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변화를 늦출 수 있다면 참을 수 있는 ‘즐거운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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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해변 방갈로에 붙어 있던 애기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서울에서도 발견된다. 5월 중순인데 모기가 기승이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심심치 않게 빗나간다. 서울 바퀴가 특별히 영양 상태가 좋아진 건 아니다. 모기가 여름이 되길 기다렸다 출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빗나가는 일기 예보 또한, 기상청과 슈퍼컴퓨터를 탓할 일이 아니다. 이게 다 온난화 때문이다.












오늘 날씨는 어때?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가물면 가무는 대로 살았던 일상은 아니었다. 한국은 기후가 제때 따라주지 않으면 굶어야 했던 농경사회였다. 기후변화에 무뎌진 건 도시생활을 시작하고부터다. 가뭄이 이어지면 ‘쌀값이 오른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제 굶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기후가 한 나라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인류 역사는 기후, 식생과 함께했죠. 날씨는 문화와 행동 양식에 영향을 끼칩니다. 장마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증도 늘어나죠. 프랑스에서 요리와 패션이 발달한 것도, 독일이 공업 부문에 강세인 것도 기후와 연관지을 수 있어요.”

지난 2007년 여름은 언제까지가 ‘장마’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공식적인 장마는 8월 말에 끝났지만 9월에도 매일 비가 내렸다. 춤추는 일기예보를 따라 플랫 슈즈를 신고 나선 여자들의 신발은 우산을 써도 젖었다. 가벼운 짜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 한국도 건기와 우기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지구가 더워진다. 아니, 이미 더워졌다.

“지구 온난화는 ‘지구가 더워진다’는 거죠. 하지만 기후변화는 지구 온난화의 ‘결과’입니다. 지속된 온난화로 지구는 이미 더워졌어요. ‘뜨거워진다’가 아니라 ‘뜨거워졌다’고 해야 맞습니다. 원인과 결과를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어요. 지구 온난화는 원인. 결과는 기후변화입니다.”

화창하게 맑은 날 갑자기 비가 내리고, 예측할 수 없는 태풍과 해일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기후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는 같이 묶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원인과 결과로, 명확하게 구분돼야 마땅하다.

“온도가 올라가니까, ‘아, 이제 아열대가 되면 서울에도 바나나가 열리겠네’ ‘에어컨 틀면 되겠네’ 그게 아닙니다. 수만 년 한반도 기후가 바뀌면 그것에 적응했던 생명체가 더 이상 삶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기후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북극은 이미 녹았어요. 가속화되고 있죠. 그렇다고 진행 자체를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환경연합 기후변화센터 안준관 부장은 ‘지구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포기하고 적응하자는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노력은 원점으로 돌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그나마 속도를 더디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태양열을 모아 밥을 지을수 있는 도구
“온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동식물이 멸종하고, 해안도시가 물에 잠기고, 물이 부족해지는 것은 진행 상황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상황을 냉정하게 봐야 해요. 이런 변화를 정지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이제는 변화를 인정하면서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에요.”


‘숫자’로 치부되는 기후변화 징조들
“온난화로 북극이 녹아내린다”는 말은 자세히 풀어 쓸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지구 어딘가에 있어왔던 얼음의 절대량이 줄어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지구의 산소통인 것처럼, 북극의 얼음은 태양열을 반사해 적당한 기후를 유지하는 데 한몫을 했다. 단단했던 얼음이 서서히 물이 되면, 북극은 더 이상 태양을 반사하지 않는다. 녹아내린 빙하는 이미 물이 됐고, 물은 열을 흡수한다. 지구가 더워지는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진다.

“더워진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기후변화는 그냥 ‘뉴스’가 된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사상자가 몇 만 명에 달해도 그게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죠.”

조금 더 와 닿는 얘기를 해보자. 그냥 겁주려고 꺼내는 얘기는 아니다. 지구 어디에선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머지않은 미래의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태풍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보세요. 해안가의 집들은 당장 위험에 처합니다. 서울에 준비 없이 폭우가 내리면 어떨까요. 댐이 소화하지 못하는 물을 흘려보내고, 낮은 지대의 어딘가는 물에 잠길 겁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왜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까요.”

이것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라면, 얼마 전 서울에서도 발병했다는 AI(조류인플루엔자)의 경우를 보자.
“마찬가지입니다. 전염성 병원균들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더 많이 퍼져 나가는 거죠. 말라리아가 아프리카에서만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것도 이젠 죽은 상식이 됐습니다. 한국에서도 증가 추세죠. 모기가 증가하니까, 당연한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약을 쳐야 하는데, 치면 칠수록 모기의 내성도 강해지겠죠. 그럼 더 강한 병원균을 가진 모기가 생깁니다. 악순환이죠.”

광우병도 마찬가지다. 오늘도(5월 17일 현재) 광화문에선 광우병 걸린 소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광우병이 국민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한국과 미국의 협상 체결 때문이지만, 애초에 광우병이 발병하게 된 근저에는 기후변화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기후 변화로 목초지가 줄어들잖아요. 소가 먹을 풀이 줄어들고, 고기 소비는 늘어나고, 축산업자는 더 빨리, 더 연한 고기를 생산해야 했죠. 그래서 동물성 사료를 먹이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래도 단기간에 빨리 자라는 게 이득이니까요. 우리 안에 가둬 키우면 고기도 연해집니다. 풀도 기르고, 소도 키워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광우병은 이런 ‘비정상’이 만든 비극이기도 합니다.”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덧붙는 숱한 숫자들, 앞으로 10년을 예측하는 객관적인 통계 자료들, 그 근저엔 AI나 광우병 같은 첨예한 이슈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송파구청 공무원들이 장지동 무허가 닭, 오리 사육장 주변에서 약품을 뿌리고 있다.
“더워진 지구를 매일 느낄 수는 없겠죠. 하지만 뜨끔할 때가 있어요. 환경 일을 하다 보니 남다르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북극이 녹았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컵에 물이 비면 다시 채우면 되지만, 지구는 그게 아니거든요. 당장 효과를 볼 수도 없고, 나 혼자 해서도 안 돼, 전 세계가 해야 돼(웃음). 이렇게 가니까 희망적이기보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해요.”

이젠 ‘북극이 녹았다’는 뉴스를 듣고 바로 한국을,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떠올리는 걸 어색해 해선 안 된다. 전 세계가 한마음으로 동참하길 바라는 건 이상주의일 수 있지만, 우리 집에서, 나부터 시작하는 건 상큼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핵심은 에너지다. 덜 쓰면 된다.


이런 사람도 있대요
“광주 환경연합에는 이런 분도 계세요. 옷을 검은색만 사요. 그것도 등산복만. ‘멋 부리려고 다 검은색만 사느냐’고 물었더니 ‘빨래를 덜할 수 있다’고 그래요. 아무래도 때가 덜 타니까. 그분은 집에 가면 검은색 옷밖에 없대요. 팬티도 검정색이래(웃음). 머리도 짧고,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고. 그런 사람도 있죠.”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건 샴푸를 조금이나마 덜 쓰겠다는 의지고, 전기 드라이기 사용을 줄여 전기 에너지를 아끼겠다는 심산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수염을 기르는 사람은 ‘환경을 아끼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매일 아침 쓰는 전기면도기의 전력을 아끼는 셈이고, 손 면도를 할 때 쓰는 셰이빙 폼을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아도 되니까. 환경을 아끼는 방법은 의외로 사소하고 다양하다.

“외국에서는 이런 실험도 했어요. 한 달 동안 머리를 못 감게 하는 거죠. 모두 전에는 하루에 한 번씩 감던 사람들이었어요. 일주일 지나니까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일부가 포기했대요. 하지만 참다 보니 어느 순간 가렵지 않은 시기가 온 거죠. 실험이 끝난 후에 모발을 조사해보니, 훨씬 건강한 모발로 거듭났답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저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감았던 것 같아요(웃음).”

깔끔한 도시 문명은 편리하지만, 불필요한 생활양식은 사실 귀찮은 것이다. 매일 하는 따뜻한 샤워도 마찬가지다. 때론 기분 전환을 위해, 숙면을 위해 하루에 두 번씩 하는 샤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다.

“15층 아파트에서 샤워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물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동력이 필요하죠. 펌프는 전기로 돌립니다. 1층에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일상적으로 소모하고 사는 셈이에요.”

고층 아파트는 효율적인 도시 주거 양식이지만, 에너지 효율은 소모적이다. 고층에서는 바람 때문에 쉬이 창문을 열 수 없다. 전기로 환기 시스템을 돌린다. 추워지면 덥히고, 더워지면 식힌다. 여름, 가을, 봄에도 냉방 시설 없이는 사는 게 힘이 든다. 창문만 열어놔도 산뜻한 공간의 사방이 막혀 있으니, 인간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 쾌적하게 살 수 없는 환경을 ‘도시’라는 이름으로 굳이 만들어놓은 셈이다.











“환경을 아끼는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을 많이 얘기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겁니다. 지구가 더워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길이기도 해요. 먹는 걸 생각해보세요. 평소에 우리가 먹는 음식량은 1일 칼로리 권장량을 상회합니다. 필요 이상 먹는다는 뜻이죠. 에너지도 마찬가지예요. 필요 이상으로 쓰는 에너지가 의외로 많거든요.”


‘즐거운 불편’을 즐기는 일상을
에너지 소모를 줄이자는 건 ‘성장’을 줄이자는 게 아니다. 불필요한 낭비는 그만 하자는 거다. ‘오늘 하루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했으니까, 내일은 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지’가 아니라, 애초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말자는 얘기다.

“`미국 같은 나라는 지금까지 엄청난 양의 CO`2를 방출해 선진국이 됐죠. 환경이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다 같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고 해요. 아프리카도 협력하자고 하죠. 잘 사는 나라에서, 지금까지 많이 쓴 나라에서 조금 줄이고 아프리카에서 조금 더 쓰면 되는 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죠. 한 달 전기세가 1백만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가 있는 반면, 전기세가 없어 촛불을 켜고 공부하다 화재로 목숨을 잃는 중학생도 있죠.”

기술 발달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더 쓴다. 고효율 조명등이 개발되면, 하나만 달아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아니라 원래 쓰던 만큼 쓰면서 더 밝게 산다. 그렇다면 더 밝게, 더 편리하게, 더 시원하게, 더 빠르게 사는 게 행복한 일일까.

“매일 차를 타다가 지하철을 타면 불편하죠. 당연해요. 하지만 그 불편도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신문도 볼 수 있고, 잠도 실컷 잘 수 있죠. 운전할 때 잠자면 큰일 나잖아요(웃음). 마트 갈 때도 자전거 타면 주차 걱정할 일도 없고, 이런 건 불편하지만 즐거운 일상이 될 수도 있죠. 한번 해보세요.”

주말 오후 대형 마트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30분 이상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졸려 죽겠는데 운전하고 회사 가느라 짜증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준관 부장의 제안은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건강도 챙기고 환경도 아낄 수 있는 길이라면, 아들, 딸에게도 조금은 떳떳한 엄마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

“대대적인 캠페인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작은 것부터, 지구를 덥게 만들 수 있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좀 줄여보자는 거예요. 넥타이 안 매는 것, 그것도 좋아요. 이명박 대통령도 넥타이 잘 안 매시던데, 싫어서 안 매는 것 같아(웃음). 하지만 ‘노타이 운동’은 온실가스 몇 만 톤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사소한 실천도 다 같이 하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겁니다.”

「레이디경향」과 ‘환경연합’이 함께하는 ‘지구 끌어안기’는 이달 안준관 부장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앞으로 몇 달간 ‘기후변화’를 집중적으로 다룰 생각이다. 알고 보면 온난화 때문이었던 숱한 현상들, 알고 보면 지구를 아끼는 길이었던 사소한 생활습관들, 환경연합이 제안하는 ‘조금 다른’ 생활법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동향까지 함께 끌어안는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를 때(Better Late than Never)”라는 속담이 이렇게 절실하게 와 닿은 적은 없었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성원(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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