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신두리 해변 생명체 씨가 말라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신두리 해안사구 해변이 파도를 타고 밀려들어온 폐유에 뒤덮여 있다.








환경연합 활동가들이 만리포에서 기름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기름을 뒤집어쓴 뿔논병아리가 해변에서 죽어가고 있다.

 

 

태안 기름유출사고 현장을 가다, 흡착포는 흉측한 기름덩어리로 변해 밀려와

여느 때나 다름없이 평온한 주말을 예상하고 있던 12월 7일 금요일 오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연달아 깜빡거렸다. ‘태안 기름유출사고 씨프린스 두 배’ ‘태안 기름유출사고 심각함’ ‘긴급 전화회의 요청 참석바람’….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에서 날린 문자들이 재조합되자 잠시 멍해졌다. 불현듯 씨프린스호 기름유출사고 때, 그 무더위 속에서 몽돌밭 사이로 스며든 기름을 하나하나 돌을 들추며 닦아야 했던 악몽이 되살아났고 나도 모르게 부르르 진저리가 났다.

토요일, 갈아입을 옷과 장화를 챙겨 태안으로 향했다. 신두리 해변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익숙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원유 특유의 냄새가 감지되었다. 컴컴해서 해변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미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침 7시, 신두리 사구에 있는 굴 양식장을 찾아갔다. 주민 서너 명이 굴밭을 지나가버린 기름 때문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었다. 조롱조롱 매달려 수확을 기다리던 굴을 한두 개 까보았다. 역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굴은 이미 입을 벌려 죽어가고 있다. 굴 양식장을 살펴보던 할머니는 “이를 워쪄, 이를 워쪄. 굴 깔라고 난로도 장만해놨는데 이를 워쪄”만 반복했다. 그러다 불현듯 물었다.

“요것이 물이 몇 번 들락거리면 괜찮아 질라나?”

차마 하기 힘든 대답이었지만 해야 했다.

“아닙니다.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굴을 까서 팔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습니다.”

본격적인 기름 수거작업이 진행된다는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검은 띠가 백사장을 가로질러 길게 펼쳐졌고, 파도는 검은 물결을 무겁게 해변으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기름의 성분으로 분리되기 전의 콜타르 형태를 띤 원유는 해변의 모래사장에 차츰차츰 쌓여갔고 장화를 신은 발목까지 푹 빠져들었다. 물컹, 하고 밟히는 그 좋지 못한 질감이 신경계를 자극해 아찔한 현기증이 뒤따랐다.

방제용 물자 턱없이 부족

해변은 아수라장이었다. 해안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떠 있는 문제의 크레인과 유조선이 보였고, 그 근처에서 폭포수처럼 유처리제를 뿜어대는 방제선이 보였다. 기름도 문제지만 유화제로 불리는 이것도 사실상 만만찮은 수질 오염물질이다. 오염물질을 오염물질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재삼 안타깝다. 과학은 여전히 겨우 이 정도 수준에 있는 것이다.

양동이와 수건을 챙겨들고 기름걷이 자원봉사를 나온 주민들의 낯빛은 납빛으로 질려 있었다. 해변에는 걷어올린 기름들이 커다란 고무통에 담겨 출렁거리고, 턱없이 부족한 방제용 물자는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었다. 1시간이 넘게 기다려 받아든 방제복은 기름이 자유로이 들락거리는 방진복이었다. 기름제거 작업을 하는데 먼지 방지하는 옷이라, 차라리 비닐로 된 비옷이 낫다. 용도가 어긋난 방제복을 쉽사리 통과한 기름은 속옷에까지 침범했다. 그나마 지급받은 고무장화는 불량이었다.

기름걷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선 모래사장에 쌓인 기름을 쓰레받기로 걷어내 물통에 담는다. 물통이 꽉 차면 들고 가서 큰 물통에 붓는다. 무게가 만만찮다. 이어서 흡착포를 든 사람이 남은 기름에 흡착포를 깔면서 뒤따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자원봉사자가 속속 도착했다. 해변은 하얀 흡착포로 덮여져 간다. 어림잡아 수천 명은 되어 보인다. 만리포가 들썩대고 있지만 여전히 장비는 태부족이다. 장비가 안 온다고, 기름 수거용 트럭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기름을 걷을 때 모래가 안 섞이도록 해달라고 마이크의 주인공은 하루 종일 악을 쓴다. 귀도 멍멍해진다.

새들은 온통 기름을 뒤집어써

오후에는 신두리 사구로 향했다. 만리포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에 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두리 사구에는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다. 신두리 해변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떠밀려온 해초와
물메기 한 마리가 입 안 가득 검은 기름을 담고 길게 누워 있다. 아무르불가사리들이 떼죽음을 당한 현장이 보였다. 서해비단고둥말똥성게도 모두 기름을 뒤집어쓰고 해변으로 나와 죽어가고 있고 기름 냄새를 피해 굴을 파내려가던 달랑게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비틀대는 저들도 곧 그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오후가 되어 물이 들기 시작하자 파도는 더욱 본격적으로 기름을 실어오기 시작한다. 물결이 아니라, 아예 기름만 들어온다. 해상에서 방제작업에 사용한 흡착포가 흉측한 기름덩어리로 변해 꾸물꾸물 밀려들어온다. 처음엔 검은 생명체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수백, 수천 장의 흡착포가 검은 기름덩어리로 변해서 해변에 밀려와 기름밭에 덧쌓인다. 무거워서 차마 끌려나오지도 않는다. 해상에서 붙잡을 능력이 없다면 아예 이것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떠다니는 기름 위에 던졌으면 즉시 건져냈어야 한다. 기름을 가득 머금은 무겁디 무거운 흡착포의 표류, 이것이 더 문제다.

고단한 하루가 지나고 생태조사를 나갔던 팀들이 돌아와 합류했다. 6마리의 검은 새가 함께 왔다. 2마리는 이미 기름에 익사했다. 온통 기름을 뒤집어쓴 새들은 거의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능숙한 솜씨로 살리기 작전에 나선다. 우선 식용유를 이용해 새의 몸에 묻은 검은 기름을 닦아낸다. 이어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풀어 기름을 제거하고 헹군다.

이 같은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자, 새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뿔논병아리다. 체온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수건과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한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처음 접하는 사람들과의 접촉에 벌벌 떨던 새는 따뜻한 바람과 영양제를 맞고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이렇게 발견되어 방사한 새가 이틀 만에 4마리째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얼마나 더 많은 새가 기름에 절어 날지도 못하고 차가운 바다에 떠서 굶주림 속에 쓸쓸한 죽음을 맞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기름걷이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다시 먼 길을 돌아 현장으로 복귀해 분주한 일상을 꾸려나가겠지만, 그리고 시끌벅적한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은 곧 태안을 잊겠지만, 벌을 받을 사람은 받고 사고 조사도 마치겠지만, 그때부터 재앙은 시작될 것이다. 더욱 깊숙이 뿌리를 내려 번성할 것이고 생태계의 죽음은 사슬 구조를 따라 속 깊이 진화할 것이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 이 글은 뉴스메이커에 게재되었습니다.

 

 

admin

(X) 습지 해양 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