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발로 뛰고 마음으로 느낀 우리의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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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는 화산지대이면서 우리나라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내륙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식생들이 많이 분포해 있다. 오름 역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화산 지형이다. 오늘 가는 곳은 ‘물영아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오름인데 최근에 람사 사이트로 지정되어 그 모습이 사뭇 궁금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구에서부터 나를 울적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계단’이었다. 오름 초입부터 정상까지 놓여있는 친절한 계단. 누가 여기에 이런 걸 놓았는지… 상당한 경사에도 불구하고 계단이 가지런히 정상을 향해 놓여 있다. 한참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아찔하기가 그지없다. 학생들은 계단 옆 나무들엔 눈도 못 주고 부지런히 바로 위 계단만 보고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여기 왜 왔을까? 갑자기 꼭 정상에 오르려고 왔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등산을 할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정상까지 올라 그제서야 아래를 내려다보며 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한다. 꼭 그래야 할까? 올라가는 도중에는 걸음도 늦추지 않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도 듣지 않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정상만을 향해간다. 꼭 정상까지 가지 않으면 간 것이 아니라고 누가 정해놓기라도  한듯이 말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렵사리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지쳐버린 몸과 마음으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려갈 일이 걱정되었다.  

 


   오후에 향한 곳은 ‘곶자왈’. 역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생태지역이다. 영화에서 봄직한 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 중간 중간 덩굴들이 늘어져 있는 꼭 비밀의 화원으로 향하는 발걸음 같다. 곶자왈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자 아침부터 심상치 않던 하늘에서 잔뜩 머금었던 비를 뿌려놓는다. 하늘에서 구름 한번, 바람 한번, 나무 한번 거치고 얼굴로 떨어지는 빗물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비옷이며 모자도 벗어버리고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으랴’는 생각에 꿀맛같이 비를 맞는다. 학생들은 함께 온 제주 북촌 초등학교 아이들이 비에 젖어 감기라도 들까 봐 자기들의 비옷을 벗어주느라 정신이 없는데 혼자 비를 즐기는 것 같아 미안 했지만 나뭇잎하나, 비 한 방울까지 고스란히 제 역할을 해내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잠시 미뤄지고 만다.

 



 

순천으로 향하는 길. 학생들은 지난번 탐사대에게 순천만의 비경에 대해 단단히 교육을 받은 듯 하나같이 기대를 잔뜩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긴 나도 처음 순천만의 모습을 봤을 때 그 푸른 갈대밭의 장엄함에 얼마나 놀랐던지. 자연이 자연으로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자연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순천만을 보고 깨닫게 되는 듯하다. 학생들은 순천만과 용산 전망대에 다녀온 후 순천시장님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뜨거운 여름 볕 아래서 진행된 시간이었지만 질문을 하려는 학생들의 손이 여기저기서 올라간다. 어느새 반을 지나온 탐사의 일정 속에 학생들은 환경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들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탐사의 마지막 람사 사이트, 우포늪. 너무나 유명한 곳이라 다른 말이 필요 없는 곳이다. 학생들은 물병하나씩 손에 쥐고 우포늪의 여름 속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수풀을 헤치고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볕에 달궈진 제방 길을 맨발로 걷기도 하며 투덜대고 화도 내면서 하나씩 몸으로 우포늪과 만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어 시간.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때 쯤 학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럼없이 풀더미에 드러눕기도 하고 들꽃다발도 만들고 잠깐 쉬는 틈을 타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잠을 청하기도 하는 모습들이다. 자연 속에서의 2시간은 아마 학생들의 인생 중에 한부분이라고 기억되지도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받은 느낌들은 이들이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을 살아갈 때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한 모금 쉼이 되어 줄 것만 같다.

 


  우포늪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오후. 학생들은 오래된 폐교를 고쳐 학습관으로 쓰고 있는 생태학습관의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여치집을 엮었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모두 진지한 모습이다. 학생들 틈에 껴서 나도 한 개 만들었는데 기초를 잡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걸로 어떻게 곤충 잡을 생각을 했을까? 끝까지 선생님 곁에 남아 수제자를 자처하며 마무리청소까지 한 덕분에 예쁜(멀쩡한)여치집 모바일폰 악세서리를 얻었다. 돌아오기 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아지자’에게 선물로 주니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무척이나 좋아한다. 다른 한 팀은 바깥에서 솟대를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포생태학습원 화단 한쪽에 우뚝 솟은 8개의 솟대. 학생들은 다음번에 다시 왔을 때 정말 뿌듯할 거라며 벌써부터 감격에 젖는다.  

 


   탐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공식 탐사 일정을 하루 앞두고 밀양의 ‘표충사’로 향했다. 깊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표충사는 시원한 물소리와 짙은 녹음, 피어오르는 안개 때문에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일 처음 우리를 맞이해 주는 건 두꺼비, 사람들도 지나다니고 차들도 지나다니는 진입로를 마치 주인인 양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걷는 폼새라니…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길을 건너다 말고 돌아서 가까이 온다. 지켜보고 있던 내가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꺼비는 내가 놀라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 성큼 걸어오더니(나는 두꺼비가 사람처럼 성큼성큼 걷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보았다.) 낼름 긴 혀를 내밀어 먹이를 잡아먹는다. 그러고는 이제 볼일은 다 보았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뜬다.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두꺼비 지나간 자리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표충사에서의 상쾌한 아침을 뒤로하고 대전 연기군에 건설 중인 세종행복 도시를 견학하러 갔다. 녹지율이 80%를 넘는 생태도시를 만들겠다며 포부가 아주 대단하다. 학생들과 함께 행복도시에 있는 하천을 둘러보러 갔는데 얼마 전 까지 모래채취로 강 주변이 많이 침식되었는데 채취를 그만두자 자연적으로 복원되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하천 주변을 보호지역으로 묶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세종도시건설이 모두 끝나고 나서 보호지역 지정을 하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습지보호지역으로 정하고 도시를 건설하면 어떻겠냐는 말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쨌든 보호 할 거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잘 이해가 안됐지만 돌아가는 학생들 틈에 끼어 석연치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10박 11일의 모든 탐사가 끝나고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마무리 발표시간에 진솔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꺼내 놓는다. 탐사를 시작할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들이다. 멋진 프리젠테이션이나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용어들이 빠진 자리에는 학생들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마음속으로 감동한 그리고 머리로 생각한 경험들이 메꾸고 있었다. 비록 화려한 모습은 아닐지라도, 참여한 90여명의 모든 학생들이 환경운동을 위해 뛰어들진 못할 지라도 이 학생들은 이제 열흘 전과는 분명히 다른 눈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바라 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생명들을 돌아 볼 것이고, 우리의 무심한 작은 행동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고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 자연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며 우리가 곧 만나야 할 미래가 아직은 젊고 푸르고 싱그러울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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