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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보다 병이 더 비싼 나라! 어딘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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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공병 보증금 제도 판트(Pfand)

맥주의 나라 독일의 맥주 값은 한국보다 쌀까 아니면 비쌀까? 답은 쌀 수도 있고 비쌀 수도 있다는 것. 병 값을 제외하면 독일 맥주가 더 저렴하고, 병 값을 포함하면 한국 맥주보다 비싸다.

내가 사는 동네 플렌스부르크(Flensburg)의 자랑 중 하나는 바로 플렌스부르크(Flensburger) 맥주다. 물 안 좋기로 소문난 독일에서 바다와 접한 환경 탓인지 플렌스부르크 물맛은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는데, 그 때문인지 이 맥주는 독일 내에서도 나름 맛있다는 소릴 듣는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맥주의 대량 생산이 시작된 1870년대 이후 줄곧 사용하는 재활용 가능한 병 때문이다. 많은 다른 맥주 제조 회사가 운송비 절감이나 다른 목적 때문에 전통적인 디자인의 재활용 가능한 병을 포기했음에도 유독 이 맥주 회사는 그 병을 현재까지 고집하고 있다.







▲ 플렌스부르크 맥주. ⓒ프레시안
이 회사의 맥주병이든 아니면 전통적인 디자인을 포기한 현대식 유리 맥주병이든 그 나름의 병 값이 있다. 우리로 치면 공병 보증금 제도와 같은. 그러나 값이 만만치 않다. 500밀리리터(㎖) 맥주 한 병 값이 약 80유로센트인데 여기에 병 값 15센트가 추가된다. 요즘 환율이 사상 최악인 상황이라 이 수치를 그냥 대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맥주값 1600원에 병 값 300원이 되는 셈이다. 환율을 현재의 절반인 1유로=1,000원으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병 값은 150원이나 하는 꼴이다.

재미있는 것은 플라스틱 용기인 페트(PET) 병에 대한 독일의 자세(?)이다. 유리 병 값보다 더 비싸다. 무려 25센트. 가난한 유학생인지라 물을 사 먹어도 가장 저렴한 1.5리터 19센트짜리를 구입하는데, 이때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플라스틱 병 보증금 25센트를 포함해 44센트를 내야 한다. 참으로 귀한 플라스틱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유리병과 플라스틱 용기가 판트 제도의 대상이진 않다. 여러 곳에서 수입하는 와인병이나 주스 용기 등은 대상이 아니다.)







▲ 판트 대상임을 알리는 표시. ⓒ프레시안
이 판트(Pfand) 제도는 재미있는 부수 효과를 끌어낸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어느 누구도 병이나 플라스틱을 천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맥주, 물, 주스 등 음료수를 다 마신 후 파손되지 않도록 고이 보관했다가 슈퍼마켓이나 상점에 되가져가 고스란히 돈으로 돌려받는다. 원채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병이 많기 때문에 독일의 거의 모든 슈퍼마켓은 병을 회수하는 장치를 상점 내에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한국처럼 빈 병을 가져와 가게 주인과 눈을 마주치며 개수를 세는 번거로움 없이 때를 가리지 않고 기계에 빈 병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보증금을 계산해 준다.

또한 길거리에는 유리병이나 페트 병이 거의 돌아다니질 않는다. 젊은 학생들은 용돈 벌이로 버스터미널이나 기차를 돌아다니며 돈 될 만한 빈 병은 없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반면 지금 내가 연구차 잠시 머물고 있는 스코틀랜드에는 이 공병 보증금 제도가 없다. 몇 주 전 스코틀랜드 작은 마을에 위치한 한 쓰레기 재활용 시설을 방문했는데, 해당 지역의 재활용도가 상당히 높다고 설명하던 안내원도 독일의 보증금 제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얼굴색을 바꾸며 스코틀랜드에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재활용률은 훨씬 증가할 것이란 답변을 내놓았다.

벼룩시장 이야기

유럽에서 특히 독일에서 벼룩시장의 인기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지금과 같은 겨울이나 초봄, 추운 날에는 오로지 실내에서만 벼룩시장이 열리지만, 해가 길어지는 5월부터는 거의 매주 대단위의 벼룩시장이 열린다. 큰 벼룩시장을 열 만한 공간이 없는 동네라면, 주중 마을 장이 서는 한 구석에 중고물품의 물물 교환을 위한 자잘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자체로 벼룩시장이다.







▲ 2008년 여름, 대형 할인점 주차장에서 열린 벼룩시장. ⓒ프레시안

독일 분데스리가 핸드볼 경기가 열리는 대학 체육관이 벼룩시장으로 변하는가 하면 대단위 쇼핑센터의 주차장이 어느 일요일 벼룩시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안 쓰는 가전제품부터 장난감, 심지어 자신이 입던 속옷이나 양말까지도 벼룩시장에 등장한다. 도대체 저렇게 헌 물건을 누가 살까 싶은 헌 옷이나 촛대, 이가 빠진 컵, 바퀴가 고장 난 자전거까지도 새 주인을 찾아 벼룩시장에 나온다.

여기서 재미있는 풍경은, 이 벼룩시장이 단순 물물 교환, 자원 재활용의 공간뿐 아니라 자라나는 미래세대에 아주 좋은 교육 현장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가을, 동네의 조그만 체육관에서 펼쳐진 벼룩시장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엄마는 대여섯 살 정도 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벼룩시장에 나왔다. 이 두 아이는 자기에게 불필요한 물건을 집에서 모두 챙겨온 모양이다. 내가 다가가 동화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겨서일까, 한동안 이 두 아이는 나만 멍하니 쳐다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이들 뒤에서 커피를 마시던 이들의 엄마가 끼어든다.

‘이 동화책 누구 거니?’, ‘내 거야’, ‘얼마에 내놓았니?’, ’20센트’. ‘왜 저 아저씨에게 20센트라고 얘기하지 않니?’. 순간 나는 당황했다. 이 책의 가격을 아이들 스스로 매겼다니.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이내 흥정을 시도했다. ’20센트는 너무 비싸다. 10센트면 살 텐데.’ 아이가 아무런 답을 안 하자 엄마가 또 다시 ‘개입’한다. ‘저 아저씨가 10센트면 사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당황해서인지 이 어린 소년은 나를 보며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인다. 흥정은 이루어졌고 나는 10센트에 동화책을 장만했다. 이 벼룩시장에서 엄마는 그저 아이들의 조력자 역할일 뿐이다. 값이 싸다고 아이를 채근하지 않고 흥정을 잘 못 한다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그냥 아이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거래’가 잘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는 이에 불과할 뿐이다.







▲ 안 입는 옷의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벼룩시장에 나온 소녀. ⓒ프레시안







▲ 어린이들로만 구성된 장터. ⓒ프레시안

어느 토요일, 장을 보기 위해 동네 슈퍼마켓으로 가는 길. 상점 앞에 한 소녀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아이 앞에 펼쳐진 돗자리에는 그 어린이가 가지고 놀던 인형이며 게임기며 심지어 머리띠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이 소녀 혼자 다른 보호자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가 보다. 소녀는 조금은 지루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다른 이에게 팔고 있다. 시간에 쫓기지도 않는다. 안 팔린 물건은 다시 챙겨서 집으로 가져간다. 다음 주에 또 나오면 되지 뭐.

우리나라도 얼마 전부터 쇼핑센터의 비닐봉지에 보증금을 받는다던지, 테이크아웃 커피숍의 일회용 컵 등에 환불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50원이나 100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그 보증금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금액으로 ‘현실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원 또는 300원으로 말이다.

어차피 지금도 한국에 판트 제도와 같은 공병 보증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니, 그 보증금을 ‘현실화’한다고 해서 다른 부대비용이 증가할 것 같지는 않다. 반면 재활용률은 상당히 증가할 것이다. 누가 200원짜리 병을 함부로 길거리에 버리겠는가. 버린다 해도 다른 누군가는 그 병을 주어 보증금을 가져갈 것이다. 회수율이 증가하는 것이다.

더불어 모든 상점에서 환불이 이루어지도록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어떤 대형 할인점은 특정 요일에만 빈 병에 대한 환불을 해 주고 있다. 또한 적극적인 보증금 제도가 시행된다면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수 있다. 독일 모든 슈퍼마켓에 설치된 공병 회수 장치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런 것이 진정한 ‘녹색 성장’ 아니겠는가?

또 관공서나 학교 강당을 상시적인 벼룩시장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나 사찰 또한 훌륭한 재활용과 사교의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벼룩시장은 ‘아나바다 운동’을 실천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앞의 사례에서 보듯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는 자기 물건의 소중함과 올바른 경제 개념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펀드나 주식 투자를 일찍부터 가르치는 것보다는 벼룩시장에서의 경험이 미래의 건강한 경제와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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