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고유가 대책도 ‘기업 프렌들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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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단지. 고유가로 시민들이 승용차 운행을 줄이면서 평일 낮인데도 아파트 주차장에 차가 즐비하다. <임현주 기자>
미국은 전형적인 과소비국가로서 세계 이산화탄소 총량의 25%를 배출한다. 미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미국은 결국 수입품을 과소비하는 나라인 것이다. 미국이 이런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초래된 미국의 경기침체는 고스란히 미국에 물건을 수출하는 나라들의 피해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더해져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재정과 경상수지의 쌍둥이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 것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군비의 절반을 뛰어넘는 군사력으로 이 두 가지를 보호하고 있다.


흔히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라는 삼두마차는 사안에 따라 협력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어느 일방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상호 견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0년 전 로마, 더 가깝게는 200년 전 영국과 현재의 미국이 그러하듯이, 정부와 기업의 엘리트 집단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고한 결속과 집단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에너지산업 엘리트들은 금융과 산업의 복합체를 건설하고 국가 권력의 핵심부를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군사력까지 통제 아래 두었을 때부터, 세계경제가 지금처럼 하나의 에너지 네트워크에 귀속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식 대안’ 고집

최근의 고유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타격을 받은 금융세력이 석유시장에 개입해 장난을 치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일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유가의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2006년 미국의 에너지-금융산업복합체의 슈퍼엘리트들이 2차 세계대전 후 세계경제를 지배할 목적으로 만든 IMF가 ‘2006 세계경제보고서’를 통해 ‘세계화와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암시했던 ‘석유 생산량 위축’에 있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고유가의 책임을 ‘투기세력’에 있다는 듯이 발표하면서 고유가 책임론에서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OPEC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세계의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갈 정도로 증산할 석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기세력에만 책임을 돌리려는 태도도 문제는 있다. 투기자본은 증산 불가능한 석유의 진실을 알고 그것을 투기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후변화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채 석탄액화, 핵발전, 이산화탄소 포집, 수소연료 등의 기술적 해결책에 몰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에너지산업은 엄청난 규모의 장치산업이면서 동시에 중앙집중적인 산업이다. 미국의 에너지 해법은 이러한 산업적 특성에 모두 잘 들어맞는다. 역사적 우연인지는 모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영·미의 석유 독식에 맞섰다가 풍비박산이 났던 독일은 이제 석유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고유가의 유일한 해결책은 석유 소비를 줄이고 석유를 대체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부는 여전히 미국식 대안만 고집하고 있다.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논의할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오는 6월 26일 열린다고 한다. 이 계획의 초점은 핵발전소 증설과 석유 등 화석에너지원 확보의 다각화다. 이러한 퇴영적인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의식해 처음에는 비공개로 하려다가 반발을 의식해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는 고유가의 근본 해법을 밀쳐두고 에너지 분야에서도 ‘기업 프렌들리’라는 졸속정책에 매달릴 모양이다. 대체 언제까지 국민들이 “유류세 좀 내리라”는 비참한 호소만 하게 할 셈인가. 에너지전환의 비전을 보여줘야 국민들이 고유가를 일시적 현상이 아닌 에너지 체제의 위기로 받아들일 게 아닌가.

* 이 글은 뉴스메이커 77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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