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인도의 공동체 탐방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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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어떤 나라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곳이 어딘가에 있어야만 합니다. 국가간의 모든 경쟁, 사회적 인습, 자기
모순적인 도덕률과 종교다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 지구상에 한 곳은 있어야 합니다. 선한 의지와 진지한
열망을 지닌 모든 인간이 세계의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지고의 진리라는 유일한 권위에만 복종하여 살 수
있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어야만 합니다. 그곳은 평화와 일치와 조화의 장소로서 , 인간의 모든 전투적 본능이 오직 자신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정복하고 , 자신의 나약함과 무지를 이기며, 자신의 한계와 무능을 극복하기 위해서만 쓰이는 곳이며,
진보에 대한 관심과 영혼의 욕구가 욕망의 만족과 쾌락의 추구와 물질의 향유보다 우선되는 곳입니다.
오로빌의 꿈, 오로빌의 창립자 마더의 말씀

물론 지구는 이런 이상을 실현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인류는 이것을 받아들일만한 지식도 실행할 만한
의식의 힘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직은 꿈이다.
하지만 이꿈은 실현되어 가는 과정 위에 있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며, 시간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다짐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점진적인 과정이다. 완성은 아직 멀다. 그래도 우리는 길을 나섰다.

오로빌은 인도 남동쪽,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150km, 폰디체리 시내에서 10km 떨어져 있다. 약 25㎢의 면적으로 끝자락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로빌은 지난 1968년 세계 1백 24개국의 흙과 인도 각 지방의 흙을 모으고 유네스코와 인도정부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공동체 마을이다. 현재 세계 30여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오로빌의 정신적 뿌리인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스빈도(1872~1950)의
생각을 실천하고 있다.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 일을 해야 할 것, 신성에 가깝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것 등이 그것이다.

마을의 성격을 쉽게 명상 생태공동체로 정리하지만 ‘모든 문화가 공유되길 바란다’는 창립자 마더 알파사(1878~1973 보통
마더라고 부른다.)의 바람처럼 결코 쉽게 정리할 수 없다.

▲ 한국에서 온 시민운동가들을 맞아준 이현숙씨는 오로빌 입구에서
행정구역으로 이동하며 길 옆 빽빽이 둘러쌓인 숲을 가르켰다. “마을이 들어서기 전 이 곳은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았던 곳입니다. 오로빌을 찾는 사람들은 이 숲을 보며 공기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처음 이곳은 사막이었고
오로빌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 오로빌은 주거지대, 문화지대, 산업지대, 국제회당, 등으로
구역이 나뉘어졌고 당초 5만명이 살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마을이다. 현재 2천명이 살고 있는 오로빌의 모습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완결된 이상향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시민운동가들의 혼란이 시작됐다.

▲ 마을의 중심부를 향해 우체국과 도서관 등을 거쳐 도착한
곳은 오로빌리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입문교육장 사비트리 바반이었다. 대개 6개월간 스리오로빈도의 가르침 등을 교육받아야
한다. 마을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이방인이 있다면 미리 연락해 일정에 맞춰 단기간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 이상 과정을 가르치는 중등학교.
12개국 아이들 25명이 3~4명씩 모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각기 과학, 철학, 컴퓨터 등을 배우고
있었다. 교사는 5명이지만 오로빌 주민 모두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교육을 번갈아 가르친다. 오로빌의 교육 목적은 학생
개개인이 개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란다.

▲ 오로빌이 생태마을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은 솔라 키친(Solar).
말 그대로 모든 동력을 태양력로 자급하는 식당이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오로빌리언들이 점심때면 모두 모인다. 식단으로
오로빌 농장에서 재배한 무공해 야채 샐러드와 인도 쌀요리, 콩으로 만든 대용고기 등이 오른다.

오로빌은 이상향이 아니었다. 우선 자급자족을 실천하지 못한다. 상당한 식량과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노동(직업)도 개인의 물질적 삶을 충분히 담보하지 못해 외국에 나가 일해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자녀교육을 위한다거나 연금퇴직자 등 스리 오로빈도의 뜻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늘어나 유대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완결된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시민운동가들의 혼란과 고민도 커졌다. 35년의 세월을 거쳐온 오로빌 공동체의 내공은 크게 다가왔지만
기대를 채우기엔 모자란 느낌이었다.
오로빌 중심지에 위치한 마을의 성소 마티르만디르,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거대한 황금공의 모습을 띠고 있다. 오로빌리언의 명상장소로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상징한다. 마티르만디르 주변은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충만하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5백여미터 전부터 입을 다문채 신발을 벗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오솔길을 걸으며 자신을 가다듬는다. 중앙에 이르면 맑은
크리스탈 공이 건물 꼭대기에서 전자기 제어를 통해 천장을 통해 유도되어 천장을 통해 쏟아지는 태양빛을 사방에 퍼뜨리며 명상을
돕고 있다. –일반 방문객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오로빌은 세계의 축소판 같다고 한다. 동서의 분리, 남북의 격차, 모든 종류의 종교적 문화적 배경,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남녀노소가 모두 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어떤 사람은 게으르다. 생활에서도 선호도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이모든 사람들이 지닌 한가지 공통점은 모두가 오로빌이라는 이 뜨거운 도가니로 자발적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차이점을 상대방을 바꾸는 대신에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풀어나감으로써 인류의 다양성 속에 일체성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도록
애쓴다.
종교와 사상의 용광로에서 자라난 오로빌 공동체에서 한국의 시민운동가들은 공동체적 지향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다름과 차이의 이해. 사람과 사람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나’의 탐구, 버림으로써 찾는 나눔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글,사진 : 서울환경연합 환경정책팀 김영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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