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이 나라에는 주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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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연합 마당의 천막 농성장을 치웠습니다. 3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무려
36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던 원불교 김성근교무님이 병원으로 실려 갔기 때문입니다. 함께 생활했던 지역주민들은 힘없이 발길을 돌렸고,
농성을 지원하느라 종종걸음치던 후배활동가의 눈물이 멈추지 않아 서두른 것입니다.

아직
쌀쌀한 저녁을 견디기 위해 사용했던 전기담요들, 물과 효소액을 담았던 병들,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가슴에 둘렀던
소형 프래카드, 교무님이 마지막 힘으로 쓴 ‘대통령께 드리는 글’, 한국수력원자력이 작성한 엉터리 ‘방사성 관리시설 도출 보고서’들,
또 누군가가 먹었던 감기약의 여분들…

환경운동 10년째, 이렇게 허탈한 싸움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성직자의 목숨을 건 호소는 아무런 메아리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36일. 864시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만한 엄청난 시간 동안, 정부는 대책은 커녕 책임 있는 답변조차 하지 않았고, 언론은
변변한 소개조차 피했습니다. 철저한 무시와 함구. 반핵 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벽과 우리사회의 비정함에 목이 메입니다.

15년 전쯤, 학생운동 때의 느낌이 떠오릅니다. 꿈적하지 않는 거대한 사회에 저항하여 선배와 친구들은 꽃잎처럼 스러지고, 저는
내 순서를 몇 번이고 고민했었습니다. 무엇인가 말하고자 했던 우리들이 절망 속에서 택할 수 있었던 행동들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폭력과 평화를 운동의 원리로 삼는 환경운동가가 또 다시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운동을 떠올리는 게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주장이 왜 이렇게 거북스럽게 다뤄지는지 당혹스럽습니다. 어쩌다 우리가 지역이기주의와 대안없는 반대세력으로 몰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과학적으로, 미래를 보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핵쓰레기장 건설을 추진하자고 했을 뿐인데요.

사실 ‘2008년이면 중저준위 핵쓰레기의 임시처분장이 포화가 된다’는 광고는 정직하지 않습니다.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조차
임시처분장의 포화 연도는 폐기물 압축기술의 발달로 2020년까지 늘어났다고 밝힌바 있습니다(자료 : 1997, 원자력발전백서).
그런데도 당장 건설하지 않으면 무슨 재앙이 올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도리어 진지한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들갑은 이미 86년, 90년, 94년에도 있었지만, 결국 불신을 키우고 사태만 악화시켰습니다.

또 산업자원부가 확인했듯이, 4개 후보지역은 무슨 그럴듯한 조사를 해서 결정된 곳이 아닙니다. 지역의 우려와 주민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이 서류만을 검토해서 선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과학적인 조사를 주민들이 반대하고 억지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425개 지역을 검토했다는 이 자료는 자신들의 입맛에 맡게 4개 지역을 선정하고, 관련 자료들을 꿰어 맞춘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 중에는 활성단층 우려지역도 있고, 장관들이 세 번이나 공문으로 건설불가를 약속한 곳도 있으며, 항만을 건설할 수
없어 입지가 불가능한 곳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핵에너지는 미래가 없습니다. OECD 29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핵발전소를 추가 건설을 하고있고, 원료인 우라늄은
50년이 지나기 전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단계에서 핵발전소의 동결을 주장합니다. 물론 핵쓰레기장이
지어져 핵쓰레기들을 안전하게 처분하는 것은 우리도 바라는 바지만, 이는 발생될 핵쓰레기의 양을 추정하여 핵쓰레기장의 적정 규모와
방식을 검토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2030년에 지금보다 두 배나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할 계획이고 핵쓰레기는
어디까지 늘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핵쓰레기장을 받겠습니까. 우리는 핵쓰레기장의 건설이 핵산업의 팽창을 촉진하는 새로운 근거가
될 것을 우려합니다.

마지막으로 돈으로 주민들을 타락시키지 마십시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3년간 몇 개 지역에 핵쓰레기장 유치 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20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지역사회에는 부도덕한 매수가 횡횡하고 지역주민들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무현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핵쓰레기장을 유치하면 양성자 가속기를 끼워주겠다고 하고,
또 지역발전기금을 최고 1조까지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치명적인 위험시설을 건설하겠다면서, 안전성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주민들의 환심을 사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와 지역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으로 주민들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촌지로 주민들의 판단을 오도하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양심을 팔고, 이웃과 고향을 팔고, 미래를 팔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돈만 아는 돼지로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는 핵쓰레기장 건설 논란을 두고, 우리사회의 천박한 자본주의, 무모한 과학지상주의, 파쇼적인 다수의 횡포를 목격합니다. 돈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의 부도덕, 핵시설이 절대로 안전하다는 전문가들의 오만, 다수의 향락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우리사회의
뻔뻔스러움이 가증스럽습니다.

유독 봄비가 많았던 4월, 김성근 교무님은 농성 20일째부터 매일 같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단식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제발 비오는 날이라도 분수대를 꺼줄 수 없느냐고, 그렇게라도 해서 얼마의 전력이라도 아낄수 없겠냐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답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런 작은 조치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고, 김교무님은 보름 동안 날마다 비오는 날에도 그 분수를
봐야 했습니다. 이를 두고 김교무는 정말 이 나라에 주인이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진실로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국가의 전력정책과 핵발전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그곳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힘든 소리에는 귀를 닫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어려운 일들은 고민하지 않으려는 말뿐인 참여정부과 우리사회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대통령께
드리는 글

어려운 시기 국정을 운영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오늘로서 36일간의 단식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확대되고 있는 핵발전 산업을 참회하기
위해서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단식을 마감하면서 그동안 제가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알려드리기
위해 글을 올립니다.

산자부가 추진하고 있는 핵폐기장을 통해 우리나라는 향후 핵발전 중심 정책을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이냐 아니면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어 지속가능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변화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놓여있습니다. 에너지 체계는 그 사회의
밑바탕이라 지속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입니다.
따라서 개발독재 시대에 일방적으로 추진해 왔던 대규모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중심의 전력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토론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와 산업자원부는 이를 배제한 채, 핵폐기장을 추진하면서 공존과 대화, 화합의 철학을 거부하고
눈앞에 닥친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일방적인 힘에 호소해서 생명을 파괴하려는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고 단지 눈앞의 닥친 이익을 위해 만들어내는 인위적 시도들은 결국 저희
모두에게 엄연한 인과의 진리로 돌아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를 파괴하고 조작하는 생명조작
기술은 첨단의 현대의 과학으로도 그 심각한 부작용을 전혀 알아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물질의 근원인 원자핵을
분열시켜 만들어내는 핵기술은 지금까지 숱한 생명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미래의 세대들을 담보로 당장 닥친 쾌락과 편리를 좇아 도무지 해답이 없는 핵발전을
계속 늘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은 마치 활주로 없는 비행기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당장 닥친 눈앞의 욕망 충족을
위해 마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모한 핵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핵발전소 해당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늘어가고 사회적 불신은 높아져 가고 있는데
저희들에게 눈앞의 단 꿀을 받아먹으라고 유혹을 하면서, 지역주민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우고 시민들에게는 잘못된 정보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도 핵폐기물 처리에 대해 완전한 해답을 갖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선진국들도 일방적인 핵폐기장
건설에 실패했습니다.
영국은 지난 1992년 컴브리아지역을 중저준위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했다가 1997년 백지화했고, 프랑스 역시 지난
1995년 일방적으로 뷰어(Bure)시를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했다가 2000년 백지화했습니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
투명한 안전성 검토가 배제된 채 정부가 특정지역을 핵폐기장으로 선정하는 일방주의는 선진국에서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핵폐기장의 안전한 건설을 위해 전국 임해 지역 244곳 중에 4곳을 선정한 후보지 도출에는 고작 3억 5천만원의 비용을
들이면서 주민을 호도하고 지역공동체를 분열시키는데 들인 비용은 지난 3년간만 해도 100억원이 넘습니다. 정작 후보부지의
지질안전성은 조사도 하지 않고, 금품을 통한 핵폐기장 유치위원회 구성과 배후조종하는 것은 독재정권 시절에나 볼 수
있던 부도덕한 행위입니다. 정부의 이러한 행위에 어떤 주민들이 신뢰를 가지고 정책에 참여하겠습니까?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핵폐기장에 어느 누가 터 잡고 살며, 내 후손이 살아 갈 생명과도 같은 이 소중한 땅에 해답이 없는
핵폐기물을 묻으려 하겠습니까?

핵폐기물 임시저장고 2008년 포화되므로 시급히 핵폐기장을 건설해야한다는 것은 과장입니다. 1994년 굴업도 핵폐기장
추진 당시 정부는 1996-2000년 사이 핵폐기물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른다고 발표했다가 굴업도 핵폐기장이 백지화되자
압축기술 발달로 저장고 수명이 13-15년 연장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1997년 원자력발전백서에서는 유리고형화 기술로
폐기물은 10분의 1로 압축 가능하다고 밝혔다가 2000년에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2008년이면 포화된다고 다시
말을 바꾸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주)은 내부보고서에서 중저준위 폐기물은 압축기술로 2020년까지, 고준위 폐기물도
2016년 이후까지 각 핵발전소별로 저장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더 이상 “양치기 소년”식
과장홍보로 사회불안을 조성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로 시급한 것은 효율적인 전력이용과 재생에너지 확대입니다. 지난해 한국은 GDP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영국보다
국민 1인당 더 많은 전기를 소비했습니다. 현재 개발되어 있는 절전기술만 적용하더라도 핵발전소 추가 건설은 필요 없다는
민간연구소의 연구결과가 발표되는데 왜 정부에서는 어떠한 해답을 가지지 못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정부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셔야할 것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0년이면 풍력발전이 전세계 전력공급의 12%를 차지하고 2040년이면
태양광 발전이 세계 전력생산의 26%를 충당할 전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2015년까지 현재 핵발전
용량을 두 배가 더 확대하는 정책을 위해 20여조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핵발전소 광고비용 110억원에도 못 미치는 연간 28억원입니다.

저희는 지금 나와 있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해야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늘 불안한 핵발전소, 핵페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겠지요. 하지만 끝을 모르고 달려가는 핵발전소 확대 정책 하에서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현재와 같이 안전성과 투명함이 배제된 비민주적인 방법과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는
분열과 보상 정책으로는 정부정책의 정당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핵발전소를 운영해온 스웨덴, 독일, 영국은 일방적 부지선정방식에서 벗어나 정부, 산업계, 시민단체,
지역주민, 전문가를 참여시켜 철저한 안전성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보장한 가운데 종합적인 핵폐기물 처분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독재정권 시절에서나 통하던 일방주의식 부지선정이나 배금주의를 부추기는 지역보상정책에서 벗어나 안전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는 민관합동특별기구를 통해 장기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자연과, 이 땅, 그리고 생명들을 병들게 하고 희생시키는 핵에너지 중심 정책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과
지역민을 포함한 국민들과의 토론화 합의 문화를 이끌어 가시는데 대통령께서 중심에 서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주변의 기득권세력에 의해 닫혀진 귀를 열으시고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시길 부탁드립니다.

36일간의 단식을 마치며 김성근 교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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