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한국, 말만 많은 방사능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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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녹색 성장’ 얘기다. 이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 많은 시민단체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대통령이 선언한 ‘녹색 성장’은 또 다른 레토릭인 것이 더 분명해졌다.

지난 8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과한 ‘에너지 기본 계획’이나, 12월 확정된 ‘제4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꼼꼼히 살펴보면, 정부가 주장하는 ‘녹색 성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녹색’이라는 말은 성장이란 단어를 꾸며주는 수식어에 불과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자력 발전을 ‘녹색’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그 무모한 용기가 가상할 뿐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는 넘쳐나는 핵폐기물을 보면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또 바로 그 핵폐기물을 대량 양산하는 결정을 내렸던 대통령이 말했던 ‘녹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방사능 덩어리 녹색?

에너지 안보…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세계 경제 위기 같은 외부 자극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환율이 바뀔 때마다, 국제 석유 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정부는 정부대로, 에너지를 수입하는 기업은 기업대로, 소비자인 국민은 국민대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다.

여기에다 기후 변화 얘기까지 더해지면 그로기 상태에 도달하고 만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제4차 보고서를 보면, 2050년까지 2000년 온실가스의 15~50%를 줄이지 않으면, 이 지구라는 별이 안정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불을 향해 뛰어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불나방이라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유럽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몇 개 나라를 제외하고는 석유, 천연가스 자원이 빈약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몇 년 전부터 ‘에너지 안보’라는 개념에 집중하고 있다. 2006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스 분쟁으로 3일간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독일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한 겨울 한파에 떨며 지내야하는 상황을 맞이할 뻔했다. 이후 유럽 대부분 국가의 정책 우선 순위 중 에너지 안보는 늘 빠지지 않고 있다.

급상승하는 에너지 가격과 교토의정서를 염두에 두고 유럽 각국은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에 자연스레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건축물을 사고팔 때 에너지 이력 정보에 관한 서류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며, 이것은 가격을 결정하는 또 다른 척도로 활용된다. 도심으로의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자 스톡홀름은 시내로 들어오는 전 차량에 대해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재생 가능 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이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 가장 확실한 보급 방법은?







▲ 독일 프라이부르크 플러스에너지 주택 단지. ⓒ프레시안

재생 가능 에너지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그 자원이 무한하다. 또한 화석연료처럼 에너지원을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 또한 거의 없다. 반면 초기 투자비 또는 에너지 단가가 화석연료에 비싸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이란 이 비싼 단가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투자자나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업자들에게 투자에 상응하는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정책은 여전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크게 독일식 FIT(Feed‐in‐Tariff·기준 가격 매입 제도)와 미국식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의무 할당제)로 대별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02년부터 기준 가격 매입 제도, 즉 이른바 ‘발전 차액 지원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었으나, 새 정부는 지난해 4월 공청회를 통해 2012년부터 의무 할당제를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의 근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기준 가격 매입 제도는 발전원별 특성을 살려 각 기술별로 각기 다른 값을 매기고, 또한 재생 가능 에너지 시설의 수명을 감안해 전력을 매입하는 기간까지 법으로 정해놓는 것이다. 가령 대관령에 설치된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킬로와트시(㎾h)당 107.66원에 15년간 정부(한국전력거래소)에서 의무적으로 구입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사업자나 투자자는 수익률을 예측할 수 있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발전소 건설을 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의무 할당제의 경우, 정부는 기존의 발전회사에 재생 가능 에너지 의무 비율을 할당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A 발전회사에 2015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10%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만들라는 의무를 줄 수 있다. 이 회사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자체 재생 가능 에너지 발전소를 짓거나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재생 가능 에너지를 구입하면 된다. 만약 이를 어기면 정부가 정해놓은 규정에 따라 범칙금을 내야 한다.







▲ 독일 농가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 ⓒ프레시안


독일은 기준 가격 매입 제도를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만 8년이 지난 현재, 애초 예상했던 목표치를 앞당겨 달성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00년 6.3%에 불과했던 재생 가능 에너지 전력 비율이 2006년에 이미 12%를 초과했다.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20%의 전력을 재생 가능 에너지로 만들자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독일의 경우 이보다 높은 27% 달성이 가능하다고 정부 공식 문서에서 밝히고 있다.

교토의정서 상에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21%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미 지난 2007년 22.4%를 감축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더해 이 새로운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은 2006년 현재 23만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된다. 이 성과의 대부분은 바로 독일식 FIT, 기준 가격 매입 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독일 정부당국의 평가다.

지식경제부의 의무 할당제…실패한 정책

반면, 의무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성공한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텍사스의 경우 특정 에너지원의 편중이 심각한데, 값싼 재생 가능 에너지인 풍력이 97% 이상을 차지하는 대신, 태양광을 비롯한 다른 에너지원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거의 없다. 또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 기본 가격의 5배에 달하는 범칙금 탓에 어쩔 수 없이 의무를 다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발전회사들이 의무 비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텍사스와 비슷하게 훌륭한 풍력 자원을 갖고 있는 영국은 이 의무 할당제가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2년 RO(Renewables Obligation)라는 이름으로 이 제도가 시행된 이래, 단 한 차례도 목표가 달성된 적이 없다. 발전회사의 눈치를 살피던 정부에서 범칙금 수준을 매우 낮게 정한 탓에 있으나마나 한 제도로 전락한 것이다.







▲ 영국 중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의무 할당제 실행 실적. 매년 56%, 70%, 76%, 66%의 실적을 얻는데 그쳤다. (출처 : Ofgem, ‘Renewables Obligation : Annual report 2006~2007’). ⓒ프레시안


지난 10월 덴마크의 올보그(Alborg)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서 에너지 정책을 가르치는 프레드 하일플룬드(Frede Hvelplund) 교수는 한국 입장에서 의미심장하게 들어야 할 재미있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사실 덴마크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풍력 에너지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베스타스(Vestas)라는 회사가 바로 덴마크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01년까지 덴마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달팽이였다고 말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에 관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해,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에너지 정책도 일대 변화가 있었단다. 2001년까지 매우 잘 시행되던 기준 가격 매입 제도를 ‘죽이기(killing)’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장주의자인 집권 내각은 재생 가능 에너지 또한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전임자와는 다른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결국 이 제도를 포기하게 되었고, 이후 잘나가던 덴마크의 풍력 발전기 보급은 멈추었다.







▲ 풍력발전기 설치 용량 TOP 10 국가(출처 : RENEWABLES 2007 : GLOBAL STATUS REPORT). ⓒ프레시안


현재 3선 집권에 성공한 라스무센 정부는 화석연료에 대한 지원을 숨기지 않고 있는데, 가령 덴마크의 대표적인 화석에너지 기업인 ‘DONG Energy(Dansk Olie og Naturgas A/S)’의 경우 새 정권이 출범한 이후 그들의 활동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 많은 덴마크 에너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U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2009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유치한 국가로서의 자구책이었을까? 라스무센 총리는 어느 순간 돌연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간 재생 가능 에너지 시장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바로 그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재생 가능 에너지가 덴마크의 미래라고, 성장 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까지 가장 빠른 달팽이였던 덴마크가 이제는 거의 숨죽인, 그러나 ‘말만 많은 달팽이'(talking snail)가 되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뼈아픈 지적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또 견문을 넓혀야 하는 이유는, 앞서 경험한 이들의 성공담 또는 시행착오, 이와 관련한 여러 지혜를 배우기 위함이다. 2013년 이후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이 확실시되는 한국.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재생 가능 에너지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으로 포장하기 위한 들러리 신세에 불과한 한국.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녹색 에너지 우선 정책을 만들어 시행할 것인가? 한국은 무슨 달팽이일까? 혹시 말만 많은, 방사능 달팽이는 아닐까.







▲ 덴마크 삼소섬 해상 풍력 단지. ⓒ프레시안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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