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대만, 죽음의 란위섬을 아시나요?

오랫동안 말로만 듣던 대만 란위섬(蘭嶼島)을 다녀왔다. 시골의 좁은 지역 아니면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각종 정보를
뒤지고 모바일 포로가 되어 허우적거렸던 일상에서 벗어나 일주일간의 여행길이었다.

지난 6월 2일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하여 대만 타이베이까지의 여정은 비행기 안에서의 도시락 하나로 배를 채웠을 뿐,
매우 바쁘고도 피곤한 여행길이었다. 그것도 핵발전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셀라필드 핵폐기장에서 세계 최악의 유출
사건(연합뉴스 2005-05-29)의 보도를 보고 떠나는 마음은 한층 무거웠다. 우리의 일행은 당일 목적지인 타이베이 대만사범대학에
도착하여 기숙사에 여장을 푼 다음 바로 “2005년 아시아반핵국제회의”를 위해 먼저 온 일본 대만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번 비핵아시아국제회의에서 각국의 발표자들은 유럽의 기후변화와 원전, 교토의정서와 원자력 산업, 2년 동안의 대만·일본·한국
반핵운동안의 보고가 있었다. 다들 정해진 발표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진지한 토의와 질의가 있었다. 오전은 참가자들이 미리 준비해
온 논문 발표형식의 포럼이었다면 오후엔 참여자들 간의 자유토론시간으로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 측 한 젊은이는 핵심적
제안을 하나 했다. 그것은 아시아와 유럽 자국에서 핵폐기물을 제3국(북한)에 책임을 전가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제안은
회의에 참석한 토론자들의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져 공동합의문 제5항에 삽입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일본?대만?유럽 등의 원전
전문가와 환경보호자들이 참가한 이번 회의에서 우리 측 참가자들이 가장 젊었으며 매우 논리 정연하였다는 회의 끝내면서 각국
대표자들로부터 칭찬과 부러움을 사게 했다.

▲란위섬 핵폐기물 반입 전용항구

우리들의 다음 과제는 대만 일본 유럽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대만 동부 란위섬을 찾아 가는 것이었다.
란위섬은 대만 원전에서 사용하고 남은 핵폐기물을 저장하고도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이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과
같이 란위섬 주민들은 지금 핵폐기장에서 유출되는 방사능에 피폭되어 고통과 공포에 떨고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 중에서도 우리가 그 란위섬을 찾아서 그토록 섬주민들을 죽음과 공포로 몰고 간다는 핵폐기장의 실상을 확인하고 섬주민들로부터
사실을 들어 보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대만 타이통에서 비행기를 타고 25분가량의 지나자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난위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녹음으로 뒤덮인 난위섬 해변가로는 마치 바늘 실을 빙~· 둘러 올려놓은 듯 꼬불꼬불한 좁은 도로가 나있었으며,
섬 주변의 아름다운 해안과 성냥갑 같은 집들이 하나둘 모여서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란위섬은 인간세계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지구상의 파라다이스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오늘날 경제제일주의를 지향하고 물질만능주의 추구하는 이면에서 버려진
채 죽음의 섬으로 변했다니 차라리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우리들은 란위섬에 도착하여 잠시 주귀광(周貴光) 란위향장(蘭嶼鄕長)으로부터
그동안 섬주민들의 근황과 앞으로의 란위섬 앞날에 대한 정부정책을 간단히 들은 다음 바로 현지 섬주민들을 찾아 나섰다.

▲란위섬 핵폐기장 사진

대만은 그동안 전국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란위섬에 저장하여 왔다. 우리가 찾았을 땐 이미
몇 해 전 반입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소비가 미덕이라 부추기며 살아온 문명의 반면에는 문명존속에서 최대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핵폐기물 방사능에 피폭된 섬주민들은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란위섬에서 만난 원주민은 야메이족(芽美族) 중장년이었다.
그는 우리를 처음 보는 순간 핵폐기장 문제로 왔을 것이라 직감하곤 금세 자기의 속내를 거침없이 풀어놓았다. 이 원주민은 만남의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란위섬 주민들은 지금 희망과 꿈도 없이 절망과 실의에 빠져 살아간다며 언성을 높였다. 어떤 아줌마는
자기 남편(52살)이 가끔 가슴부위가 수분동안 답답하며 심한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한다. 그런 다음엔 피곤나머지 그 날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증상은 한두 번이 아니라서 어느 날에는 참다못해 타이통시의 큰 병원을 찾아 정밀진찰도 받아보았으나
병명을 알 수 없다는 의사진단에 답답하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또한 지금 란위섬 주민들은 골수암 폐암 백혈병 등으로 사망률 증가로
섬주민의 평균 수명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하였다.

예전에는 80살을 넘기는 어른들이 꽤나 있었으나 근래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학교에
근무하다는 한분은 선천성저능아 출산은 핵폐기장이 들어오기 전까지 없었던 일이라 울부짖었다. 그들은 지금 분명히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으며 죽음의 두려움에 정서적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위로하고자 우리도 대만환경보호연맹과 같은 핵발전
반대와 환경보호 시민운동가라 소개하자 마치 메시아를 찾는 절박한 신자의 떨리는 음성으로 쉼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란위섬 주민들의 전통가옥

대만 란위섬 주민들에 의하면 대만정부는 핵폐기물을 란위섬에 저장하기 위해서 처음엔 지역통조림공장을
짓는다며 속였다고 했다. 그런 거짓은 얼마 되지 않아 들통 나고 말았지만 섬주민들은 정부에 핵폐기물 반입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격렬한 반대운동을 벌여 나가게 된다. 섬주민들은 1996년에 와서는 산위에 올라가 큰 바윗돌을 굴리고 돌을 던지면서 부두에 접안하려는
핵폐기물 수송선을 쫓아버린 일도 있다 한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는 섬주민들의 항의에 아랑곳 않고 그럴수록 허무맹랑한 약속만 떠벌렸다
한다. 옛 국민당 정부시절 정부에 대한 비판과 집회의 자유가 엄격하여 섬주민들의 반대운동은 처절했다고 증언한다. 현재 민진당이
집권하여 란위섬에 대한 약간의 관심은 보이고는 있으나 국민당 정부 땐 섬주민들의 결사투쟁에도 란위섬의 미래는 핵폐기장 유치에
있으며,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은 머지않아 관광명승지로 발전하게 된다는 일관된 거짓 홍보로 기만했다 한다. 그러나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의 높은 고용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그곳에는 지금 3,500명의 섬주민 중에서 관리직 직원 11명과
임시로 고용된 노무자 몇 명만이 고작이었다. 하물며 기껏 20년을 지낸 핵쓰레기 저장실의 주변에는 무쇠 강철도 바닷바람에 부식되어
가고 있었으며, 핵폐기장 콘크리트 외벽은 수분에 산화되어 여기저기 갈라진 틈새로 실리콘과 페인트칠로 임시 처방한 흔적들이 확연히
들어났다. 누군가 핵폐기장 관리책임자와의 면담에서 대만도 하루빨리 유리화 설비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으냐의 질문을 받은 그는
새로이 발생하는 핵폐기물에는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의 핵폐기물에는 불가능하다 했다. 또한 미국의 원전 수준으로도 핵폐기물의
영구처분이란 현대과학기술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시인하면서 우리들에게 핵폐기장의 문제점을 그대로를 알려주고자 무척이나 애썼던
솔직한 관리자였다.

란위섬 핵폐기장을 돌아서는 길에 한국 젊은이의 환경운동가는 핵폐기물의 대물림이란 천년만년 미래
세대에게 큰 죄악이라 했는데 대만 정부가 이 죽음의 암덩어리를 굶주리고 배고파하는 북한동포에게 돈을 주고 보내려했다니~~~!
그녀의 탄식과 함께 우리 모두는 말을 잊었다.

우리는 앞서 만난 섬주민과 달리 대만 정부와의 오랫동안 투쟁을 주도해 온 사람을 만났다. 그는
우리와의 신뢰감을 확인한 후에는 투사다운 언변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그 대만 정부가 지난 란위섬 주민들에게 약속하였던
그림 같은 계획들은 모두가 거짓이었으며 당신네 나라도 그렀냐고 되묻는다. 그는 대만 전국은 지금 관광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으나, 란위섬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아름다운 섬이라 외지인에게 아무리 부른 짖은들 관광객은 오지 않는다며 손을 내젓는다.
한 농민은 란위섬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타이통과 인근 도시에 가져가 팔려고 하여도 소비자가 외면해 팔로를 잃어서 지금 밭에는
저렇게 잡초만 무성하다며 울먹였다. 어업도 포기한 듯 조금만한 항구에 정박시켜둔 배들은 모두가 폐선으로 보였다. 그리고 GDP
경제규모가 세계 17위인 나라 대만에서 란위섬 주민들의 차량들은 중고차 아니면 모두가 폐차를 구입하여 굴리는 관계로 차량의 번호판도
교통법규도 없는 대만의 치외법권지역 같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사람은 가끔 관청을 찾아 란위섬 사람들의 생활상 불편함과 어려움을
호소도 하지만 쉽사리 들어주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섬주민들이 어떤 합법적이고 이성적인 대화 뒤엔 언제나 공권력의 음흉스러운
힘만 숨어 있었다고 귀띔했다.

동서고금 독재권력이란 하느님도 사람도 꿈꾸지 말아야 할 불가능한 일이라 했다. 란위섬 주민들은
국민당 정부의 철권통치에 맞서 모질게도 싸웠다. 심지어 2001년에는 정부와의 싸움에서 어떤 이가 자포자기식 결사항쟁의 마지막
카드로 핵폐기장을 불 질러 버리려 했더니 그제야 경제부장이 찾아내려왔다 한다. 란위섬 주민들의 투쟁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다.
투쟁의 방식은 날로 사상결단의 방식으로 치달아서야 정부는 섬주민들과 협의에 임해주었던 것이다. 그 때 섬주민과 정부 관료간의
회의석상에서 섬주민들의 핵폐기물 반출 요구시한이 2002년까지 이었으나 정부는 2년 더 연기를 요청하였다가, 또 다시 연기하여
중화민국 102년(2013년)부터 반출을 시작하여 107(2018)년까지 완료 짓겠다는 문서상의 약속을 해 둔 상태라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란위섬 사람들은 현재 경제부장이 바뀌고 그 당시 행정원장의 승낙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을
것이라 정부를 불신한다.

우리가 란위섬을 떠나는 날엔 타이통시에서 큰 집회가 열렸는데 시민들의 주요이슈가 란위섬 핵폐기물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제1핵발전소 저장고도 이미 저장용량을 크게 벗어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모든
핵발전소 폐기물보다 많은 란위섬 핵폐기물은 정부의 약속도 갈 곳도 모른 채 시간만 끌며 란위섬 주민들의 애간장만 더욱 태우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대만 정부는 한반도 북한에 돈줘가며 수출도 시도했으나 국제적 망신을 뜬 이후 이젠 국외유출은 안할 것이라
했다. 현재 대만의 집권당 민진당 정부도 어떻게든 란위섬 주민들과의 한 약속을 지키려 해도 점점 핵폐기장 부지를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기존 부지 내의 저장고는 넘쳐 나고 있을 뿐이었다.

▲란위섬의 일출

대만 란위섬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에메랄드 바다 빛과 석양의 노을은 너무나 환상적이라서
흠뻑 빠져들고 싶도록 좋았다. 사면이 바다인 이곳에서 때론 사색과 때론 마음껏 요트도 즐기고 스노쿨링도 하면서 기암괴석과 어울려
이 몸도 하나의 자연이고 싶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이 지금 냄새도 색도 없는 방사능의 오염으로 죽음의 섬임을 인정해야 한다니
참아 믿고 싶지 않았다. 란위섬 주민들은 필리핀 혈통의 야메이족(芽美族)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기독교 신앙생활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 세상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은 인간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적인 문제다. 그러나
세계사에서 무능한 국가권력이 집권할수록 국책사업을 실행할 때면 국민에게 강경책 또는 권모술수를 선호했다. 더욱이 부도덕한 권력일수록
정부의 능력은 탓하지 않고 국가권력의 폭력은 합법적인 폭력으로 인정하면서 정부를 대신할 꼭두각시를 앞세워서 공동체 파괴와 선량한
민중을 탄압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란위섬 주민들을 만날 대마다 그들의 탄식은 죽음의 공포감에 떨고 있는 한 맺힌 절규로
들렸고 돌아서는 이방인도 그들의 슬픔과 안타까움에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란위섬을 떠나는 우리들은 내 작은 존재라 할지라도 미래의
핵없는 세상을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 절감했다.

글, 사진/ 반핵국민행동 마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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