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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과 부안의 분노, 그리고 참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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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참, 답답한 세상이다. 뭔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전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말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이 빠져나가지 못할 함정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애써 막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런 자들이 막강한 힘과 엄청난
돈을 가지고 이 사회의 ‘실세’로 행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부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그 생생한 증거이다. 2003년 7월 22일, 부안읍 부안수협 앞에서 ‘핵반대·군수퇴진
부안군민 1만인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당연하게도 거리시위로 이어졌으며, 경찰의 강력한 진압과정에서 수십명의 시민들이
부상을 입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부안군민들은 이렇게 분노하게 되었는가? 그들은 단순한 ‘폭도’인가, 아니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2003년 7월 15일, 정부는 17년간 끌어온
핵폐기장 선정작업을 마침내 끝낼 수 있게 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정부는 ‘자치단체의 자발적인 지원’을 받아 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전국에서 오직 부안군만이 신청을 했고, 그 결과 부안군의 위도가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신청과 선정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가?

산업자원부와 (주)한국수력원자력은 가능한 한 ‘주민의 동의’라는 모양을 갖추기 위해 애썼다. 오죽하면 ‘주민투표’로 정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겠는가? 물론 이 계획의 뒤에서는 엄청난 돈을 지역에 투자하겠다는 사실상의 ‘매수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매수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예컨대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위도에서는 엄청난 보상금에 대한 기대에 부푼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위도를 포함하고 있는 부안군 전체로 보자면, 이 ‘매수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 생생한
예가 바로 이번의 ‘1만인 궐기대회’이다.

정부가 내건 ‘자치단체의 자발적인 지원’은 사실상 ‘자치단체장의 자발적인 지원’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핵폐기장의 절대적인 위험과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의 근원적인 반민주성이 해결되지 않은 한, 전국의 어디에서고 ‘자치단체의 자발적인 지원’은 ‘자치단체장의
자발적인 지원’에 그치고 말 것이다. 현 정부가 정말로 참여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참여정부’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정말로 올바른 정책을 추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17년이나 끌어온 국가적 사안을 이제는 해결해야 하겠다며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정책이다.

첫째, 핵 정책의 완전한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 핵과 관련된 모든 시설은 ‘절대적인 위험시설’이다. 그러므로 핵과 관련된
모든 시설에 시민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이 나라의 핵 정책은 너무도 반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절대적인 위험’에 대한 정당한 우려와 반발은 흔히 터무니없는 ‘지역이기주의’로 매도된다. 반면에 엄청난 돈을 써가며
핵 정책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강요하며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집단의 ‘조직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핵 정책은 사실상 밀실에서 결정되고 있으며, 이렇게 결정된 정책은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공공성의 논리로 지역주민들에게 강요되고 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자 ‘지역개발 투자’라는 떡고물을
던져주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반민주적 성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더욱 교활해졌을 뿐이다.

둘째, 핵 정책의 근원적인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핵 발전은 ‘절대적인 위험’에 바탕을 둔 ‘위험사회’를 만들어낸다.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속할 수도 없다. 핵 발전소의 수명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멋지게 지은 핵 발전소라고
해도 30년만 지나면 거대한 영구 핵 폐기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핵 발전소의 연료인 우라늄 자체가 앞으로 50년에서
100년 정도만 지나면 고갈되고 만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회라면, 핵 정책은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핵 발전에 쏟아붓는 돈을
영속적으로 순환할 수 있는 에너지의 생산에 써야 옳다. 핵 발전은 자연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발전정책일 뿐더러 시민을 위한
발전정책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핵 산업을 위한 발전정책일 뿐이다. 핵 산업은 이 나라를 백척간두의 위험으로 몰아넣는 댓가로
배를 불리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지 않고 어떻게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핵 대국’이 된 까닭은 박정희의 맹목적인 고도성장정책 때문이다. 박정희는 자연파괴형 고도성장을 이루기 위해 핵 발전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가장 빠르게 가장 커다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핵 폭탄을 소유하려는 박정희의 무모한 군사적 야욕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보존형 경제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당연하게도 핵 정책의 근원적인 전환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핵 발전소의 폐기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는 핵 폐기장을 짓겠다고 17년째 아우성이다. 그것은 더 많은 핵 발전소를 짓겠다는
것과 같다.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 발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이제까지의 핵 정책을 밀어붙이는 한, 노무현은 ‘박정희의 자식’일 뿐이다. 이제까지의 핵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핵 발전의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자연파괴형 경제의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러므로 결국
시대의 흐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상태로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세가지 과제를 이루어야 한다.

첫째, 핵 폐기장 건설을 막아야 한다. 핵 폐기장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위험시설’이다. 그리고 그것은 핵 발전의 확장을 뜻한다는
점에서 더욱 더 위험한 시설이다. 핵 폐기장은 건설되어서는 안 되는 시설이다. 영구폐기되는 핵 발전소가 핵 폐기장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핵 산업의 해체를 추구해야 한다. 사실상 전국민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낡은 핵 정책이 추구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거대한
핵 산업 때문이다. 한 기의 핵 발전소를 짓는 데 2조원 정도의 돈이 들어간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먹는 자들이 이 나라의 발전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째, 태양광 발전에 중심을 둔 순환에너지체계를 이루어야 한다. 이 과제는 핵 산업의 해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전기가
모자라는 데 우리는 자원이 없어서 핵 발전을 해야 한다거나, 순환에너지는 비현실적이어서 핵 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핵
산업, 아니 ‘핵 마피아’가 혹세무민하기 위해 꾸며대는 말일 뿐이다.

우리의 핵 발전정책은 철저히 중앙집중적이며 대단히 반민주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참여정부가 내건 민주주의의 심화와 지방분권의
실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서도 우리의 핵 발전정책은 근원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부안의 ‘1만인 궐기대회’는 참여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더 이상 지역사회를 파괴하지 마라. 더 이상 지역주민의 희생을 강요하지 마라.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재생가능한 발전정책을 세우라. 그렇게 해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크게 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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