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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만으론 북한산 지킬수 없어

분노만으론 북한산 지킬수 없어



△ 수경 스님이 송추 원각사 입구에서 건설사쪽에 의해 뿌리 뽑힌 나
무들을 만지며 한숨을 짓고
있다.서경신 기자raoul@hani.co.kr

지난 23일 낮 구파발을 출발한 송추행 156번 버스. 황사로
찌든 회색빛 하늘이
북한산 위로부터 맑아졌다.
서울을 빠져나온 차들이 거리를 쌩쌩 달리고, 주말을 맞은 등산객들이 북한
산 등산로 입구마다 줄지어 들어섰다.
20여분을 달리자 장자원 도로 옆엔 `39번 도로 확장하여 도로 정체 대비하
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늘어나는 차에 맞추어 도로를 더욱 넓히라는 요구들이 곳곳마다 봇물이다.

이런 요구를 반영하듯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곳이 한두곳이 아니다. 송추
외곽 원각사 입구에 내리니 산을
깎고 포크레인으로 바위를 드러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일산-퇴계원을 연결
하기 위해 북한산국립공원과 수락산,
불암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현장이다. 송추에서 도봉산쪽으
로 4㎞의 4차선 터널 두 개를 뚫기
위한 4공구 공사를 하고 있는 포크레인과 공사를 반대하는 천막 농성장이
조그만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농성장은 도로를 넓히라는 봇물터진 요구와 건설공사 포크
레인을 가로막기엔 초라하기 그지 없다.

갑자기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하루종일 포크레인의 굉음이 울리고, 날씨
변덕이 요란한 이곳을 수경(불교환경연대
대표) 스님이 비구니들과 박선경(우이령보존회 사무차장)씨 등 환경운동가
들과 함께 지키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밝은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스님의 얼굴이 그렇게 밝아보이지만은 않
았다.

의정부 호원동 회룡사 선방 비구니들은 동안거(겨울집중수행기간) 중에 북
한산을 지키기 위해 이곳 천막에
제2선원을 열어 정진하며, 포크레인 위에 올라탄 채 공사를 저지해 왔다. 2
월18일엔 공사를 강행하려던
엘지건설 인부들을 가로막으려던 성타·성환·법현 스님 등이 다치는 사건
이 발생했고, 이에 분노한 스님들과
불자 1만여명이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 한 노비구니 스님이 농성장의 사패산 터널 그림을 보면서 “이런
터널이 뚫리면 생명체인 산
자체가 죽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수경 스님은 이런 분노만으로는 이 산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 스님들의 환경운동에 대한 냉소와 비판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명산
의 명당에서 산세에 어울리지 않는
대형 불사와 도로를 건설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해 산을 훼손한 사찰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산에도
특정 사찰을 위해 산 정상 부근까지 큰 도로가 뚫려 있어 북한산을 아끼는
사람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아는 수경 스님은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대불
을 조성하려던 해인사의 계획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환경’을 남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 내부의 문제로 끌어왔다. 이로
인해 사찰 안에선 “불교 안의
문제를 밖으로 확대시켰다”는 눈총을 받았고 해인사 선방 수좌들은 실상
사 스님의 방에 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불교조차 이기적인 관점에서 개발과 보호를 왔다갔다 하는 사이 산하는 온
통 파헤쳐져 이제 수도권 `최후의
보루’인 북한산국립공원에까지 화가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활
로를 찾을 수 있을까.

“남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참회해야지요.” 지난달 26일까지 인
천 용화선원에서 3개월 동안 동안거를
한 뒤 이곳에 합류한 수경 스님은 “모두가 자신의 삶을 반성해야 할 때”
라고 말했다. 언제나 자가용을 타는
등 자신은 조금도 불편을 감수하려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연을 보호해
달라고 기대한다면 결코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사패산의 잘린 나무들 너머로 길을 뚫고 있는 포크레인이 보인다

이날 이곳을 찾은 노비구니들로 이루어진 목련회 회원 20여명은 “일제가
심어놓은 쇠말뚝까지 모두 뽑아내는
마당에 수도를 지켜온 명산을 망치려 하고 있다”면서 “사패산은 화강암
덩어리로 지하수가 많지 않아 터널이
뚫릴 경우 물이 고갈돼 산은 죽게 된다”고 분개했다.

수경 스님은 방문하는 스님들에게 “목욕도 보름에 한번만 하고, 씻은 물
조차 채소밭에 뿌릴 정도로 스스로
아끼며, 나무와 산을 한 생명처럼 아껴온 게 옛 스님들의 생활이었다”며
“남 탓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그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이곳에 온 이래 보름 넘어 목
욕 한번 못했다.

천막에서 하루 잠자고 보니, 온몸이 쑤셔 농성자들의 고초가 실감있게 다
가왔다. 하지만 이들의 고초가 나무의
고초만 할까. 건설공사 인부들이 진입했을 때 베어진 나무들이 200~300미
터 중턱까지 쓰러져 있다. 화가
최병수씨가 하늘을 향해 세워놓은 솟대와 비구니들의 산신기도가, 탐욕을
채우려다가 이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인간의 오만과 잘못을 빌고 있다.

`나’가 없어서(無) `나무’가 아닐까. 숨 쉴 산소를 주고, 휴식처를 주고,
종이와 과일까지 주고,
마침내는 땔감으로 아낌 없이 모든 것을 주면서도, 생색조차 내지 않는 나
무들. 나무의 은혜로 숨 쉬고 살면서도
오직 `나’만을 생각해 헤치는 일을 서슴치 않는 인간의 참회를 외치는 스님
은 “지금 나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송추/조연현 기자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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