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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 부지선정, 이대로 좋은가?






기본을 지키지 않는 핵폐기장 부지선정 과정

◁ 시위중 경찰과의 대치로 부상을 입은 부안시민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추진하고
있는 핵폐기장 부지선정 사업이 지난 7월 14일에 전북 부안군 위도가 단독으로 ‘자율적 유치신청’을 함으로써 다시한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산자부측의 계획에 따르면 일주일간의 지질ㆍ해양환경 조사 후 최종부지를 선정ㆍ발표하고, 이후 8개월에 걸쳐 4계절 환경영향평가와 정밀 지질조사를
실시한 후 내년 봄부터 공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대해 핵폐기장백지화 부안군민대책위와 반핵국민행동 등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벌써부터 경찰과 지역주민들 간에 물리적 충돌 양상도 빚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상황들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은 자연스레 1990년의 안면도(安眠島)나 1995년의 굴업도(掘業島)를 떠올릴 것이다. 이번이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양성자가속기 사업 연계를 포함해 지원ㆍ투자액이 2조원까지 치솟았다는 것과 이를 미끼로 한 ‘자율’신청이라는 외피가 더해졌다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부지선정 과정은 산자부와 한수원이 이전의 경험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의
정책기구들이 핵폐기물 처리에서 실패를 겪은 후 최근 발간한 보고서들에서 내놓은 부지선정 과정의 원칙들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여전히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얘기다.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동료심사의 필요성

눈을 나라 밖으로 한번
돌려보자. 2001년 4월에 미국 국가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 산하의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Board on
Radioactive Waste Management)가 발간한 정책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정책결정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여러 제언들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핵폐기장 부지선정 문제에 있어 크게 두 가지 축에 기반해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반대중과 모든 것을 완전히 터놓고
논의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과학자들에 의한 동료심사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전자에는 일반대중, 특히 부지선정 예상지역의 주민들에게
핵폐기장에 관해 충분하고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해당 기관의 의사결정 구조를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하며, 정책결정 과정에 일반시민의 자문과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특히 핵폐기장에 대한 일반대중의 거부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능한 선택지들을 반드시 복수로 제공한 상태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하며, 이미 결정된 내용이라도 나중에 다시 되돌릴 수 있도록 정책과정을 단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는 핵관련 기구의 자체인력이 만들어낸 미발표 연구보고서에만 의존하지 말고 동료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이를 발표하려 노력하며,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외부의 독립 과학자들에 의해 검증받는 과정을 거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부지선정 예상지역 주민들은 핵폐기장에 관해 충분하고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받아야만 한다.
핵폐기장 부지로 최종 선정된 부안의
위도





낙제점에 가까운 정보제공과 홍보활동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부지선정 과정이 과연 한 가지라도 여기에 부합하는 내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충분하고
균형잡힌 정보’의 측면만 예로 들더라도 한수원과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유치 홍보활동은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이들이 만든 홍보자료는
현재 부지선정 과정에 있는 핵폐기장이 마치 중ㆍ저준위 폐기물만을 저장하기 위한 것인 양 오도할 우려가 매우 높으며,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선전되는 핵폐기장들이 중ㆍ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 중 어느 것을 보관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핵연료 재처리를 고려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용후 핵연료(spent nuclear fuel, SNF)’는
응당 고준위 폐기물에 포함되어야 하는데도, 우리나라에는 고준위 폐기물이 없다는 식의 말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2016년부터
해당 핵폐기장에 SNF의 ‘중간’저장을 예정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잦은 육로ㆍ해로 수송이 불가피함을 감안한다면, SNF를
(발전소 부지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 모아 관리하는 국가에는 어디어디가 있고 그곳에서는 SNF의 수송을 어떤 방식으로 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소상하게 알려주어 지역주민들의 판단에 참고하도록 해야 마땅할 텐데, 이런 얘기
역시 일언반구도 찾아볼 수 없다. 단순한 ‘정보제공’의 측면이 이럴진대, 의사결정 구조의 독립성ㆍ투명성 확보나 일반시민의
정책참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을 터이다.





허점투성이 보고서, 신뢰할 수 없는 자문위원



부안의 위도가 최종부지로 결정되기까지 조사위가 한 일이라고는 땅에 구멍 몇개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땅에 구멍 몇개 파보고 위도는 최종부지로 결정되었다.▷



NRC 보고서에서 지적한 두번째 사항, 즉 동료심사의 강화와 외부 독립 전문가의 활용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얘기다.
이번 부지선정 과정을 보면, 산자부와 한수원은 애초에 선정된 4개 지역이 “철저한 자료조사와 분석, 현장답사와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자문 등 5단계 심사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용역연구의 결과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연구보고서는
환경단체로부터 ‘과거의 자료들을 재탕한 허점투성이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자문에 응했다는 ‘각계 전문가’의 명단조차
싣지 않아 신뢰성을 크게 상실했다. 그나마도 그 4개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북 부안이 갑작스럽게 최종 후보지로 떠올라
선정될 형편이니, 결국 그 모든 과정이 졸속이었음을 에둘러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책결정에서의 ‘기본’이 지켜지는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기대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설사 산자부와 한수원이
지금 예정된 핵폐기장 부지를 계속 밀어붙여 위도(蝟島)에 중ㆍ저준위 폐기물 저장과 SNF의 ‘중간’저장을 맡을 ‘원전수거물쎈터’를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필자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의 경우처럼,
우리나라 역시 종국에는 SNF의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를 다시한번 선정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SNF
자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지 않는 한 영영 변함이 없을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이며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과정에 의해 핵폐기장이 이미 한번 선정되었다는 점은 산자부와 한수원에 앞으로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며, 현재와 같은 핵발전 확대기조를 계속 유지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파국을 피하는 방법은,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들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핵폐기장 부지선정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면서,
핵발전 그 자체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논의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핵발전은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고 2008∼2016년이면 현재의 저장시설이 포화되니 핵폐기장 건설이 시급하다는
식의 해묵은‘협박’은 원전 찬성론자들에게도 하등의 득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위협과‘당근’을 결합하면 당장 눈앞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얼마 안가 이는 더 큰 반발과 두려움을 불러올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창비 웹매거진/2003/7]

발췌: 창비웹매거진(www.changbi.com/web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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