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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핵폐기장 논란싸인 위도(蝟島)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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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핵폐기장 논란 속 위도를 가다





지난 25일부터 26일까지 부안 위도 핵폐기장 부지 확정 반대 시위를 취재한
시민의신문 ngotimes 기자 일행이 26일 위도에 직접 들어가 현지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어봤다. 때마침
위도를 순시한 장관 일행과 주민들의 대화 현장도 생생히 포착할 수 있었다. 원고지 64매와 사진으로 위도 르포를
담았다.






취재 = 김세옥 기자 kso@ngotimes.net

사진 = 양계탁 기자 gaetak@ngotimes.net

편집 = 이준희 기자







# 고슴도치 닮은 아름다운 섬 – 위도





고슴도치의 모양새를 닮아 위도(蝟島)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섬의 면적이 불과 11.14㎢에 불과해 자가용으로 섬 한바퀴를
도는데 2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지금과 같이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았던 아주 먼 조상들이 시작한 풍어기원제인 띠뱃놀이 축제로
매해 2월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평화롭고 아늑한 그런 섬이 바로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위도이다.














핵폐기물을 실은 선박의 접안시설이 예정된 위도 깊은물 해수욕장 전경. 양계탁 기자 gaetak@ngotimes.net





지난 93년 10월 서해 페리호 사건 때를 제외하고는 여름 피서철에 감성돔, 놀래미, 도다리 등을 노리는 낚시꾼들과 조용한 휴가를
원하는 나들이객 입에서나 오르내렸던 이 섬이 올해 7월 또 다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위도의 원전수거물관리센터(원전센터)
유치 결정을 두고 부안군민과 환경단체의 잇따른 반발 시위와 유치 당사자인 위도 주민들에 대한 직접 보상 등을 둘러싼 의혹과 갈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2일 핵폐기장 백지화 부안군민대회장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폭력으로 시위대와 경찰 다수가 중상을 입었으며 많은 이들이 구속되고
수배상태에 처했다. ‘새우젓폭탄’, ‘다시 시작된 유신시대’ 등 더 이상의 과격한 표현이 어려울 만큼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4일 산업자원부가 위도를 원전센터 부지로 최종 선정한 직후 많은 언론은 위도 주민 90%이상이 산자부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사자인 섬 주민들은 섬 발전, 직접 보상 등을 이유로 찬성하고 있으며 인근 내륙 지역 사람들이 핵 폐기장의 불확실한
안전과 생존권 위협 등을 이유로 격렬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25일 기자 일행은 ‘위도 핵폐기장 부지 확정 무효 및 노무현 정권퇴진 부안 군민 결의대회’취재를 위해 부안으로 내려갔다. 이날
대회에서 만난 군민들과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위도 주민 90%가 산자부의 결정을 환영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위도 주민들의 입장 확인이었다. 때마침 26일 윤진식 산자부 장관, 김두관 행자부 장관 등이 원전센터 유치와 관련
공무원 교육을 위해 부안을 방문한 뒤 위도로 이동,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 장면 2. 격포 선착장

주민들, 경찰폭력에 항의 “화장실 사용 말라”





26일 아침 7시 40분, 부안에서 위도로 가기 위해선 격포를 거쳐야 했다. 격포에 있는 선착장에 매시 30분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위도행 배가 있기 때문이다.



‘핵 쓰레기장 유치반대’, ‘핵 종규가 핵 사탕을 나눠줬다’ 등 반핵 관련 현수막이 즐비한 도로를 20여분 정도 달렸을
때 새만금 공사를 반대하며 미술가 최병수씨가 세워둔 솟대, 장승 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해창 갯벌이 시야에 들어왔다. 새만금부터
원전센터까지 ‘올 상반기 전북 부안은 편한 날이 거의 없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해창갯벌을 지나 10여 분 더 달리니 격포 선착장에 도착했다. 8시 20분, 부슬비가 흩날리는 아침임에도 몇몇 주민들이 ‘핵 없는
세상’, ‘핵폐기장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두르고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위를 준비하는 주민들과 더불어 이색적인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악명높은 폭력진압으로 유명한 서울경찰청 1기동대
대원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관들의 위도 방문 때문인지 평화로운 아침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장 경찰들이 배를 기다리며
일렬로 선착장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몇몇 취재진들과 관광객, 그리고 대거 투입되는 경찰로 인해 8시 30분 위도행 배는
만원이었다.



1시간 가량 남는 시간을 이용, 컵 라면으로 아침을 대신한 후 선착장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한 쪽에서는 경찰들과 격포 주민들 사이의
작은 실랑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배에 타기 전 몇몇 경찰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겠다고 나서자 주민들이 “이놈(경찰)들은 화장실 이용할
가치도 없다”며 화장실 문을 잠궈 버리자고 한 것이다. 최근 부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핵폐기장 반대 시위에서 보여진 경찰의
과잉 진압 등에 대한 주민들의 성난 민심이 화장실이라는 생리적 욕구를 억압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울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시위에서 종종 등장하는 화장실 투쟁이 떠올랐다. 기습 시위 등을 우려, 인근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시위대의 발길까지도 묶어두려는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선 ‘절대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 ‘화장실에 못 갈
이유가 뭐냐’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이 곳에선 순박할 것만 같은 바다마을 주민들이 화장실 주도권의 강자로 새롭게 부상했다. 맨 손의 지역 주민들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경찰에게 맞선 ‘화장실 사용 권리 박탈’이라는 비장의 카드는 언뜻 유치하지만 절박한 심정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다.



9시 30분, 드디어 위도행 배에 올랐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멈추고 바다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갑판으로 올라갔다. 앞서
갑판으로 오르던 사람들의 발길이 일순 멈춰진다. 객실 마루 바닥에서 얼굴을 맞대고 똑바르게 앉아 있는 경찰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군대 내무반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갑판으로 나와보니 뱃머리와 꼬리에도 경찰들이 속칭 ‘각을 잡고’ 앉아 있었다.












3개중대 병력이 갑판 이곳 저곳에 앉아 위도로 향하고 있다.양계탁기자 gaetak@ngotimes.net






경찰 관계자에게 ‘몇 명이나 배에 탔냐’고 묻자 ‘정확한 수를 모르겠다’는 애매한 대답을 남기고 사라졌다. 어림잡아도 3백명은 넘어
보였다. 이 많은 경찰들이 갑판을 가득 메우고 있어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지장을 받는다. 지휘자로 보이는 한 경찰이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고 명령한다.



짧막한 대답과 함께 경찰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갑판을 돌아다니던 이들은 어느샌가 다시 모여 사진을 찍는다. 격렬한 시위 현장에서는
시위대의 적이지만 바다 앞에선 이들도 그냥 20대 초,중반의 청년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40여분이 지났을까? 어슴푸레한
바다 저쪽에 섬이 보인다. 위도였다.










위도에 도착한 전경들이 1톤 화물차를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 양계탁기자 gaetak@ngotimes.net




# 장면 3. 위도 파장금 선착장

“직접 보상 없을 시 새우젓시위보다 더한 시위 벌일 것”





10시 20분께 위도 파장금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 왼편에는 작은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 인근에서 위도 지역 어부로
짐작되는 10여 명의 남성들이 실버스타호에서 내리는 경찰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둘 셋씩 모여 앉아 있었다.








한가로이 뱃전에 걸터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부들.양계탁기자 gaetak@ngotimes.net





“멸치잡이를 하는데 예전보다 어획량도 적고 수입산이 많아져 가격까지 별 볼일 없어졌다”며 “선주들은 배도 제대로 띄워보지 못한 채
다 죽다시피 살아가고 있다”고 신 모씨(38·어부)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예전에는 멸치 한 포(2kg)당 적어도 2만원은 받았는데
이제는 2∼3천원 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내가 핵 폐기장 유치에 찬성은 했지만 그게 들어서면 이제 위도에서 잡은 멸치, 새우 등을 도시의 어떤 사람들이 먹으려 들겠냐”며
“핵 폐기장이 필요하다고는 하면서 (폐기장이)있는 지역의 것은 기피하는 도시인들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섭섭한 심정을
전한다.



“직접 보상이 돼야제, 공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이 경관 좋은 위도에 들여다 놓고 안 그래도 어려운 섬사람 생활이 더 어려워질
것이 빤한데 설마 나라에서 돈을 안 주겠어야?”라며 섬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3∼5억 상당의 직접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6백50여
가구가 모여사는 위도에 3천억 상당의 지역개발기금이 지원, 가구 수대로 나눠 보상을 받는다면 3∼5억 원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 당부를 하며 말을 꺼낸 한 남성(39)은 핵 폐기장 유치에 대한 중립 입장을 지켰다고 말한다. 그는
주민들이 핵 폐기장 유치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개의 이유들이 있었다고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영광의 원자력 발전소가 보일 정도로 위도랑 가깝죠. 아무래도 원전이랑 가까워서 위도에도 알게 모르게
피해가 있는데도 우리는 부안군 소속이라 단 한푼의 보상도 받지 못했어요. 그렇게 경제적으로 계속 어려워지면서 대부분의 가계가 부채
1∼3억 정도는 지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 날 한수원 산하기관의 직원들이 우리한테 접근을 해서 ‘핵 폐기장을 유치하면 3천억 정도가
위도에 지원된다. 이 돈을 가구 수대로 나누면 집집마다 5억 원 정도를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보상을 받아 부채를 갚거나 아니면 (핵 폐기장 때문에) 어차피 이쪽에서 사는 게 힘들어진다면 그 돈을 밑천으로
도시로 나가겠다는 계획 같은 것을 세웠죠.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직접 보상이 힘들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됐는데
아직도 노인분들은 상당은 현금 보상이 가능할 것이라 믿고 있는 상태예요.”



결국 5억 원 직접 보상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과 부안 전역을 들썩이는 시위는
직접 보상에 대한 이들의 기대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불안하죠. 90% 넘는 사람들이 직접 보상에 대한 희망 때문에 핵 쓰레기장을 우리 섬에 들여놓을 결정을 내렸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시설이 들어섰다 해서 직접 보상을 받은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설사 특별법이 만들어져 보상을 지원하고자 해도 원전이 들어선
다른 지역에서 반발이 있을테니 사실상 직접 보상은 거의 가능성이 없다는 소리도 들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지금까지는 직접 보상의 사례가 없었다 해도 국가 차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혐오시설을 들여놔 주는데 어느 정도의 보상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직 남아있어요. 만약 직접 보상이 안된다는 정부의 공식적 발표가 있게 되면 얼마 전 부안에 벌어진 새우젓
폭탄, 그런 것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반발이 있을 거예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는 거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섬사람들이 착하고 순하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육지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진다”며 “도끼라도 휘두르지 않겠냐”고 말하면서도 그런 막다른 상황에는 도달하지 않길 바라며
한숨 섞인 웃음을 내지었다.



어민들의 말에 따르면 핵 폐기장 유치 결정에 앞서 주민들은 대덕연구단지 등에 들러 핵 폐기장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어떤
설명이었냐는 질문에 “핵 폐기장 유치를 하고 나면 마을이 발전한다는 홍보와 장갑 하나를 들어 보이며 ‘이런 것들이 뭐가 위험하냐.
이걸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로 막는 것뿐이니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 등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핵 폐기장으로
나올 쓰레기가 정말 공업용 장갑뿐일까? 그 말을 전하는 어민도 그 말을 듣고 있는 기자도 힘없는 웃음밖에 보일 것이 없었다.



그는 “지금 위도에서는 직접 보상의 불투명성 때문에 고민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이 많지만 너무 쉽게 찬성을 했기 때문에 지금
심정을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라고 전했다.



“서울서 한 20년 살다가 고향에서 살고 싶어서 다시 왔는데 핵 폐기장 유치라니….이 곳에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암담할
뿐이다”라며 “폐기장이 들어서고 위도가 죽어 가는데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주민들이 또 다시 피해의식, 소외감을 느끼게 될텐데
정부에서 주민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며 가슴속의 소망을 조심스레 전하며 그는 몸을 돌렸다.





# 장면 4. ‘형님, 아우 사이’ 주민들의 핵폐기장 찬반

“3억 정도는 직접 보상해 줘야”





기자와 몇몇 어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처음에는 얘기를 꺼려하던 사람들도 한 두 마디씩 거들기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각기
찬성,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각각의 입장에서 말을 꺼내면서도 큰 갈등은 없어 보였다. 찬성파들은 반대파의 입장을
이해하고 반대파 역시 찬성파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 했다.




폐기장 유치 찬성 입장에 서 있다는 김 모씨(40)는 “핵 폐기장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영광원전이 멀지
않은데 그 곳에서 잡은 고기를 먹고 그렇게 지금까지 지냈어도 이상을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김씨는 “관리만 잘하면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도 위험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들이 좀
나이가 들어 여기에 사는걸 불안히 여기게 되면 섬을 떠날 기반이 필요하니 힘들게 유치 결정을 내린 주민들에게 직접
보상은 꼭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신 모씨(38)는 “성님, 지금 당장은 몰라도 핵 폐기장이 왜 안 위험하겄소?”라며 “우리보다 기술이 더 좋은
외국에도 원전 사고 나서 기형아가 나오고 그러지 않았소?”하며 손사래를 친다. 신 모씨도 “주민들의 결정이 찬성 쪽으로 난 이상
위험한 것을 섬에 들여놓는 것이니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3억 정도는 직접 보상이 돼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핵 폐기장이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데 예전보다 서먹해지거나 갈등이 있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고 학교도 같이 다닌 친구나 동네 성님, 동생 관계인만큼 서로 사정을 빤히 알아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조심스럽게 이름을 묻는 기자에게 “성님 이름은 김○○고 내 이름은 그냥 모른 채로 있소”라며 도망가는 신 씨를
보며 김 씨는 “난 ○○○(직업)이라 이름 나가면 안돼라”며 김씨의 이름을 슬쩍 말해주며 장난 섞인 시원한 웃음을 건넨다.





# 장면 5. 치도리에서 만난 할머니들

“우리 아들이 찬성하라고 하더라구. 나라에서 설마 나쁜 일 하겠어?”





파장금에서 5분 정도 차를 몰고 가니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치도에 도착했다. 치도 입구에 마련된 마을 정자에는 5∼6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방금 캐온 바지락을 다듬고 있었다. 분주히 손을 놀리던 할머니들은 ‘요즘 들어 부쩍 외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기자
일행에게 경계의 빛을 내비쳤다.












핵 폐기장에 대한 질문을 조심스레 꺼내 보지만 할머니는 기자의 손을 꼭 쥐며 “여긴 햇빛이 많네. 더운데 저기 그늘에 앉아서 좀
쉬어”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한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바지락을 다듬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연신 찍으면서 “할머니, 여기 좀 보세요”, “할머니 사진입니다”라며 할머니
모습이 담긴 액정 화면을 보여주는 등 친근하게 대하니 할머니들의 경계심도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손사래를 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카메라를
보며 웃어 보이기도 하고 한 할머니는 “아직까지 사진 한 번 찍어보지 못했다”며 “내 사진도 좀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다시 한 번 핵 폐기장에 대한 질문을 꺼내 본다. “나라에서 하는 건데 설마 우릴 속이기야 하겠어? 보상도 해준다고들 하고. 난
나라를 믿어”라고 답하는 서씨 할머니(72).



“며칠 전인가 전주에서 놀러왔다는 공무원이 그러더라구. 폐기장이 안전하다고 말이야. 또 우리 아들도 ‘어머니, 찬성하고 보상받으세요’
하더라구. 우리 아들은 서울서 대학 나왔어. 보상금 받고 적금도 들고 그래놔야 나중에 내가 몸이 안 좋아져서 아들한테 의지할 때
며느리가 좀 잘해 줄 거 아니야. 물론 우리 애들은 착하지만 말야. 보상 안된다는 소리도 있는데 정부에서 설마 안 해줄라구. 안
그럼 여기 (핵 폐기장은) 절대 못 들어오지.”



아들도 권하고 돈이 있어야 나중에라도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지 않겠냐는 서씨 할머니는 불안한 소문들이 있어도 애써 정부를 믿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 했다.





# 장면 6 – 파장금 유치위 사무실, 위원장은 기자를 밀어내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핵폐기장을 유치하는거다(?)”





섬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정오가 넘었다. 오후 2시 윤진식 산자부 장관과 김두관 행자부 장관이 진리 쪽 관정이
뚫린 자리에서 핵 폐기장과 관련해 한수원 사장의 브리핑을 듣고 주민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도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전에 점심
식사라도 해둬야겠다 싶어 인근 식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위도 치도리 일대의 관정. 식수를 위해 뚫은 놓은 지하 관정이 40여 개 가까이 된다. 양계탁
기자 gaetak@ngotimes.net






그때 부안에 있는 핵폐기장 반대 대책위 관계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핵 폐기장과 관련한 부안 공무원 교육을 위해 부안을 찾은 산자부,
행자부 장관이 시위대에 의해 군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장관들의 일정을 위해 경찰이 시위행렬을
무리하게 진압해 문규현 신부를 포함한 시위대 10여명이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연행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날 장관들은 ▲양성자 가속기 사업 유치 ▲한국수력, 원자력㈜ 본사 이전 ▲3천억원 지역개발기금 지원 ▲바다목장사업 유치
▲전북대 분교 설치 ▲국립공원 지역 해제 등은 약속을 했으나 위도 주민들 최고의 관심사인 직접 보상은 명확하게 약속하지 않았다.



점심을 뒤로 미루고 핵 폐기장 유치위원회 사무소를 찾았다. 직접 보상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는 사실을 유치위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파장금으로 되돌아가 유치위 사무실을 찾았다. 유치위 사무실에는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기자를 보자마자 ‘똑바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는 할 말이 없다’며 기자들을 거칠게 내몰기 시작했다. 위원장도 없고 대답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도 했다. 기자를 무조건 몰아내려는 한 주민에게 ‘주민으로써 핵 폐기장에 대한 의견이 어떻냐’는 질문을 했지만 “대답하기
싫다”며 유치위 사무실 문 앞까지 밀어냈다.



“유치위 입장이 왜곡되어 나간다면 어떤 부분이 왜곡됐는지 말해달라”고 하자 몇 마디 대답을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핵
폐기장을 유치하려고 하는데 보상금을 노리고 그러는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유치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되묻자 “유치를
하면 골프장이나 문화 시설이 들어선다. 우리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유치하는 거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힘들다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냐, 문화 시설이 들어선다고 해서 생활이 힘든 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기자에게 대답을 하려는
주민의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주민이 “돈 얘길 꺼내려고 유도심문 하는 거다”라며 대답을 저지하고, 기자들을 다시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중에 산자부, 행자부 장관이 왔을 때 보니 기자들을 밀어낸 그 사람이 바로 정영복 유치위 위원장이었다.



계속해서 질문을 하려는 기자에게 한 주민이 다가와 명함을 달라고 한다. “내 명함을 주면 성함과 직함을 말해줄 수 있냐”고 묻자
자신을 ‘백은기 부위원장’이라고 말하며 명함을 요구했다. 명함을 건네려는 순간 전화를 받으러 백 부위원장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른 주민에게 몇 가지 더 질문을 하려자 정 위원장은 밖으로 나가는 한 주민을 가르키며 “저 사람이 위원장이니 따라가서 얘기하라”며
밀쳐냈다. 밖에서 확인한 결과 그 분은 식도에 사는 주민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만 돌아서려는 기자에게 누군가 고함을 내질렀다.
돌아보니 백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내 이름을 알아놓고 명함을 왜 안주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 그쪽에서 우리(기자들)를 내쫓지
않았냐고 대답하며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받고 돌아서는 백 부위원장의 머리 위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기자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주민들이
보였다.












장관들이 부안 군청을 빠져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2시 20분 경 장관들이 치도 관정에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다시 차를 몰아
치도로 돌아갔다. 장관들이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1중대원들이 10여 미터 간격으로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장관님들이
오시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지원을 나오게 됐다”고 말한다.





# 장면 7. 장관들과 주민들의 대화

윤진식 산자부 장관, 직접 보상 확답 못해





2시 22분, 관정이 있는 곳에서 한수원 직원들이 장관을 위한 브리핑 준비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 그 한수원 직원 40명은 오후
1시경 관정에 이미 도착해 있었고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냐”는 질문에 “놀러왔을 뿐”이라며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다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었다. 한 직원은 나머지 직원들에게 관정을 가리키며 “산자부 장관께서 이 자리를 보시곤 명당이라 감탄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깊은금 해수욕장 방면에서 경찰차를 앞세우고 차량 9대가 관정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경찰과 방송 카메라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니 윤진식
산자부 장관과 김두관 행자부 장관, 강현욱 전북도지사, 김종규 부안 군수, 정동락 한수원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 사장은 이들
장관, 도지사, 군수 앞에서 사전에 준비된 ‘원전수거물관리센터 부지 위치도’와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사업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장관들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은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5분 정도 흘렀을까. 준비된 브리핑이 끝나고 이들은 치도리에 있는 유치위 사무실에서 준비된 주민들과의 대화에 참석키 위해 다시 차에
올라탔다.










치도리 관정 현장을 찾은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등 일행에게 정동락
한국수력원자려(주) 사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양계탁 기자 gaetak@ngotimes.net






유치위 사무실에는 5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있었다. 장관들을 박수로 환영한 이들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의 인사가 끝나자 가장 주된
관심사인 직접 보상에 대한 확답을 요구했다. 윤 장관은 “현행법상 직접 보상은 어렵지만 대통령께서도 여러분의 결단에 깊은 감사를
표시하고 계시니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여러분 노력에 최대한 부응하겠다”며 우회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윤 장관의 대답에 한 군의원은 “직접보상 확답이 없으면 우리도 결코 땅을 내어줄 수 없다”며 확답을 요구했지만 산자부 장관은 “지금은
확답할 수 없다.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요구들이 있었지만 산자부 장관은 노력하겠다는 말만 확실하게 전했다.



20여분동안 진행된 주민과의 대화가 끝나자 장관들은 바삐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유치위 사무실 인근에는 5∼6명의 할머니들이 “직접
보상을 안 해주면 절대 폐기장은 못 들어온다”, “너희들이 우리 위도를 팔아먹었다”며 떠나는 장관과 유치위 관계자에게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유치위 위원장에게 할머니들이 “우리는 절대 위도를 못내어준다”라고 언쟁하고 있다.양계탁기자 gaetak@ngotimes.net




유치위 관계자는 “우리가 할머니 집을 팔아먹었냐”, “누가 위도를 팔아먹었다고 하는 거냐”며 더한 삿대질과 고성으로 맞섰다.
주민들의 이런 싸움들을 뒤로 하고 장관들은 헬기를 타고 유유히 떠나갔다. 김종규 군수는 이런 장면을 지나치며 부안군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열심히 홍보하고 대화하겠다”는 막연한 대답만을 남기고 떠났다.





# 이틀간의 취재를 마치며 –



위도, 어디로 흘러가나

환경단체 운동가 “특별법 통한 직접 보상은 불가능”





하루 종일 위도를 돌아다닌 기자 일행은 위도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따가운 햇살아래 깊은금 해수욕장의 파도를 유유히 가르는
피서객과 도로를 지나는 중간 중간 풀숲에서 튀어나오던 꿩과 이름 모를 작은 새, 화려한 나비의 춤사위…위도는 한번쯤 쉬러 오고
싶은 아름다운 작은 낙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또 위도에는 어획량의 감소, 수입 농수산물 기승 등 여러 환경 속에서 경제적인 부담이 더해가는 상황에서 위험시설인 핵 폐기장을 유치해서라도
부채를 탕감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픈 바람을 가진 주민들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 주민들은 직접 보상이 안 되면 정부가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윤 산자부 장관은 현행 법상
직접 보상은 어렵다고 답하며 특별법 제정 등으로 기대 부응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만 수차례 반복했다.



윤 장관의 말처럼 ‘발전소주변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역지원금은 ‘주민소득증대사업’, ‘전기요금보조사업’, ‘주민복지지원사업’,
‘지자체 특별지원사업’, ‘기업유치 지원사업’, ‘홍보사업’ 등으로만 사용처가 한정되어 있어 주민들에 대한 직접 보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두관 행자부 장관(왼쪽), 윤진식 산자부 장관(가운데), 김종규 부안군수(오른쪽)





그렇다면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직접 보상이 가능해질까?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장은 “사실상 불가능한다”고 말한다. 지난 18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11개 부처 장관회의에서 ‘위도특별법’
추진 계획 발표 이후 현금 보상을 위한 법개정에 대한 위도 주민들의 희망이 커졌지만, 국무조정실 박종규 경제조정관이 회의 후 발표한
특별법의 목적은 ‘2조1천억원대의 부안군 지원사업을 신속히 시행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염 팀장은 “만약 특별법을 통해 위도 현금보상이 실시된다하면 다른 국책사업 피해자들 역시 항의하고 형평 보상을 주장할 것이며 이런
민원들로 국가 기능이 마비될 것”이라며 “이런 비상식적 법률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또 지역개발사업비 일부를 변통, 주민들에게 지원해주는 방법 역시 조달물자의 가격이 국가의 시행 법령에 모두 고시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 위도 주민에게 수억원씩 나눠주는 방식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평화로운 섬 위도에 들어설 예정인 핵폐기장으로 인해 지금 위도는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는 곳이
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직접 보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직접 보상의 꿈이 좌절되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기자가 본 위도 주민들은 희망만큼 커져가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도의 바다는
여전히 푸르르고 잔잔한 수면을 자랑하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김세옥 기자 ks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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