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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온다더니 날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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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궁금했다. 부안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 노란포스터
속의 주인공, “꼭 히야혀”라는 구수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남기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 누굴까? 부안에 있는 동안
그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포스터가 대히트를 쳤으니 부안사람 다 알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다들 고개를
갸우뚱! 아니면 그저, “아! 꼭히야혀 할머니!”라며 반가워 할 뿐이다.
수소문 끝에 결국 알아냈다. 지금은 부안읍 향교마을에 살고 있고 지난 7개월동안 촛불집회다, 반핵집회다 매일같이 참여했던 고집스런
할머니. 드디어 황금순(82)할머니를 찾았다.

2월 14일. 부안군 전체가 주민투표로 들썩였던 이날 아침,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여브시오~”
“저…황금순 할머님 댁이죠?”
“에~”

신비 속의 할머니를 찾았다는 기쁨에 목이 메이고, 한시라도 빨리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투표하셨어요?”
“아이..아직 안혔는디…내 밥 챙겨먹고 갈라했네”

다급히 할머니가 투표할 부안중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투표장으로 들어서서 여기저기 황금순
할머니를 찾았다. 포스터 속의 모습에 기대여 찾으려니 금방 눈에 띄지 않았다. 일렬로 늘어서 있는 주민들 사이에 구부러진 허리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보였다.

“혹시 황금순 할머님이세요? 제가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으이…나여”

▲ 2월14일 부안읍제3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는 황금순 할머니(82). ⓒ조한혜진

주민등록증과 도장, 투표인번호가 적혀있는 종이를 꼭 쥔 채 진지한 표정으로 다른 이들이
투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에게 차례가 다가왔다. 황금순 할머니는 투표인 명부를 확인하고 도장을 찍고,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소 안으로 들어가 투표를 했다. 밖으로 나와 투표함 앞에 섰다. 반으로 접힌 투표용지를 든 할머니의 손이 떨렸다. 할머니는
재빨리 조그만 투표함 구멍속으로 투표지를 넣었다.“꼭히야혀”라고 하던 황금순 할머니도 소중한 주민투표의 한 표를 던지는 순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투표장을 나와 할머니 집으로 함께 따라 나섰다. 황금순 할머니는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투표하러 가는
길이여?”“잘 하고 와”라고 말을 걸면서 하나하나씩 챙기셨다.

“그냥 힘을 실어주고 싶어,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 투표하는 사람들 보니깐 기분이 좋아.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니깐.”

황금순 할머니에게 이번 주민투표의 의미는 남다르다. 200여일동안 촛불집회를 꼬박 나가도 정부가 부안 주민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뚜렷한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주민투표가 부안 주민들의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주변 사람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집 대문마다, 골목길 벽, 상가 창문, 게시판마다 붙어있는 노란 포스터.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이하 부안대책위)에서
주민투표 홍보차 만든 포스터였다. 추운 겨울날 눈이 와도 반핵민주광장을 지켰던 황금순 할머니가 노란 반핵 옷을 입고 활짝 웃는
얼굴로 “꼭 투표히야혀”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부안 사람들은 이 포스터를 보고 부안의 끈기와 열정, 그리고 무언가 모를
구수한 향수를 느꼈다고 한다. 포스터의 주인공인 할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뭘….사진 찍는다고 하니깐 갔지…얼마 전 부안에 눈이 많이 왔자녀, 그때 찍은
거여. 딸이 찬성하는 사람이 뭐라 그러면 어쩔라고 그랬냐면서 뭐라 하더만. 그래도 좋아. 그거 보고 사람들이 투표할 마음 생기면.”

그랬다. 할머니의 정겨운 사투리와 웃음에 사람들은 마음을 뺐겼다.

“투표하고 나니깐 기분은 좋은데 어떻게 될랑가 모르겠네…우리가 이겨야 하는데…묵주할
때마다(할머니는 20년전부터 성당에 다니신다) ‘핵폐기장 백지화 이뤄야혀, 이뤄야혀’하면서 기도했어. 이 늙은 사람 얼마나 산다고,
난 죽으면 그만이지만 생생한 새끼들은 살려야지. 내 고향인데 이 좋은 땅을 두고 그 위험한 물건을 두려고 해. 핵폐기장은 부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어디에도 안되지.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부안만 살 수 있겠나.”

할머니가 핵폐기장 유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면서 명확했다. 후손들에게 깨끗한 땅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 그뿐이었다.

▲ 하얀이를 내보이며 웃는 모습이 정겨운 황금순 할머니.ⓒ조한혜진

“처음에 핵폐기장이라는 말 들었을 때 그냥 그
촛불시위 한번 나가봐야지 하고 나갔어. 가서 사람들 이야기하는 것 들으면서 핵폐기장 만드는 거 반대하기 시작했지. 처음부터 반대한
것은 아니여. 그 군인(할머니가 경찰을 일컬은 말)들이 방패로 찍고 막으니깐 ‘아 군수편인갑다’하면서 반대편을 들었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어. 군수 그 사람, 나올때는 손톱만한 사탕 가지고 와서 ‘할머니 부탁합니다.’찍어달라고 했던 사람이여. 그 사탕
받았지. 2년을 그러고 다녔어. 불쌍해서 뽑아줬더니 부안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손가락끊어서 그사람한테 갖다줘야 한다니깐…사람들
다 그리 말해, 얼마나 괴로워 그러니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고, 병신 낳고 그게 뭐가 좋아”

군수의 비민주적인 유치신청과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에 황금순 할머니는 격앙돼 말을 이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폭력적인 경찰과
부딪친 일도 생생히 기억한다.

“징그라, 생각만 해도 징그라…군인들이랑 싸움도 많이 했네, 못 가게 딱 막으니깐
내 땅인데 못 밟게 하니깐 화가 나지. 머리 맞대고 막 뚫고 들어갔어. 누가 불법이여 아무것도 없는 부안 주민 때리는 군인들이
불법이지 안그런가?”

황금순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부터 매일같이 촛불집회에 나갔다. 무릎이 아파 잘 걷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는데도 촛불집회만큼은 꼬박
갔다왔다.

“일찍이 나갔어. 앞에 앉을려구. 비도 많이 맞았고 겨울에는 추워서 오돌오돌 떨기도 많이
했지. 어떤 사람은 춥다고 가는데 나는 끝나야 가…왜 그런가 몰라, 이상혀 사람들은 가자고 하는데 난 안가…(웃음).
다리 아프지만 그냥 가고잡어. 내가 가야지 소식도 듣고 그러지. 여기 있으면 아무것도 모르잖여. 그리고 우리는 앉았다가 이야기
듣고 가면 끝이지만 그 사람들은(대책위사람들) 얼매나 고생하겄냐. 날마다 고생하는 거 안쓰럽잖여. 젊은 사람들이 자기만 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사람 살리려고 욕보는디. 그래서 간거여.”

16살에 시집와 65년 이상을 부안읍 향교마을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부안집은 소중한
보금자리이다. 목수일을 하고 있는 사위가 허름한 집을 구석구석 고쳐주었고 딸이 전기장판에 보일러도 놓아주었다. 집앞 대문에 ‘핵없는
세상’‘주민투표합시다’라는 문구의 스티커가 붙어있을 뿐 앞마당도 부엌도 방안도 지난해 7월 예전 그대로이다.

“오늘 비온다더니 날만 좋네”
황금순 할머니 집으로 내리는 이른 봄햇살이 환하다. 지난 기억에 비를 몇차례 맞으며 어려운 반핵운동해왔던 할머니에게 이 따뜻한
햇살이 그립고 반갑다.
황금순 할머니는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아름다운 땅 부안에 핵폐기장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글,사진/사이버기자 조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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