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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갯벌, 내 사랑 주꾸미

쓸쓸한 갯벌, 내 사랑 주꾸미


사진/ 짙은 회색 갯벌이지만 갈고리질 한번에 한두개가 딸려 나온
다. 생명으로 꿈틀대는 이곳을
생매장하려는 게 새만금사업이었다.

“고생스럽겠군, 갔다와서 몸살 앓는 거 아냐”는 주변의 오
해 어린 걱정은 서해고속도로에
올라서면서 봄바람처럼 날아갔다. 대학교 1학년 때 강원도 속초를 찾아 난
생 처음으로 동해 바다를 본 뒤
틈만 나면 바닷가를 찾아왔다. 그냥 당일로 버스를 타고 다녀올 정도로 시
퍼런 바다와 시원한 비린내를 좋아하는
바람에 ‘바다를 사랑하는 소년’이란 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소년
이란 표현이 그렇듯 어디까지나 사춘기적
감상에 가까운 애정일 뿐이었다. ‘새만금 주민 속으로.’ 이건 어민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바다의 생명력을
직접 느껴볼 기회가 아닌가. 이제 잘하면 ‘바다를 사랑하는 청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나직이 솟아올랐다.

백합이 사라지면 생계도 끝장나는데…

3월4일 늦은 저녁, 한때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에 흡수된 전북 부안
군 계화면 계화리에 도착했다.
새만금 방조제가 시작되는 변산반도와 곧바로 이어지는 어촌이다. 환경운동
연합과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계화도 주민의 집에 묵으며 바닷일을 한다는 일정을 이미 짜놓
았다. 마침 이날 열린 청년회 모임이
끝나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풍물을 배우자는 의견을 놓고 들뜬 토론을
벌이는 분위기가 어딘가 대학 동아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회원들의 연령이나 순박함은 드라마 <전원일기 > 속의 청년회와 닮았다.
회원 70여명의 나이는 20살부터 46살까지다. 마을 전체가 자꾸 고령화되는
탓에 올해부터 회원 자격의
상한을 50살로 늘렸다. 그 중 몇몇 회원들과 구체적으로 계획을 짰다. 첫쨋
날 아침에는 주꾸미잡이 배를
타고, 둘쨋날에는 숭어잡이 배를 타고, 세쨋날에는 갯벌로 나가 조개 채취
를 하는 걸로 입을 맞췄다.

갯벌을 없애는 새만금 사업으로 생겨난 심상치 않은 기운은 금방 느껴졌
다. 함께 일을 나가기로 한 김하수(36)씨는
오늘 주꾸미 잡이에 나섰다가 완벽하게 허탕을 쳤다며 어두운 기색이었다.
“손이 타버릴 정도로 일했는데 고작
21kg 잡았다. 지난해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kg에 8천원을 받고 상
인에게 넘기니 배 기름값이나
건졌을까. 이후 ‘지난해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이곳에서 가
장 자주 듣는 말이 됐다. 만경강,
동진강이 바다와 만나 넓게 형성된 새만금 갯벌은 담수와 해수가 만나 풍부
한 어장을 이루는 곳이다. 철을
달리하며 산란을 위해 찾아드는 어종이 수많은 어민을 먹여살려왔다. 2∼4
월에는 실뱀장어와 주꾸미, 4∼6월에는
대하, 가을에서 겨울은 숭어, 한겨울을 빼고 늘 한몫 만들어주는 ‘조개 중
의 조개’ 백합 등등. 그런데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실뱀장어와 대하는 사라졌고, 대합·중합·소합으로
분류되는 백합과 주꾸미는 급속도로 줄어드는
와중이다. 주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백합에 쏠려 있었다. 예전에는 갯벌에
나가면 백합 덕분에 하루 10만원의
소득을 가뿐하게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새만금 사업의 진척과 함께 점점
백합 캐기가 어려워지더니 하루 2만∼3만원
벌이가 쉽지 않게 됐다. 그나마 올해는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
심이 일고 있다. 2월이 되면
갯벌 깊은 곳에서 ‘겨울잠’을 끝내고 지면 가까운 곳으로 돋았어야 할 백
합이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백합이 사라지면 계화도 주민의 생계는 끝장난다.

“난 기자를 싫어한다”

숙소를 제공해주기로 한 고은식(40)씨는 자기 집으로 향하면서 앞뒤 설명
없이 대뜸 “난 기자를 싫어한다”고
했다. 새만금 사업을 추진하는 쪽이나 찬성하는 쪽의 주장만 적극 보도해
온 전북 지역 언론에 대한 배반감과
불신이 이유였다. 고씨는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일터였던 양식장이
없어지는 바람에 개 키우는 일로 전업한
경우다.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처음부터 일이 틀어졌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바람에 배가 뜰 수 없었다. 아예
폭풍주의보까지 떴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낮에 무리
하게 일 나가던 배 두척이 가라앉았다고
하는데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얕은 곳이어서 쉽게 건져올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이 정도 바람이라면 내일도 꼼짝할 수 없을 것이란 말들을 단정
적으로 한다. 오! 이런….

바다는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비는 멈췄으나 바람이 거세 폭풍주의보
는 여전히 발효 중이다. 마을 청년들
가운데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김기완(28)씨에게 어떻게 해볼 수 없느냐고
자꾸 재촉했더니 배들이 묶여
있는 바닷가로 이끈다.

“파도가 허옇게 히뜩히뜩 까지는(뒤집어지는) 거 실감나게 보이는 구먼.
히뜩히뜩헌 게 여기선 별게 아닌
것처럼 보여도 바다 나가면 최소 1.5m인디 어찌라고.”

비가 멈췄으니 갯벌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경운기들의 출발장소에
가봤지만 빈 경운기들만 줄지어
서 있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은 바다에 나가면 너무 추워 일을 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 한 어민이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 “바다는 겨울과 여름 두 계절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드넓
은 갯벌에 기자 혼자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말린다.

놀러온 거냐, 일하러 온 거냐

도리없이 바닷일을 또 포기하고 대신 마을 사람들과 주꾸미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김기완씨와 함께 변산반도 해안도로를
한참 돌아가 어시장이 열리는 곰소에서 주꾸미를 사오면서 주꾸미에 대한 몇
가지 오해 혹은 무지를 풀 수 있었다.
일단 주꾸미를 잡는 방법이 오징어 잡이와 같을 것이란 나의 근거 없는 추
측. 주꾸미는 오징어 잡이에 쓰이는
형형색색의 찌와 달리 어른 주먹만한 소라껍질을 이용한다. 산란 장소로 좋아
하기 때문이다. 속이 빈 소라껍질을
줄에 매달아 바다에 담가놓으면 주꾸미가 알아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 이걸
나중에 일괄적으로 끄집어내면 된다.
예전에는 500개 정도의 소라껍질이면 충분히 잡았으나 지금은 1만개, 2만개
를 주렁주렁 달아 바다에 떨어뜨려도
좀체 잡히지 않는다.

그 다음은 먹는 것. 주꾸미 먹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였다. 먼저 다
리를 잘라내 일부는 회로 먹고,
일부는 살짝 데쳐 먹는다. 별미는 밤톨만한 ‘머리’였다. 먹물이 든 머리
를 그대로 푹 삶은 뒤 하나를 집어먹어보니
오톨도톨 쌀 같은 게 잔뜩 씹힌다. 제철에 잡는 주꾸미는 수많은 알을 품
고 있었고, 그게 머리 속에 알맹이처럼
들어 있는 것이었다.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위해 명동 밀리오레에서 다
리가 붓도록 밤새 옷 파는 일에
며칠씩 나섰던 김소희 기자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놀러온 거야, 일하러
온 거야. 이를 어쩌지.’ 하지만
이런 걱정은 주꾸미를 곁들인 소주 맛에 점차 사라져갔다. 4만원어치를 사
왔을 뿐인데 장정 10여명이 한켠에
수많은 소주병을 쌓아가며 배불리 먹었다.

애초 예정한 3박4일 중 마지막 날이 왔다. 주꾸미잡이 배를 먼저 탄 뒤 갯
벌에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날도 바람 때문에 배는 뜨지 않았다. 결국 뱃일은 포기하고 갈고리 하나
를 들고 갯벌로 나섰다. 넓고 넓은
갯벌에서 호미질하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헤집기 시작했다. 여기에 뭐가 있
으랴 싶은 짙은 회색빛 흙을 두께
3∼5cm로 뒤집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조개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
다. 이곳에서 꼬막이라 부르는(전남
지역에서 부르는 꼬막과는 다른) 동막이 대부분이었다. 한번 갈고리를 들었
다 놓으면 한두개는 나왔다.

갑자기 하늘을 본 동막은 대개가 당황스럽다는 듯 물을 찌익 뿜어냈다. 서
울의 식당에서 먹는 칼국수의 바지락
크기 만한 동막은 새끼라서 그냥 놔두는 게 이곳의 예의였다. 1시간쯤 지나
자 캐낸 동막이 쌓인다 싶은 느낌이
됐다. 춥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잔뜩 껴입고 나온 옷이 답답할 만큼 땀이
나기 시작했고, 쪼그려 앉은 다리가
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신이 났고, 쑤시는
팔과 다리의 아픔은 뭔가에 홀린
듯 사라져갔다. 무엇보다 ‘명당’을 찾는 일에 재미가 붙었다. 어떤 곳은
아무리 헤집어도 하나 나올까 말까
했지만, 어떤 곳은 한번 손질에 무수히 딸려나오기도 했다. ‘돈 안 되
는’ 동막에 비해 ‘돈 되는’ 백합을
찾기란 어민들 말 그대로 무척 어려웠다. 예전에는 동막처럼 갈고리만 대
면 나오던 백합이 사라져가는 갯벌.
이를 바라보는 어민의 심정이 어떨지 조금씩 와닿았다. 머잖아 동막마저 사
라질 것 아닌가. 지금은 팔순을
훌쩍 넘은 아버지와 함께 서해의 모든 어장을 돌아다녔다는 전대준(38)씨
는 “여기가 (새만금 방조제로)
막히면 이제 갈고리 볼 데가 없을 것”이라며 씁쓸해한다.

24kg 동막이 불과 1만7천원

갈고리질을 할수록 머리 속 생각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갯벌은 바닷물
이 빠지면서 하루에 한번씩 땅이
된다. 그런데 아무도 내 땅이라고 침 흘리지 않는다. 사고 팔며 값을 천정
부지로 올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누가 씨를 뿌리는 것도 아닌데 수많은 먹을거리를 끊임없이 가져다준다. 그
냥 아무나 들어가서 캐오면 된다.
이렇게 경이로운 곳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그 숨을 끊어놓으려 한다. 어이
없게도 누군가의 사유지로 만들기
위해서.’ 모두의 공유지를 누군가의 사유지로 만들려는 인간의 욕심이 아
주 징글맞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첫날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의 대표 신형록씨
가 조용조용 강조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어민들에게 갯벌은 생계수단만은 아닙니다. 예컨대 여성 어민은 고된 시
집살이에다 남편에게 받는 구박의 고통을
갯벌에 나가 일하면서 풀고 묻어두죠. 어민들이 잘 표현해내지 못해서 그렇
지 갯벌은 그들에게 삶의 연장이고
삶 그 자체입니다.” 5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일하는 게 고통스럽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즐겁고 신기했던
느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짧은 시간의 강렬한 느낌도 제대로 표현하
기 어려운데 이걸 평생 되풀이해온
어민들의 마음에는 어떤 것이 쌓여 있을까? 캐낸 24kg의 동막이 불과 1만7
천원이란 돈으로 바뀌어 손에
쥐어졌다. 서울로 향하는 마음 한켠이 묵직했던 건 애초 일정이 많이 틀어
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만금 간척, 정말 해야 하는가

서해교전의 원인은 간척사업에 있다? 꽃게잡이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남북 사이의 서해교전을 두고 계화도 어민들은 농담반 진담반 이렇게 말한
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 광범위하게
형성되는 갯벌 앞바다에 꽃게가 몰려들었으나 서해 곳곳에서 지속해온 간척
사업으로 강과 바다의 만남이 뒤틀리면서
꽃게가 한강 위쪽으로 북상했다는 것이다.
바다를 땅으로 바꾸려는 인간의 욕심이 예상 못했던 어떤 재앙을 낳았는지
는 시화호 사건이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시화호 방조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새만금 방
조제 건설이 이상스레 강행되고 있다.
경제적 효과가 기대돼서? 절대 그렇지 않다. 진짜 이유는 신규사업을 찾는
농업기반공사와 지역개발로 주민의
환심을 사려는 유지 및 정치인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전북 군산, 김제, 부안군 사이의 갯벌을 간척지로
바꾸는 새만금
사업의 핵심은 안정적인 쌀 생산 기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쌀 공급
과잉이 지속되면서 농가의 소득은
줄어들고 있고, 지난해 농림부는 쌀 증산정책을 포기하겠다고까지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쌀 공급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수입쌀은 과거 5년간 연평균 8만여t인데, 새만금 간
척지에서 쏟아져나올 쌀만 연간
14만t 수준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펼쳐왔던 쌀 부족, 식량
안보 논리는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다.

반면 비용은 엄청나다. 1991년 시작해 애초 2001
년 완공
예정이었던 이 사업에는 지금까지 1조1천여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방조
제 33km 중 19km 정도만 완성된
상태이고, 내부 개발 공사까지 고려하면 불과 20%의 공정에 머물고 있다는
게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의
평가다. 지금은 방조제 공사가 2004년에, 농지 조성을 위한 내부 개발이
2011년에 끝나는 것으로 일정이
조정됐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사업의 총비용이 5조9천여억원에 이를 것으
로 지적했다.

또 갯벌을 없애는 데서 생기는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새만금
연안을 포함한 전북지역의 조개류 생산량만 1991년 통계로 4만400여t(2400
여억원)에 이른다.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조개류에다 각종 어류와 해조류까지 합하면 그 경제적 가치는 쌀 농
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해 5월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6.3%가 새만금
사업에 반대한 반면, 전북 도민의 80% 이상이 찬성했다. 한때 새만금 간척
지에 복합산업단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지역개발사업을 숙원으로 여기는 전북 도민의 기대감을 높
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간척지를
오로지 농지로만 사용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전북 농민과 도민은 새만금 간
척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비료
사용량 감소 등 온갖 규제를 떠안게 될 뿐이다.

글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자료제공 : 한겨레 21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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