지역정부 차원에서 이를 진행하고 있다. 군민들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어떤 이유 때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방폐장 유치를 선언한 전 부안군수의 사례와는 반대로, 지역 군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역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를 꼼꼼히 살펴 추진하라는 얘기다.

멀쩡한 갯벌 매립해 농지 만들고 산업단지 만들면 지역 경제가 정말로 활성화될까? 친환경도시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더불어 관광객들까지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을 덴마크와 스웨덴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지방자치단체에게 필요한 것은 별 이상한 박람회나 축제를 만들어 한바탕 유흥 행사로 끝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또 먼 미래 세대까지도 지역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 지역을 변모시키는 것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에너지 자립도시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민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면 할수록, 그리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깨닫는 것은 바로 시민 한 사람으로서의 ‘나’의 역할이다. 에너지 이슈라고 별반 다를 리 없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시민 대부분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다른 것 둘째치고 값싼 전기를 이용하고 싶을 뿐이라면 정부의 원자력 발전소 확대 정책은 최선의 정책이 될 것이다. 그깟 갯벌 보존하는 대신 매립해서 건설회사와 국가 경기 부양시키자고만 생각하니 새만금이 매립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우리의 수준이 ‘전 국토에 망치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단순 무식 정권을 창출시킨 것 아니겠느냐 이 소리다.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프레시안


우리는 지난해 촛불의 힘을 보았다. 그 정도의 힘이 모아져 이 사회의 녹색 성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에너지 중독에서 어떻게 벗어날지를 고민한다면 정부 정책 또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사실 이 정부가 이를 받아줄지는 자신 없지만). 더불어 돌아오는 선거에서는 제대로 된 녹색을 찍어 제대로 된 정치인이 입법을 책임지고 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독일의 녹색당처럼 말이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실천이다. 우리는 환경문제나 에너지문제를 정부에서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한여름, 긴 옷을 입을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대면서 에너지 가격이 비싸다고 정부 탓만 한다. 에너지 소비가 큰 대형차를 나 혼자 몰고 다니면서 도로가 비좁다고 정부 탓 남 탓을 한다. 재활용보다는 새것만 찾으면서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마약 중독자가 더 강력한 마약 안 준다고 남 탓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깨끗한 재생 가능 에너지라 하더라도 또 다른 환경 파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에너지 소비를 무슨 수로 충당할 수 있겠는가.

삼쇠 섬의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리포트 말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정 녹색 성장을 바라는 한국 정부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그리고 한국의 시민들이 꼭 깊이 새겨봄직한 표현이다. 진정한 녹색 성장은 성장의 강조가 아닌, 내 소비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One ㎾h saved is worth much more than one produced.” (1 ㎾h를 아끼는 것은 1㎾h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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