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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새만금의 끝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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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는 대부분 희망으로 끝난다. 잠이 안와 애쓰던 토끼는 마침내 잠이 들고, 엄마를 찾아 나선 아기 곰은 엄마 품에 안긴다. 그래서 어린이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일을 평생 퍼 써도 모자라지 않을 ‘희망의 샘물’을 파주는 일이라 비유한다. 어린이 책 작가인 내게 이야기의 세계는 항상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런데 어른인 나는 현실이 절망적이라 느낄 때가 더 많다.

지난 일 년 동안 새만금을 놓고 벌어진 일들은 참혹했다. 새만금 소송이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물막이 공사로 방조제가 막혔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저서생물 모둠에 참여하고 있는 나는 물길이 막히고 바닷물이 들고 나지 않으면서 조개와 고둥, 게들이 차차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일 년을 지냈다. 말라 죽고 불어 죽고 숨 막혀 죽다가 겨울이 다가오자 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얼어 죽는 꼴을 보아야했다. 그나마 살아있던 것들은 도요새들의 먹이가 되어주었지만 11월에는 갯등에서 죽은 새들을 많이 보았다. 조사를 시작한 처음 2년은 아름다운 생명의 기운에 흠뻑 취해 즐겁게 돌아다녔는데 이제 죽음과 절망을 기록할 일만 남다니……. 얄팍하고 간사한 마음이 내게 들었다.

▲ (2006년 9월 2~3일 34차) 기록을 하고 있는 저서생물팀 실행위원이자 글쓴이 이성실 위원. ⓒ 한숙영
▲ (2006년 9월 2~3일 34차) 기록을 하고 있는 저서생물팀 실행위원이자 글쓴이 이성실 위원. ⓒ 한숙영

한 달에 한번 새만금을 찾아가 조사를 할 때도, 서울로 돌아와 생활 할 때도 나는 10년이든 20년이든 새만금을 기록하자는 약속을 괜히 했나 문득 문득 후회하곤 했다. 책임감은 스트레스를 낳는다. 스트레스는 어깨를 무겁게 하다가 우울로 변하고 우울한 마음은 병이 된다. 12월에는 결국 아파서 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조개가 죽어가는 게 슬펐는데 이제는 내처지에 갇혀 우울해하다니……. 참으로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 (2006년 10월 14~15일 35차) 어은리갯등에서 발견된 도요새 사체들 ⓒ 한숙영
▲ (2006년 10월 14~15일 35차) 어은리갯등에서 발견된 도요새 사체들 ⓒ 한숙영

그 즈음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상을 탔다. 한국환경기자클럽이 주는 2006년 ‘올해의 환경인상’이라니…….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부터 들었다. 새만금 갯벌은 죽어 가는데 우리는 상을 탄다고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새만금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 새만금에 모이는 사람들’이라 불리는 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아직 이름조차 불러 주지 못한 생명들이 깡그리 죽어가는 처지에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혼자 받는 상이 아니라 내색도 못하고 기쁜 척 자랑스러운 척 해야 했다. 상을 받는 계기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힘이 실리고 언론에 한번이라도 더 새만금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기를 기대해서였다.

▲ 지난해 한국환경기자협회 올해의 환경인상 수상식에 참여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들 ⓒ 문화일보 정희정
▲ 지난해 한국환경기자협회 올해의 환경인상 수상식에 참여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들 ⓒ 문화일보 정희정

포기하지 않고 움직이는 데서 힘은 생긴다. 1월에 참여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는 내게 다시 힘을 주었다. 세상을 꽁꽁 얼려버릴 기세로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지만 일상의 누추함과 고단함은 뒤로 한 채 사람들이 모였다. 마음속에 품었던 절망의 기운을 새만금에 다시 모인 동료들 앞에서는 절대 내보일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얄팍하고 간사한 것도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약간은 넘치게 활기찬 모습으로 새만금 여기저기를 다니며 기록하고 또 다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록해 나가자고 약속했다. 곁에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계속 참여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모두가 새만금을 잊은 채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곳으로 개발되는 상황은 얼마나 외롭고 참혹할 것인가 싶다. 절망이 극에 이른 상황을 상상하니 오히려 희망을 버리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 (2006년 5월 6~7일 30차) 염도를 측정하는 저서생물팀 ⓒ 한숙영
▲ (2006년 5월 6~7일 30차) 염도를 측정하는 저서생물팀 ⓒ 한숙영

▲ (2007년 1월 6~7일 38차) 내초도에서 새들의 수를 세는 물새팀 ⓒ 한숙영
▲ (2007년 1월 6~7일 38차) 내초도에서 새들의 수를 세는 물새팀 ⓒ 한숙영

약간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 듯하다.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사독재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세대다. 어리석은 흐름과 무기력으로 암담한 시절이 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직접 경험한 행복한 세대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만금에 갈 생각이다.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라도 새만금이 살아있는 것을 함께 축하하며 개발의 광풍이 불던 지금을 옛이야기 하듯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아니라면 다음 세대가 나서서 우리의 기록을 토대로 새만금을 복원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남아있다.

며칠 뒤에 새만금에서 만나던 반가운 얼굴들이 우리 집에 모인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세 번째 백서를 내기 위해 지난 해 열 두 달의 기록을 편집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제 거창한 고민은 멀리 던져버리고 저녁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 즐거운 고민을 할 참이다. 따끈한 밥과 국, 잘 익은 김치, 술과 과일……. 맛있는 것 함께 먹으며 즐겁게 일해야지 싶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나면 희망이 성큼 내 곁에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 올해의 환경인상을 받을 때 신문에 난 기사를 다시 읽어본다. 칭찬이 아주 달콤하고 뿌듯하다.

‘그 뒤 이달까지 만 3년 동안 이들은 강풍이 불고 큰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새만금 개펄에 모였다. 그 사이 새만금 소송이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끝나는 등 새만금 간척사업은 점점 되돌리기 힘든 방향으로 치달았지만 이들의 새만금 행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이렇게 조사 때마다 30여명 안팎의 시민들이 참여한 결과, 지난 3년 동안 시민생태조사단에 참가해 새만금을 다녀간 사람은 800명이 넘는다.’

※ 이 글은 매월 22일에 발행되고 있는 ‘새만금생명리포트’ 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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