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를 가다②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바이칼은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다.

몽골에서 러시아로 국경을 넘는 일이 예기치 않게 난관에 부딪히면서 어렵게 국경을 넘은 우리는 이곳에서 손해 본 하루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달리고 또 달렸다. 몽골에서 러시아로 이동하면서 풍경은 점차 바뀌어간다. 황량하던 평원에 이젠 제법 키 큰 나무들도
보이기 시작하니 단조롭던 풍경이 훨씬 다양해진다. 녹색은 그래서 다양성이고 생명인가 보다. 여행은 원래 불확실성 속에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며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여정의 고단함을 달랬다.

오후 늦게 울란우데(러시아 자치구 중 브리야트 공화국의 수도)에 도착, 거대한 레닌의 두상을 보고 사회주의 혁명의 숨결을 잠시
느낀 후 저녁을 먹고 바이칼 호변의 온천휴양지로 유명한 가랴친스크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순례 시작 사흘째, 드디어 이번 여정의
핵심장소인 바이칼로 접근하는 중인 것이다. 어서 보고 싶은 심정에 조급한 마음이 앞서지만 어차피 보게 될 터인데 왜이리 조바심인가
싶어 짐짓 마음을 가다듬었다.

타이가 숲 사이로 난 비포장의 길을 날이 어두워지도록 강행군했다. 이곳에서 어둡다는 것은 최소한 밤 11시는 넘었다는 뜻이다.
해가 지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 되지 않는 것이 이곳의 여름이다. 10시가 넘어야 어둑어둑해지고 새벽 4시가 넘으면 다시 동이
터 온다. 이곳 사람들이야 이것이 일상이겠지만 우리들은 하루의 시작과 끝남을 시계에 의존하지 않고 느낌으로 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까만 밤, 이곳의 하늘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북두칠성과 오리온, 카시오페이아 등의 별자리가 빛난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지쳐 고단한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있는 이는 목적지에 거의 다다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즈음 무리 중에서 나직한 탄성이
하나 터져 나온다.

“바이칼 호수다!”
“아냐, 저건 하늘이잖아.”
“아냐, 하늘과 호수의 경계를 잘 보란 말이야. 호수가 분명해.”

그랬다. 하늘은 호수였고 호수는 다시 하늘이었다. 숲 사이로 지나치며 어두움 속에 그 둘을 식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슴푸레한
황혼의 불빛이 겨우 세상을 밝히는 중 푸르스름하게 비치는 하늘과 호수였다. 호수는 그렇게 자신을 아직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고 싶어하는 곳, 신성과 청정의 이미지로 가득한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의 첫 모습은 이렇게
다가왔다.
이튿날 온천욕을 간단히 마친 후 짧게 주어진 자유시간에 서둘러 휴양소를 나서 호수 쪽으로 향했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햇살은 따사로이 비치고 맑고 깨끗한 공기는 평화의 느낌으로 온통 충만하다. 러시아식 통나무집이 소박하게 줄지어 서 있고 저멀리
검푸르게 다가오는 물이 아른거린다.

드디어 바이칼 앞에 섰다. 나 홀로 바이칼 앞에 선 것이다. 차가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사람은 큰 물을
접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어머니의 양수가 자기가 처음 자란 곳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써 여가를 이용해 물가를
찾는지도 모른다.
영성은 일단 편안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녹색영성순례’를 이곳으로 떠나온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내 안의 영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다시 번뇌에 쌓인다. 모래를 한 옴큼 움켜쥐었다. 힘을 줄수록 모래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집착하지 않으리라!
영성에 집착할수록 영성은 모래처럼 새어 나갈 것이므로…….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부르칸(Burkhan) 바위에 어느새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면 순례객들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과 땅을 우러르게 된다
‘바르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우리의 솟대나 장승과 같은 것이다.
부리야트 사람들의 샤머니즘은 우리의 무속신앙과 비슷한 점이 많아 흥미를 끈다. 올혼 섬(Olkhon Island)
한국의 성황당 주변과 비슷한 모습. 우리의 무속신앙과 흡사한
모습은 바이칼 호변 도처에서 발견된다. 바이칼 호의 남서부에 위치한 리스트비양카
장승과 비슷한 조형물. 올혼 섬 남쪽을 트레킹하던 중 길가에서
볼 수 있었다
부르칸 바위 근처에서 샤먼의 의례가 끝나고 우리는 우리 식대로
고천제를 올리고 솟대를 세웠다
한국 공산당이 창당된 곳. 이 건물에서 이르쿠츠크 공산당 한인지부가
탄생했고 이후 한국공산당과 항일운동의 주요세력이 된다. 현재 음악당으로 쓰이고 있다. 이르쿠츠크 시내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의 두상. 이런 거대한 조형물이 가능한
건 일인독재하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베츠늬이 아곤(영원한 불). 2차 대전 중 순국한 러시아 병사를
기리기 위한 장소. 15분에 한번씩 학생들이 교대로 불을 지키고 있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만난 러시아 소녀들
바이칼에 인접한 우스트 바르구진 항에서 만난 소년. 또래들과
어울려 낚시를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브리야트 박물관에서 한판 벌어진 씨름. 오른쪽이 순례단원인 참여연대
안진걸 씨이고 왼쪽이 브리야트 남자. 우리가 바깥다리 걸기로 한판승.
가랴친스크에서 바이칼과 처음으로 만나다.
사람들이 바이칼에서 옷을 벗는 이유는 뭘까. 벗는다는 건 순수와
영성으로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장애물들을 버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념무상으로 이끄는 거대한 호수 앞에 서면 인간은 한없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admin

국제연대 활동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