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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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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산업자원부와 (주)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몸이 달았다. 어떻게든 해당 지역 주민의 반대를 억누르고 핵폐기장을 짓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한동안 관련 학계의 학자들이 여러 신문에 조직적으로 기고를 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산자부와 한수원이 직접 나서서
매일같이 신문에 커다란 광고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매일 텔레비전 광고를 하고 있다.

물론 텔레비전 광고를 처음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이미 10년 정도의 내력을 가지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에서는 이정길,
서인석, 그리고 문성근처럼 이미지가 좋은 배우들을 내세워서 핵발전이 안전하고 깨끗하고 게다가 값싸고 완벽한 에너지라는 선전을
해댔다.

그러나 이렇게 이미지가 좋은 배우들을 동원해서 핵발전을 일방적으로 선전한다고 해서 핵발전의 문제가 없어지겠는가? 핵발전의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방적 선전에 속아서 핵발전을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겠는가? 이런 선전에 이용된 배우들의 이미지만 나빠졌을
뿐이다. 원자력문화재단의 선전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산자부와 한수원은 이런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하다. 되풀이되는 선전전을 보면서 산자부와 한수원의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텔레비전에서 쏟아붓도 있는 광고는 이런 내용이다. 아주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화면에 프랑스와
일본의 핵폐기장 부근에 사는 사람이 나와서 핵폐기장이 안전하고 지역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태극기가 화면에 가득차면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라는 커다란 자막이 그 위에 떠오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전수거물센터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완벽하게 시공되고 관리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주십시요”라는 목소리가 들려나온다. 핵폐기장은
좋은 것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태극기로 상징되는 애국주의와 버무린 이 광고를 보면서 정말 국가기관이 저런 식으로 해도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산자부와 한수원은 핵폐기장에 대한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원전수거물센터’라는 모호한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국민들을 바보로 여기고 있지 않는 한, 이런 식의 희한한 작명은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핵폐기물은 핵폐기물일 뿐이다.
아무리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이런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핵발전소와 함께 핵폐기장은 ‘절대적인 위험시설’이다. ‘절대적인
위험’이라는 것은 인류의 능력으로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핵발전에 관한 상찬은 핵발전에 관한 환상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미국이 핵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고 있고,
독일이 핵발전 폐기정책을 밝혔고, 이어서 영국도 핵발전 폐기정책을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핵발전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재생가능한
생태적 대체에너지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사정에 비춰 보았을 때, 우리의 상황은 그야말로 후진국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로 산자부와 한수원이 이 나라를 이러한 후진국적 상황으로 몰고가는 주범이다.

정말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다. 그 중의 하나로 이 나라를 핵발전의 위협으로부터 구하는 일을 꼽을
수 있다. 만의 하나라도 체르노빌이 이 나라에서 재연된다면, 이 나라는 그야말로 파국을 맞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위협을 애초부터
피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아니면 호언장담과 거짓말로 이런 위협을 구태여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핵발전에 대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은 너무나 위험한 시설이기 때문에 일단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 짓게 된다. 그 결과 대도시를 위해서 농어촌이 희생되어야 하는 불평등한 공간구조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살던 곳에서 언제까지나 안전하게 살 권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산자부와 한수원은 물론이고 그 누구라도 희생을 강요할
권리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핵파시스트 국가’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산자부와 한수원은 그래서 막대한 ‘지역발전 투자’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국 어디서고 산자부와 한수원의 방침에 찬성하는
사람들보다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산자부와 한수원의 당근전략이 영 통하질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을 밀어붙이는 산자부와 한수원의 태도는 명백히 반민주적인 것이다. 산자부와 한수원은 저 반민주적인 박정희 시대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 사회를 고급화하는 것밖에 없다.
핵발전과 같은 ‘절대적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저급한 발전방식은 이 사회의 고급화를 막는 주범 중의 주범이다. 핵발전은 또한
극도로 중앙집권적인 발전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민주화와 분권화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산자부와 한수원은
정말 나라를 위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산자부는 정말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핵발전정책을 그만두어야 하며, 한수원이나 원자력문화재단과
같은 시대착오적 조직들을 없애야 한다.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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