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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넘나드는 저어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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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렬
박사님(60)께서는 현재 일본 동경에 있는 조선대학교에 재직하고 계시며, 1986년부터 북한에서 저어새 연구를
시작하신 저어새 번식 연구의 권위자이십니다. 경남 김해가 고향이시지만 북한 국적으로 인해 내내 한국에 오지 못하시다가
지난 2003년 여름 남북환경포럼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때 환경연합도 방문하셔서 활동가들도 만나시고 환경연합의 저어새보전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2006 홍콩 저어새 국제 심포지움에서 다시 만난 정박사님께서 남기신 소망은 ‘남한의 저어새 번식지를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조류전문가인 정종렬 씨의 국경을 넘나드는 연락으로 이산가족 만나다.

이 모든 것들은 18년 전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정종렬 씨는 한 장의 새 사진이 100년간 밝혀지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 자신을 그 분야의 최고가 되게 하고, 심지어 한국전쟁 때 헤어진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을 그가 돕도록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평양 김일성 대학교에서 얻은 그 사진은 멸종위기에 처한 저어새의 사진이었다.

“당시 저는 저어새 전문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 사진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 되리라는
생각을 못 했죠.” 코다이라의 서쪽 근교에 있는 동경 “조선 대학교”의 생물학 교수로 있는 정종렬
씨가 말했다.

정 교수는 1985년에 있었던 조류 전문가들의 회의에 참석해서 그 사진을 별 생각 없이 발표했는데,
일본 야조회 회원과 과학잡지 뉴튼의 기자도 그 발표를 듣고 있었다.

▲일본 다마동물원내의 저어새. 북한에서 일본에 기증한
것이다. 정종렬박사가 방문자들에게 저어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북한 서해안에 있는 어미 저어새가 새끼 저어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담은 그 사진을 보고 놀란 조류
전문가들은 정 교수에게 저어새의 번식지로 알려진 것은 100년 전 중국의 기록이 전부라고 말해 주었다.

1985년 당시 세상에 남은 저어새는 660마리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2000마리가
안되면 멸종위기종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660마리는 멸종위기 중에서도 위기인 것이다.

한반도와 일본, 타이완, 홍콩, 그리고 베트남을 오가는 저어새 보전에 대한 연구는 당시 저어새
번식지에 대한 자료 부족으로 중단된 상태였다. 더욱이 이들 나라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 또한 이 귀한 새를 보호하는 데 장애물이었다.

조류학의 세계에서 오래도록 침묵하고 있는 북한은 그 사진을 동경 조선대학교에게 보내어 저어새가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호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동경 조선대학교는 조총련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아마도 주체사상이 정기적으로 연구되는 일본 내
유일한 학교이다.

1985년의 역사적인 회의 이후, 58세의 정 교수는 조용히 저어새의 전문가가 되었으며, 일본,
중국, 북한, 남한의 저어새 및 여타 멸종위기종 조류에 대한 전문가들 사이의 연락이 시작되었다.

국제적인
보호단체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 아시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저어새 조사 작업을 정 교수가 이끌어 가고 있다.

저어새 보전에 관한 연구는 1985년 회의 이후 시작되었다.

1987년에 북한은 “북조선 일본 철새 공동 심포지엄”에 조류학자를 보냈으며,
그 후 이 심포지엄은 매 4년마다 한번씩 열리고 있다.

북한의 과학원 소속 교수와 일본의 동경대 소속 교수, 그리고 정 교수가 함께 철새에 대한 논문을
1992년에 공동으로 발표했는데, 북한과 일본 간의 과학 교류로서 이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폐쇄사회인 북한에 대한 동정은 잘해봐야 회의를 낳을 뿐 나쁘면 차별까지 받게 하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정 교수의 새에 대한 사랑과 북한과의 관계는 오히려 성공의 비법이 되고 있다.

“제 경우 북조선과의 인연은 저한테 호의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제가 여기 조류학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지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제가 북조선과 긴밀한 접촉을 한다는 것입니다.” 두 자식의 아버지이면서
연구 목적으로 북한에 최소한 18번 이상을 다녀온 정 교수가 말했다.

정 교수처럼 아직도 북한에 대해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내 북한인들이 북한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1950년대에 일본에서 조선인 학교를 세우도록 도와주었던 북한 정권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정 교수는 그 자신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들 또한 남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북한을 조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 교수의 부모들은 한국 전쟁이 끝났을 때 남한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들은 살림살이를 모두 싸서 먼저 남한으로
보냈지만, 불행히도 이 짐들은 바다에서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가족은 남한으로 가는 대신 일본에 남기로 결정했다.

조총련 사회에서 지도자로 떠오른 정 교수의 아버지는 그 아들을 조총련 학교에 보냈다. 동경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모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30년 넘게 가르치고 있다.

▲1994년 재일조선학생문예대회에서 중급 1등에 당선된 학생의 작품 ‘저어새가
날아든다’

하지만 민족주의니 정치니 하는 말들은 생의 대부분을 강단과 조류 사육장에서 보냈던 정 교수에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남조선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 아니면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정치에
대해서 거의 얘기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 도와 주려고 나서는 것을 볼 때마다 늘 감동합니다.”

정 교수의 대학 내 사육장에서 그의 학생들은 여러 종류의 새들을 돌보고 있는데, 이 중에는 북한에서
보내온 새끼 저어새도 있다. 정 교수가 새끼 저어새에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앞뒤로 흔들다보면 새끼 저어새는 안정을 되찾고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많은 일본인 연구자들도 이 조류 사육장을 찾는다고 한다. “일본인으로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계속 옵니다.” 최근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이 개최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약
50여명의 일본인 연구자들이 이 학교를 찾았다면서 정 교수가 말했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고
합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언제나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하지만 학문적인 성취에서 얻는 만족감도 30년 넘게 헤어진 가족이 재결합하는 것을 보는 기쁨에
비하면 별 게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남한의 조류학자인 원병오 씨가 1966년 일본과 남한의 신문 머리기사를 장식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표식을 붙여 날려 보낸 새를 북한에 있는 조류학자인 그의 아버지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남한의 아들도, 북한의 아버지도
서로의 생사여부를 알지 못한 상태였다. 정 교수가 이 신문기사를 읽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1987년에 원 교수는 어느 국제 조류학 회의에서 정 교수를 만나고는 호텔 메모지에 황급히 적은
편지를 정 교수에게 건네주었다. 이 편지는 북한에 있는 조류학자인 원 교수의 조카에게로 전해졌다.

“그 분은 저를 만나면서 긴장된 모습이었어요. 누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씀까지 하셨죠.” 정 교수가 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남한 사람이 일본 조총련 회원과 접촉을 하면 남한에
돌아가자마자 간첩 혐의로 체포될 수 있었다.

정 교수가 그 편지를 원병오 교수의 조카에게 건네주자 평양에 있던 그 조카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북한의 그 학자는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가 남한에 살아 있음을 30년 만에야 확인했기 때문이다.

2년 후 그 가족은 캐나다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제 지난 일들을 돌아보건대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 바로 그 가족의 재회를 도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정 교수가 말했다.

※ 이 글은 2003년 6월 14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에 특별 기고 형태로 실린 재일 북한 조류학자
정종렬 교수님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 환경연합 국제연대 자원봉사자 장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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