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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은 철거하고 방조제는 교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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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한 무분별한 지역개발은 지역의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환경오염을 야기할 뿐더러 인간의 삶까지 위협한다. 개발과 환경은 이렇듯 극단적인 대립 구도 속에서 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러나 개발은 지역의 경제(산업구조)와 지역의 삶을 규정하며, 생활환경을 창조하는 중요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기도 하다(오쿠리, 2002). 그러나 이러한 개발의 내재적 요소를 인식할 겨를도 없이 난개발이 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있으며, 이 개발문제가 주민 생활의 지속성, 생태계, 문화재 등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와 환경이 경제발전이라는 하나의 목적 하에 속수무책으로 파괴되고 있는 새만금사업의 경우처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역의 자원을 생산기반으로 갖고 있는 경제구조일수록 개발문제는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며, 생존을 위협받는 주민들은 자신의 생존권을 찾기 위한 행동을 구체화시키게 된다. 하지만 모든 개발문제가 지역주민을 움직이게 하지는 않는다. 지역주민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은 주민들의 주체적인 학습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습은 역사적 현실 속에서 지역문제를 바라보는 성찰을 통해서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변혁’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주민 스스로가 문제해결의 주체자가 되고 현실을 변혁하는 구체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모리토모 요이치, 1995).

이 글은 일본의 신지호 나카우미를 방문한 기록이다. 신지호 나카우미는 국책사업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백지화시킨 사례로, 지금 신지호는 다시 해수를 유통시키는 공사가 한창이다. 개발문제를 지역주민들이 어떠한 과정 속에서 극복해왔는지, 결과적으로 간척사업반대 운동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었는지 살펴보자.

대규모 국책사업, 신지호 간척사업

히이천 신지호 나카우미 치수와 경제적 이용이라는 역사는 오래전부터 논의 대상이 되어왔다(호보 타케히코, 1989). 신지호로 흘러 들어오는 히이천 유역은 옛날부터 홍수문제로 고민을 거듭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히이천의 치수문제가 지역의 큰 과제 중 하나였다. 또 2차대전에서 패한 후 경제적인 어려움과 식량부족으로 허덕이던 사회적 배경 또한 간척농지 조성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신지호 담수화계획이 처음 발표된 시기는 1954년, 시마네현이 계획한 「히이천(斐伊川) 신지호 나카우미 종합개발계획」이다. 이 계획은 총 사업비 300억 원으로 다목적댐 건설, 히이천의 유로변경, 히이천(斐伊川) 신지호 나카우미에 각 5000ha 간척농지 조성과 신지호 나카우미의 담수화를 중심으로 한 사업계획이었다.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1963년 나카우미 간척사업에 국가예산이 책정되면서이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새만금 간척사업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간척지 사용용도의 의견이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국가는 어민들과의 어업보상협상에서 식량증산과 농업용수인 담수화 조성이 목적이었지만, 지방정부에서는 공업화로 인한 지역경제 살리기를 주요 목표로 삼고 공업단지 조성과 항만건설, 주택단지 조성 등등 간척용도의 개정을 요구해왔다. 여러 번 사업계획상의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나카우미는 나카우미 4분의 1에 해당하는 2,542ha를 간척하고, 신지호 나카우미의 담수화 조성, 주변농지의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정하고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지호 나카우미의 환경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방조제 공사완료로 인해 수질이 악화됨에 따라 주요 생산물인 재첩의 수확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어종이 사라지고 물고기가 죽어 물 위로 떠오르는 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업이 시작될 당시 정부는 “수질, 홍수, 재해, 지하수 고갈, 자연생태적 파괴와 주민생활에 대한 환경적 영향은 미비할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발표해온 것과는 달리, 수질오염과 해수 경로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삶에 실제적으로 피해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운동 승리 후 주민들이 민간환경연구소 설립

신지호 나카우미는 시마네현의 현청이 있는 마츠에시와 도토리현 요나고시에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 마츠에시가 관할한다. 마츠에시의 인구는 약 30만. 마츠에시의 절경으로 빼놓을 수 없는, 신지호로 넘어가는 석양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다. 또한 이곳은 물이 있는 풍경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이 개발사업으로 인해 아름다운 경관이 훼손되고 어업쇠퇴로 인해 지역경제가 쇠퇴하자 간척사업을 반기지 않는 지역민이 늘어났다. WTO 가입과 자유무역협정에 의해 식량증산이라는 목적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간척을 위한 기반공사는 1981년에 완료된 상태였고 이제 수문만 내리면 담수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어민과 시민들이 ‘수질악화’와 간척 후 ‘토지이용문제’를 놓고 정부에 재조사와 검토를 요구했다. 이와 동시에 시마네 대학 내에 기수지역연구센터가 설립되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사위원회와는 별도로 대학의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주민들과 함께 조사를 시작했다. 또 많은 지역에서 주민운동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지역의 언론사가 조사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주민의 약 70%가 담수화 사업을 반대했다고 한다(호보 타케히코, 2003).

이러한 결과는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회적 요구의 변화도 있었지만 긴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조사와 연구작업을 병행해온 지역주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1년을 기점으로 담수화반대운동을 시작한 17개의 주민단체들이 모여 「나카우미 신지호 담수화를 반대하는 주민단체연락회」가 1984년에 결성이 되었다. 1984년부터 85년까지 담수화중지요구 서명운동을 실시한 결과 과반수가 넘는 연안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냈고, 시민들에게 「시마네현 경관보전조례」를 직접 청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신지호 나카우미 간척사업이 중지되기까지는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간척사업의 타당성과 환경오염 문제를 제기했던 지역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988년에 사업을 연기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88년 5월, 이 사업이 중단된 후 반대운동에 참여해왔던 주민이 호수의 보전을 목적으로 1989년에 민간연구기관「(財)신지호 나카우미 기수호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미래의 주민(시민)운동은 과학적인 연구조사에 바탕을 두고 정부에 정책제언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 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기부금과 회비, 기업의 기부금, 신지호 어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연구소는 호수주변의 주민들에게 다급한 사안을 중심으로 한 주체적인 연구작업과 더불어 대학의 연구자, 지역의 생태전문가 등의 협력을 얻어 매년 수차례의 조사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조사된 정보들은 어민과 시민들에게 제공되며 의식계발과 보급을 위한 연구발표회, 학습회, 자연체험이벤트 등 또한 정기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는 연구소의 기관지인「기수호」, 연구연보「기수호연구」를 통해 시민에게 알리고 공유한다.

연구소는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1999년, 「5개의 공구를 간척농지로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수역으로서 어업으로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 농수산성의 검토위원회에 의해 종합평가가 시작되었을 때다. 기수역연구소에서는 평가결과를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연속강좌를 1994년부터 2000년에 걸쳐 13회를 개최했다. 위원회에서 제시한「농업플랜」과 「수산업이용안」을 중심으로 재정, 제도면, 수직, 생태계, 지역진흥의 관점에서 사업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간척사업과 지역개발에 대해 주민과 함께 생각하는 장을 만드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수문은 철거하고 방조제는 교각으로

신지호 나카우미의 재첩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전국의 지역 개발문제로 인해 기수역의 습지가 매립되고 담수화되면서 생산되던 재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지호에서 생산되는 재첩의 소비량이 늘어났고 현재도 전국 1위의 생산량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신지호 나카우미 간척사업이 중지되기까지는 지역주민들의 주체적 활동노력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호보 타케시, 2003). 이러한 지역 주민운동의 밑바탕이 되어준 생산기반(경제기반)은 신지호의 기수역에서 생산되는 특산물 재첩이었고, 마츠에시의 관광자원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민들이 자신들의 생존 권리를 위한 운동의 기반으로 이 자원을 활용했다는 데 있다.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정부에게 다시 돌려주었던 사례도 있었다.

지역을 개발로부터 해방시켰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유권자인 시민 대다수의 활동이었다. 지역 언론을 활용하고, 반대서명운동, 해상시위, 생태모니터링, 체험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등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으며 꾸준히 학습, 연구작업을 병행했다. 이러한 활동은,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자원관리와 환경보전에 적극 참여하게 이끌었다. 또한 지역 과제를 지역민들과 공유하기 위한 심포지엄,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주민대표, 연구자, 관련전문가, 환경운동가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수문은 완성되었지만 단 한 번도 바다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철거되었다. 방조제는 일부 구간을 터서 교각을 만들었으며, 그 밑으로는 해수를 유통시키도록 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 2005년 11월에는 신지호 나카우미를 람사에 등록시키기도 했다.

지금까지 주민을 기반으로 한 환경운동은 주민들의 요구가 충족이 되면 자연스럽게 소멸이 되거나 운동조직으로서 역할을 마치곤 했다. 그러나 신지호 나카우미 지역의 주민단체연락회는 잠시의 휴식 후 다시 움직이고 있다. 기수호연구소를 통해 신지호 나카우미의 환경오염을 감시하는 등 새로운 마을 만들기의 주체로서 거듭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환경연합에서는 2006년 4월 22일 새만금 갯벌 방조제 공사가 완공된 이후 매달 새만금과 관련된 소식을 모아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13호 새만금생명리포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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