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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지구촌 대중의 신나는 잔치

월드컵은 지구촌 대중의 신나는 잔치

월드컵 기획자문단 특별좌담

지금, 우리에게, 2002 한-일 월드컵 대회는 무엇인가? 각계 인사로 구성
된 `한겨레 월드컵 기획자문단’이
제기한 첫번째 질문이다. `월드컵’을 올바로 보기 위해 모인 기획자문단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단장인
안병욱 교수의 사회로 첫 모임을 갖고 지혜를 모았다. <한겨레>는 월
드컵 대회가 끝난 뒤까지
월드컵과 관련한 주요 쟁점이 있을 때마다 기획자문단의 생각을 들을 예정
이다. 편집자

안병욱=지난 88년 서울 올림픽 때의 일입니다. 당시 올림픽 경기가 제가 살
던 집 바로 앞에서 열렸는데,
독재정권의 이벤트라는 생각 때문에, 집을 드나들면서 경기장쪽은 쳐다보지
도 않고 다녔습니다. 당시 진보진영의
정서가 대부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
쉬운 생각도 듭니다. 정치적인 행사가
분명했지만, 지구촌 사람들의 한판 놀이 마당이기도 했는데 그 무대를 외면
한 것입니다. 많은 지구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즐기고 넓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죠.

이런 점에서 이번 월드컵은 88올림픽과는 다른 관점으로 대해야 할 것 같
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시니까 각계 각층이 월드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얘기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홍준=70년대 박정희 정권 때는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심적 갈등이 많
았습니다. 우리가 이기면 좋지만,
그것을 군사독재정권이 이용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지는 게 좋
다는 생각도 들었죠. 프로야구도 그렇습니다.
프로야구 출범은 독재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관계가 있어 씁쓸하지만 지금
프로야구에 대한 민중들의 애착과 열기는
또 하나의 현실인 거죠. 우리는 어찌됐든 월드컵 개최국입니다. 월드컵은
올림픽과 달리 강대국 중심의 문화적
횡포가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올림픽에서는 강대국들이 육상, 수영, 체
조 등 자기들이 잘하는 종목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메달 수를 늘려 놨지만 월드컵 축구는 오직 한 개의 트로
피를 놓고 다투는 경기입니다. 축구의
규칙은 대단히 공정하고 단순합니다. 또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상으로 월드
컵은 서구 강대국 잔치에 약소국이
들러리로 서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주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가 우승은
아니더라도 결승전에 올라가기를 바라며 열심히 응원할 것입니다.

이정식=희망의 21세기를 맞았지만 지금 지구촌은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대
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또
테러와 반테러 등 강대국의 힘의 논리로 인한 전쟁의 위협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이번 월드컵은 현재의 대립과
갈등 구도를 화해의 구도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저도 대학다닐
때 88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독재정권에 악용된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런데 외국에 나가보니 88
올림픽이 한국을 알리는 데 나름대로
큰 기여를 한 것 같았습니다. 한·일 월드컵은 여러 분야에서 보다 큰 기여
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분단과
노동, 인권문제 등 우리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 수 있
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찬호=현 정권은 이전 정권으로부터 두 개의 빚을 물려받았는데, 하나는
아이엠에프(IMF)이고 다른 하나는
월드컵입니다. 아이엠에프 극복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있습니다만, 아무
튼 현 정권은 나름대로 열심히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준비는 소홀한 측면이 좀 있지요. 88올림픽 때와 달리 지금
은 시대가 바뀌었고 시민사회의
힘도 달라졌습니다. 분명 월드컵은 88때와는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합니다.
올림픽을 치렀던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림픽이 끝난 뒤 사
회 문화적으로 이를 분석한 제대로
된 책 한권 내지 못했습니다. 그 때 놓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최진우=이번 겨울올림픽의 김동성 사태를 통해 스포츠의 힘이 얼마나 대단
한 것인 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힘을 경제적으로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 이번 월드컵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지난 98년 월드컵을 치른 후 주식시장이 100%이상 성장했고, 스페인은 월드
컵 이후 관광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월드컵도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봅니다.

조윤환=한·일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토양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올 것
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축구를 세계축구와
비교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무엇을 반
성하고 고쳐나가야 할 지 축구인들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축구팬들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팀과 선
수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행운이죠.

최열=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월드컵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90년대 들
어 스포츠를 환경과 결합시킨 두
가지 국제대회가 있었는데, 그 첫 행사가 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이었
습니다. 이 대회는 시상대를 얼음으로
만들었고, 일회용 종이컵 대신 감자가루로 만든 컵과 스푼을 사용했습니
다. 두번째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인데,
완벽한 환경올림픽이었습니다. 그린피스가 올림픽 유치 때부터 태양에너지
와 친환경적 재료를 이용할 것을 조직위원회에
제안했고, 조직위는 이를 수용하여 지난 50년간 400만 시드니 시민이 쓰레
기매립장으로 사용했던 지역을
환경친화적으로 복원하여 경기를 치렀습니다. 경기장 건물마다 빗물 저장고
를 설치해 물을 재활용했고 경기장
내 조명시설과 가로등의 전기를 태양에너지로 공급했습니다. 또 경기장 내
에서는 개인 승용차 운행을 금지했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하철을 경기장 안까지 개통시켰습니다. 주변
하천을 1급수로 회복시켜 금개구리
서식지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환경친화적인 생태 경기장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케이트 박사를 초청해,
시드니 올림픽의 `환경 바통’을 정몽준 월드컵 조직위원장에게 넘길 수 있
도록 했습니다. 이 바통은 다음
월드컵 주최국에 넘겨져 환경친화적인 스포츠의 전통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
다.

안병욱=여러분들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성공적인 월드컵
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학자로서 예상컨데 이번 월드컵은 우리사회가 크게 성숙할 수 있
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정체된 느낌입니다. 월드컵은 우리 사회가,
예컨대 사춘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갈
때 진통을 겪다 어느 순간 청년으로 성숙하듯, 그런 전환의 계기가 될 것입
니다. 성공적인 월드컵을 위해서는
정부나 축구인은 물론 시민사회의 역할도 중요할텐데, 어떤 준비가 필요할
까요? 최열 의장께서 먼저 말씀해주시죠.

최열=환경연합에서는 세계 최초로 시민참여에 의한 환경월드컵이 될 수 있
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 친환경적
교통수단을 이용해 각국의 대통령과 유명인사 등 귀빈들은 전기자동차나 자
전거를 타고 경기장에 입장하고, 관람객들에게는
녹색지하철 표를 무료로 나눠줘서 총 입장객 중 몇 명이 지하철을 이용했
는 지 경기장 전광판에 알릴 예정입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억제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관련 수치를 전광
판에 표시할 예정입니다. 월드컵 경기를
통해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메시지를 지구촌에 전달하는 것이죠.

조윤환=축구인으로서 성공 월드컵에 대한 부담이 큽니다. 개최국으로서 지
금까지 16강에 못 들어간 나라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16강에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
재 한국 축구는 월드컵 경기에
맞춰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1월 골드컵 대회에서 만족스런 경기를
하지 못했습니다만, 그게 한국팀의
진짜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해외파가 많이 빠졌고, 히딩크 감독도 성적에
신경쓰기보다는 자기가 구상하는 팀을
만드는데 주력했죠. 앞으로 한국팀은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월드컵 16강도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히딩크를 믿고 힘을 실어 줘야 합
니다. 언론도 대표팀의 평가전 결과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되죠. 히딩크가 여론에 흔들려 중심을 못잡
으면 곧바로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성원이 있으면 좋은 결과가 있
으리라고 봅니다.

최보은=저는 자칫 월드컵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을 지적
하고 싶은데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면 책이 안팔린다거나 극장가가 파리를 날
린다거나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 영화계에서는 신작영화의 개봉일정을 월드컵 기간을 피해 대폭 앞당기
거나 늦추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죠.
행사가 행사인 만큼 언론이 지대한 관심을 쏟는 건 좋지만, 좀더 효율적으
로 역할분담을 해서 문화소비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건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스포츠전문 채널
만 해도 몇개나 되고, 스포츠 전문지도
적지 않은데, 거의 모든 신문방송이 단일행사에 똑같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
할 필요까지야 없는 것 아닌가요.

정윤수=언론 보도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축구는 매
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속도와
공간의 절묘한 함수관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볼수록 어려운 경기입니
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의 보도는 아직도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수준입니
다. 축구에는 틀림없이 고유한 민족성이
깔려있고 더욱이 국민통합의 성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축구의 미학
그 자체를 깊이 있고 섬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축구 종가인 영국에는 수십년씩 축구 한 분야
만 취재하고 있는 기자가 즐비하고
또 그들은 맨체스터나 아스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등 매우 전문적이고 체
계적입니다. 이번 월드컵을 맞아 각종
매체에서 월드컵을 다루지만 단순 정보를 나열하는 수준입니다. <한겨레 >만큼은 축구의 역사와 민족성을
함께 아우르면서 동시에 축구의 섬세한 아름다움까지 전달해줬으면 좋겠어
요.

최진우=월드컵은 우리나라의 스포츠마케팅 분야에도 많은 배울점을 던져
줄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 때 경기장에서
맥주를 팔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개최국
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라고 하는데,
하지만 정작 경기장에서 맥주를 판매할 수 있는 업체는 피파의 공식 스폰서
인 `버드와이저’로 한정돼 있어
그 이득은 한국이나 일본과는 상관없는 업체에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이
런 점이 최근 스포츠마케팅의 경향이며
한국과 일본과 같이 대회 개최를 위해 직접적 비용을 지불한 쪽에서 대비해
야 할 점입니다. 이번 월드컵 때
피파의 스포츠마케팅에 대해 잘 파악하고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찬호=손님을 맞이하는 자세도 중요한데,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서양사
람들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지구촌의 시민으로서 그들을 맞이하는 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죠.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내 화교들이 주로 안내자가 될 터인데, 화교들이 한
국을 제대로 소개할 지는 불투명합니다.
화교들이 월드컵을 어떻게 생각하고, 한국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먼저
파악해야 겠죠. 한국사회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있는 그들이 월드컵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유홍준=월드컵을 통해 어떻게 우리 문화의 위상을 정리하고 높일 수 있는
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방에서 많은 경기가 열리는 만큼 서울과 다른 지방 사람들의 시각을 적절
히 반영해야 합니다. 10개의 경기장
시설은 엄청난 문화적 기반시설이지만 그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고,
유지 관리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안병욱=노동계를 비롯한 진보진영은 어떤가요?

김명인=진보진영이 어떤 관점으로 월드컵을 준비해야 하는 지는 참 어려
운 화두입니다. 이런 질문에는 이른바
진보진영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 같은 것이 깔려 있는 것 같은데요, 우리는
지금 무엇이 진보인지까지도 다시
논의하고 있는 중이지 않습니까. 88올림픽 때 진보진영의 태도는 `나서서
막을 역량은 없지만 그 장단에
춤은 추지 말자’는 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워낙 스포츠를 좋아
해서 텔레비전을 통해 볼만한 건
다 봤지만….(웃음)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88올림픽과는 여러모로 그 상황
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지닌 특질이 있습니다. 축구는 가난한 사
람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매우
대중적인 스포츠입니다. 물론 이런 점에서 우리의 역대 독재권력을 비롯해
전세계의 독재권력들이 축구를 악용해
온 경우도 매우 많지만. 하지만 이런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그 비특
권성과 단순성 때문에 민중의 스포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 전세계적인 최고의 인기종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주도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종목입니다.
월드컵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화되지 않고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전세계
대중의 잔치라는 측면이 매우 강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월드컵은 적어도 올림픽에 비해서는 순수하고 공정하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정식=노동계는 참으로 복잡한 심정으로 월드컵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
다. 아이엠에프 이후에 소득분배가
더욱 악화되고 있고,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
리 노동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일주에
70-80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악순환되고 있는 상
황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주
5일근무제는 언제 도입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월드컵을 마음 놓고 관람
할 수 있는 시간적 여건이 안되는
것이죠.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퇴근 후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는 것도 사
치일지도 모릅니다. 또 월드컵 입장권은
너무 비쌉니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죠. 국내에서 치르는 월드컵 경기
가 자칫 잘못하면 ‘경기장 가는
아빠와 못가는 아빠’로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고, ‘당신들만의 잔치’로 끝
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을 ‘열받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거죠. 월드컵 기간 중이나
혹은 이후에라도 사회적 통합을
위한 배려나 정책들이 요구됩니다.

노동자들도 최대한 자제하고 협조하겠지만, 월드컵은 월드컵이고 노동자들
의 생존권은 생존권입니다.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월드컵 치른다고 밥을 굶으라
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타인의 권리나 사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양성의 사회로 나아가고, 성숙
한 시민의식을 키우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또 한-일 공동으로 개최하는 만큼 21세기에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는 과거에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고 청산, 정리해야 가능
합니다. 한-일 공동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징용, 징병 등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
에 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국내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도 개선되야 합
니다.

홍연선= 16강에 한국 축구의 사활이 걸렸다는 듯한 지금의 국민적 분위기
와 틈만 나면 한국 축구를 동네북인
양 두드려대는 언론을 생각해보면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미래가 장밋빛
이 아니라는 것은 확연합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축구 문화가 월드컵을 계기로 갑자기 생기길 바라는 건 사실 무리
죠. 그나마 요즘 한국에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는 축구 문화의 하나인 응원만 해도 자발적으로 시작됐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서 서포터의
출현은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었지만, 한국의 붉은악마나 프로팀 서포터
는 처음부터 조직적인 단체로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 둘 모여서 응원하는 것보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지만
조직의 형태로 시작한 만큼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서기에는 약간의 부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도 길지 않습니
다. 때문에 그것을 두고 축구 문화가
조성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은 부족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진
적인 축구문화를 가진 나라는 지금
충분히 즐겨도 될 만큼 많은 투자를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수를
키우는 것도 투자가 될 것이고
일본처럼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도 투자가 될 것입니다. 또
언론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성
있는 시각으로 한국축구가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는 것도 투자가 될 수 있겠
죠. 그리고 그 투자가 재미로 나타나야
팬들이 몰려들고 축구 문화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정윤수=월드컵 이후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지금 이런 논의를 하는 와중에
도 대전시티즌 프로팀은 선수생명이
좌우되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온나라가 월드컵으로 들떠있지만 현장의
선수들은 소외된 상황인 것이죠. 곧
국내의 각종 축구 경기가 시작될텐데 월드컵에 쏠린 국민적 관심의 일부만
이라도 축구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단순히 저 많은 경기장을 월드컵 이후에는 어떻게 활용
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김명인=아무튼 이번 월드컵은 세계축제적 의미를 깊이 살려 국가간의 승부
보다는 ‘즐김과 나눔’,`평화와
연대’라는 측면으로 접근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세
계화가 아닌 또 다른 의미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계기로 이 축제의 의미를 살리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
를테면 우리 나라에서 경기를 벌이는
16개국에 대해서만이라도 자본이나 패권주의의 지평에서 국가간, 인종간,
종교간 이해를 나누고 심화시키는
계기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월드컵의 슬로건을 `월드컵,
또 하나의 세계를 향해’로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안병욱=이번 월드컵을 어떻게 평가하고 활용하는 가에 따라 그 성과와 파
급 효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올바른 중심을 잡아 방향을 설정하고 운영해간다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상
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인류사회는 미국을 축으로 전쟁으로 내달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모두
에게 유쾌하고 즐거운 월드컵잔치를
통해 평화와 공존을 향한 희망을 키우도록 해야 하겠죠. 장시간 감사합니
다.

월드컵 기획자문단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유홍준(명지대 교수·미술사) 최열(환경운
동연합 사무총장) 조윤환(프로축구 전북현대
감독) 이정식(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정윤수(문화평론가) 김명인(문학평
론가·<황해문화>편집주간)
김찬호(연세대 강사·사회학) 최보은(영화월간지<프리미어>편집장)
홍연선(전 `붉은악마’ 상근간사)
최진우(한국타이거풀스 스포츠마케팅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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