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고래여~ 물개야~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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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도전과  맞서 싸운 인류의 ‘위대한 남극  탐험의 역사’는 실상 ‘슬픈 남극 남획의 역사’ 였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뒤늦게 1980년 남극해양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이 체결되었고 남극 해양생태계는 그 후 철저한 관리 체계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의 거부권(veto) 행사 등 협약 자체가 갖는 한계점은 늘 상존하고 있어 남극 해양생태계 보호의 완전한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이제 시장경제 논리의 확대와 지구 온난화라는 새로운 위협 앞에 놓여 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카밀라 협약 회의 출범


남반구에  봄이 찾아오는 매년 10월 말이면 호주의  태즈매니아 주 호바트 시에서는 특별한  국제회의가 열린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Convention for the Conservation of the Antarctic Marine Living Resources) 연례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도 지난 10월 26일부터 11월 6일까지 2주에 걸쳐 제 28차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  연례회의가 개최되었다. 흔히 영문 이니셜만을 따서 ‘카밀라 협약’이라 부르는 이 협약은 남극해에서 서식하는 모든 해양생물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1980년 체결되었고, 현재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유럽연합, 프랑스, 인도, 일본, 한국,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 노르웨이 등 총 25개 회원국이 가입된 정부간 협약 기구이다. 카밀라 협약은 다른 지역수산기구들과 달리 생물자원 관리에 관해 사전예방적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과 생태계적 접근방식(ecosystem approach)이라는 양대 원칙을 토대로 하여 남극해양생태계의 보전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 배경에는 남극 생물종에 대한 가슴 아픈 남획의 역사가 있다.


인류가  공식적으로 처음 남극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한 해는 1819년. 그러나 이미 1780년대부터  유럽인들은 남극 사우스 조지아 섬  등 주변 해역에서 중국에 내다 팔  모피를 위해 털가죽물개를 사냥해 왔다. 남획으로 털가죽물개가 인근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자, 뒤이어 코끼리 바다표범이 희생양이 되어 수십만 마리가 도살되었다. 이후 바다표범도 거의 멸종에 이르게 되었고 다음으로 고래사냥이 시작되었다. 20세기 초부터 본격화된 포경산업으로 단 80여 년 만에 약 150만 마리의 고래가 죽었다. 그 뒤 관련 산업이 쇠퇴하자 인간이 눈을 돌린 것은 남빙양의 어류 어업이었다. 남극바다에만 서식하는 물고기는 대략 2백 여 종으로 추정되는데, 종의 가짓수도 그리 많지 않지만 개별종의 개체 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1969년 본격화된 남극해 어업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종에서 종으로 남획과 자원 붕괴를 답습했다. 그러나 1972년 사우스 조지아 섬 등 남극 섬 주변에서 상업적 크릴 조업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남극 해양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크릴은 남극의 어류, 조류, 펭귄, 물개, 해표, 고래 등 거의 모든 남극 생물종들의 기초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남극해에서 고래가 거의 멸종되다시피 하면서 생물자원 남획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따라서 고래의 먹이가 되는 크릴을 많이 잡는다면 고래의 개체 수에 타격을 입힐 것이며, 크릴 중심의 남극 생태계도 위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마침내 1982년 남극의 모든 해양생물을 포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카밀라 협약이 발효되었다.


이처럼  약탈과 남획으로 얼룩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컸기 때문에 카밀라  협약의 목적은 우선 남극 해양생물자원의  보존과 합리적 관리에 있다. 현재 남극  주변 해역, 즉 남빙양에서 조업이 허용된  수산어종은 크릴, 파타고니아 이빨고기, 남극빙어, 별오징어, 게 등이다. 남극해에서 조업하기 위해서는 카밀라 협약에 가입하여야 하고, 조업에 관한 모든 자료를 사무국에 상세하게 보고하며 협약에서 규정하는 보존 조처들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협약국들은 매년 카밀라 연례 회의에 참여하여 조업 대상인 어종별로 자원량, 어업 허용 구역, 금어기, 허용 어획량, 보존 어종 등 여러 세세한 내용에 대해 일일이 논의하고 세부적인 보존 조처들을 정한다. 해당 내용들이 상당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자료들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카밀라 회의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과학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만큼 카밀라 회의는 생물자원 관리와 관련해 매우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연구 활동도 활발한 편이며, 정부관계자 및 업계, 국제환경단체 활동가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린 회의다.


올해  카밀라 회의에서는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두 가지의 성과를 냈다. 하나는  사우스 오크니 섬 인근 해역 일부를 해양보호구역(MPA:Marine Protected Area)으로 지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릴 조업이 일부 소해역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 조처를 책정한 것이다. 해양보호구역(MPA)은 보존 및 연구가치가 높은 특정 해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이 해역에서 상업 조업 및 오염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에 지정된 해양보호구역은 카밀라 협약에서 최초로 공해 해역에 해양보호구역을 도입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다. 크릴의 경우 그동안 크릴 조업이 일부 소해역에서만 집중되어 주변 포식동물들의 먹이를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늘 제기되었다. 이제 조업 집중을 분산시키면 펭귄, 물개, 고래 등 주변 해역에서 서식하는 포식동물들에게 충분한 먹이가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이는 지난 몇 년 간 국제환경단체인 남극보호연합(ASOC)에서 추진해 온 크릴 보호 캠페인의 결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보존 조처는 조업국들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불리한 조처들이다. 따라서 논의 중간에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같은 나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카밀라에서는 만장일치로 최종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보존 조처는 채택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올해 회의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회원국들 모두 지구 온난화나 남극 해양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해 대부분 공감을 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남극해에서는 지구 온난화에 기인한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과거에 크릴이 많이 잡히던 특정 해역에서 올해는 크릴이 전혀 잡히지 않은 것이다. 
 


카밀라의  한계- 인간의 탐욕


그러나  카밀라 회의가 늘 올해처럼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카밀라 회의는 환경  보전을 지향하는 서방 선진국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데다, 이들이 주요 환경  아젠다를 이끌고 있어 다른 지역수산회의에  비해 선진적이다. 그러나 만장일치라는  의사 결정 원칙이 그러한 선진국들의  일방 독주를 깨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특정 국가가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해 필요한 보존 조처에 끝까지 베토를 행사하는 일이 발생한다. 실례로 작년 한국과 일본이 크릴 조업선에 과학 관찰관 승선 의무화를 끝까지 반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환경보전주의 국가들도 국익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현실론자들의 의견도 납득할만하다.


결국  카밀라 협약이 남극해 생물자원에 대한  완전한 보호막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시장  경제 앞에서는 말이다. 현재 남극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물고기가  있는데 바로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다. 미국 시장에서는 칠레산 바다농어로 알려져 있는 이 물고기는 톤 당 약 1만 달러의 값이 나가는 ‘남극해의 로또’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높고, 우리나라에서도 호텔이나 일식 요리집에서 ‘메로’라는 이름으로 잘 팔리는 인기 어종이다. 그만큼 시장 수요가 높기 때문에 환경 보전을 내내 외치던 호주,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서구 선진국들도 이 물고기 앞에서만큼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빨고기를 가장 많이 잡는 나라가 바로 다름아닌 이 세 나라다. 한국, 일본, 중국 등과 같은 신흥경제발전국들은 이러한 서구 선진국들의 이중성을 꿰뚫고 있다. 많이 잡고 많이 팔아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큰 신흥경제발전국들의 입장에서 서구 선진국들의 환경 보전 논리는 부담스럽기만 하고 때로는 부당하게만 느껴진다. 남극해의 생물자원을 먼저 남획한 자들이 바로 서구 선진국들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회의에서 중국 대표단의 수석대표는 그러한 불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카밀라 회의가 비영어권 국가들에게 불공평하며, 서구 영어권 국가들은 중국과 같은 나라들의 이해관계(interest)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학 자료를 기초로 비정치적인 객관적 의사결정을 지향하는 카밀라 회의에서 이 같은 정치적 발언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과학 정보를 해석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행위는 결국 정치적이고 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 협약에서도 이와 비슷한 갈등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남빙양에서 잡히는 수산자원의 시장은 주로 북미, 유럽, 일본, 중국 등이다. 중국은 앞으로 더욱 커질 시장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두고 주판알을 튕기지 않는 나라들이 어디 있을까. 2세기 전의 맹목적이던 제국주의 열풍이나 지금의 시장 자본주의 열풍이나 그 본질은 똑같고, 결국 그 희생물 중 하나가 남극이다. 
 


깨지기 쉬운 얼음 대륙


그러나  남극은 이제 2백 년 전의 남극과는  다르다. 남극 생물자원의 남획 뿐 아니라  점차 늘고 있는 각국의 연구기지, 관광객  증가 등으로 환경과 생태계가 급속도로 오염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남극이 인류문명이 야기한 지구 온난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지난 1세기 동안 지구 온도는 평균 0.74도 상승(기후 모델에 따라서는 1.4도 상승)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극반도는 이로 인해 지난 30년 간 무료 4.5도나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지난 50년 간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반도의 244개 해빙 중 87%에 해당하는 212개의 해빙이 녹아 없어지고 있다.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듯이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을 북쪽의 더운 바다로 전달해 주는 현재의 해류 흐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기후 시스템에 불균형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 또 빙하가 녹으면서 남극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걱정스럽다. 남극의 해빙 주변에는 남극 생태계의 기반인 식물 플랑크톤인 미세 조류와 동물 플랑크톤인 크릴이 서식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빙이 사라질 경우, 이러한 기초 먹이들도 서식지를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먹이사슬의 기초 단계가 무너진 남극 생태계가 받을 영향은 심각할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오존층 파괴로 인해 지난 수십 년 간 남극에 투사된 자외선 양이 증가하여 남극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세월 물리적으로 안정된 환경과 기후에 적응해 온 남극생태계는 그만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고 취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경제나 자본 논리를 앞세워 인간의 탐욕만을 채울 것인가. 이제 그 어느 나라도 전(全)지구적 환경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지구 환경 문제는 모든 국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구속하는 윤리적 당위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남극은 지구 환경 문제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다. 남극은 어느 특정 국가나 민족의 것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자연 유산이기 때문이다. 2세기 전까지만 해도 남극은 인간이 손이 미치기 힘든 성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극은 인간의 손에 의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연약한 얼음 대륙일 뿐이다. 남극 빙하에서 녹아내리는 물은 아마도 남극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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