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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부안에 사는 것이, 부안군민이 자랑스럽다”







부안 수협앞 천막에서 19일부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원불교 김인경 교무를 찾아 지금의 심경을 들어보았다.



김 교무는 핵폐기장을 막아낼수 있다면 이 한몸 희생해서라도 막아낼수만 있다면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면서 부안군민의 아픔과 한을 제 대신 속죄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단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너무나 아픈가슴을 어떻게 할수 없어서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단식 투쟁에 나섰습니다. 부안군민 반드시
핵폐기장 막아낼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꼭 막아내야합니다.”



‘부안지역 현안 해결위한 공동협의회’ 대책위측 인사로 참여한 김교무에게 대화기구 결렬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았다.



“정말 뭐라 그 참담함을 표현할 수 없었죠. 그러나 대화에 나서는 우리들의 자세는 당당했습니다. 정부가 부안의
핵폐기장 백지화를 찾을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대화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의없는 그러한 답을
가지고 나왔기때문에 더 이상 정부에 기대도 할 수가 없는 그러한 마음이였습니다.”



이번 대화결렬에 좌절하지 않고 “정의를 반드시 구현하는 이 부안군민의 마음들이 조금씩 조금씩 퍼져가서 탁한 샘물을
한방울의흐르는 물이 맑게 정화하듯이 부안군민의 마음이 이 나라의 정책을 바꿀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고
말한다.



정말 부안군민의 가슴을 들여다보면 억울함과 분노와 한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많은 시민단체가 합류를 하고 또 전북지역
사회단체도 움직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안군민에게 힘을 실어주기위해 연대를 하기위해서 모일 것”이라며 꼭 막아내겠다고
다짐한다.





-추위에 단식까지 힘드실텐요?



“부안군민 사람중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분들은 촛불시위에 나와서 십리길 이십리길 털모자를 쓰고
차가운 아스팔트위에서 할머니 할아버니 또 부안군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저는 제 고생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안투쟁을 어떻게 보시나요?



“저희들이 핵폐기장 막아내는 일은 우리들의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미래세대를 위해 이땅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 우주의 모든생명을 모듬아 안고 생명을 사랑하고 잉태할수 있는 가장
근본저인 마음이 우리들의 핵폐기장 백지화의 근본적인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많은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근본적인 마음들을 잊지 않고 우리모두가 모듬아
않을 때 우리 부안공동체가 영원히 승리하고 잘 살수 있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부가 국민을 그동안 강압적으로 억눌림으로 정책을 시행해 왔지만 이제는 국민들의 힘에서 정책을 바꾸고
정책을 세우고 하는 시대가 참으로 민주주의 시대가 이 부안에서부터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많은
분들이 저희와 연대를 함으로써 정부가 압박을 받고 해결해 나가야하는 것을 빨리 느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부안 핵폐기장 투쟁에서 종교인의 역할이 큰데 군민들의 요구와 종교인의 갈등은 없었는지 ?



“저는 총리를 만나서도 대화기구를 가서도 부안군민의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다른데서 보기 어려운 4대종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함께 성직이 모여서 부안군민들과 함께 해 나가는 보기가 아주 좋은 현상이였습니다.



그러는데 백여일이 넘게 촛불집회를 하고 한달이 넘게 대화를 기다렸어도 정부에서는 성의없는 답변만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군민들의 마음이 이제는 분노로 표출되고 농기구를 들고 삼지창을 들고 그렇게 나온다는 그러한 민란의 수준까지
가게 되는 것을 촛불집회를 통해 평화적으로 나가자는 완충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희들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고 또 정부가 그런 것들을 빨리알아서 빨리 해결을 해줬으면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촉구를 했지만 정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가장 즐거웠을때는 ?



“날마다 즐겁습니다. 저는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지리라 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거던요. 반드시 승리하리라하는
확신을 가지고 투쟁해 왔는데 가장 기뻐었던 일은 해상시위를 하면서 깃발을 펄럭이는 배를 타고 위도에 들어갔을때
그리고 고속도로를 점거했을때도 기뻤구요 평택에가서 우리 주민들이 풀려날때 그 암흑속에서도 기다리는
주차장에서 한분한분 끌어 안을때 기뻤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쁩니다.”



“침통하고 슬프고 하는 마음보다는 기쁜마음으로 이맘으로 가질때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때 승리를 가져올수 있듯이
서럽고 억울한 분노가 내 가슴에 가득찬다 할지라도 기쁜마음으로 우리 투쟁에 함께 하십시다.”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



“서울에 가서 우리 학생들이 종묘에서 파고다 공원까지 시위를 했습니다. 근데 경찰들이 바리케이트 쳐 버렸어요.
우리 초중고생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노래를 부를때 누가 저 어린학생들에게 저런 투쟁의 열기를 심어줬는가? 하는
그런 마음이 저는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일을 생각한다면 눈물이나고 가슴이 찡하고
저려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즐거웠던 일 어려웠던 일 고난의 일 정말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함께 웃을 수 있는
회생할 수 있는 그러한 시기는 꼭 오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씀은?



“부안군민여러분. 정말 우리가 어떻게 이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더 지혜와 더 슬기로운 총명을
지혜를 연구해 내서 우리 함께 투쟁해 나갑시다. 우리 서로 서로 이해하는 마음으로 투쟁을 함께 끝가지 함께 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부안에 사는것을 자랑하고 부안군민을 자랑하고 어느 누구가 이야기를 하더라도 우리 부안군민이 똘똘뭉쳐 하기때문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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