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새만금 갯벌 정원에 도요새 풀어놓고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한시름 놓고 쉬었다 가세

휴가철 특집으로 마련된 전례 없는 2박3일의 일정이었습니다. 대망의 첫날인 8월 5일, 스무 명 남짓의 조사단원들이 저 멀리
부산과 목포, 서울 등지에서 삼삼오오 모여들어 서천군 월포마을 매바위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송림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곧이어 습지해양보전팀 선영 간사님과 김경원 국장님의 두 손으로 직접 배달되어 온 속 빨갛고 얼음같이 시원한 수박 파티 개시.
달짝지근한 수박물에 목을 축인 단원들은 망원경을 꺼내 수 백 미터 바깥의 물새떼를 쉬엄쉬엄 들여다보기도 하고 디스커버리 채널에
나왔다는 날개 길이가 3m나 되는 아마존 독수리 얘기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쏟아지는 뙤약볕에 망설이던 예닐곱 사람이 굳은 결심을 하고 맨발로 갯벌 산책을 나선 것이 오후 두 시쯤 되었을까요? 모래밭은
뜨거워서 발가락도 못 댈 지경이었지만, 얼마 전까지 바닷물에 잠겨 있던 서늘한 개펄에 발목을 담그자 솔솔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오히려 등골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었습니다.

넓은 등허리를 인간들의 발밑에 내어준 갯벌은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습니다. 갯벌 위를 걷던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으면
휘휘 몰려다니는 자유로운 바람의 소리만이 귓전을 때립니다.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자 동죽이며 맛을 캐는 동네 아낙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잠시 후, 간조가 끝나고 물이 해변으로 밀려갈 시간이 되었는지 아낙들은 바쁜 손을 멈추고 자신들을 데리러 온 경운기에 보트를
매달기 시작합니다.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찬 길죽한 맛들이 아무 소리 없이 보트에 실려, 경운기에 옮겨 탄 아주머니들의
뒤꽁무니를 바라봅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줄어든 소득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곳 새만금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분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탈거리며 지나가는 경운기에 대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들은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며 웃어줍니다.
조사 첫날은 이렇게 조사 아닌 피서로 하루를 다 보냈습니다. 드넓은 새만금을 앞마당 삼아 야생의 도요새 무리를 풀어놓고 통 크게
보낸 피서였습니다.

관찰하며 배우는 물새팀

전날 푹 쉰 덕분에 둘째 날 아침에는 8시도 채 안 된 이른 시각에 조사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서생물팀, 문화팀, 식물팀, 물새팀의 4개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조사지로 흩어졌습니다.

물새팀의 일원으로서 처음 찾아간 곳은 멍에섬이 바라보이는 내초도 갯벌이었습니다. 물새팀은 물새의 ‘ㅁ’도 모르는 완전 초보반
3인과, 전방 5백 미터 바깥에서 날아가는 도요새가 청다리도요인지 큰뒷부리도요인지를 한눈에 알아맞히는 초인적인 실력의 심화반
2인, 그리고 새와 습지에 관한 상식을 꿰고 있는 중고급반 3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부산사투리가 너무 귀여운 어린 자매
채연이, 서연이는 흙장난으로 청국장을 끓이느라 새 볼 틈도 없이 바빴어요.

서너 번 장소를 옮기면서 주로 관찰한 것은 도요새 떼였습니다. “북으로는 알래스카, 남으로는 호주까지 마도요 한 마리가 30cm
길이의 작은 몸을 이끌고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거야.” 중고급반의 선영 간사님이 설명해주었습니다. 심화반의 김경원 국장님이 수첩을
꺼내들고 열심히 도요새 종류 구분하는 법, 부리 모양이 다 다른 이유를 침 튀기며 알려주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다크호스인
대학원생 오동필 씨는 갯가에 앉은 새의 종류를 체크하고 마릿수를 세고 있었습니다.

[물새팀
상식백과] 1백 미터 바깥에서 도요새 구분하는 법


1백 미터 이상 떨어진 곳의 사물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찾는 도요새는 그 종류만 해도 50여종
이상이며 색깔과 모양도 초보자들에겐 알쏭달쏭 비슷하기만 하다. 물새팀의 탐조 전문 시민들이 이들을 척척 구분해내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첫째, 부리가 굽었는지 펴졌는지를 본다.


둘째, 부리와 머리의 비율을 파악한다.



한편, 종류에 상관없이 새끼는 부리가 짧고 암컷은 더 길다.

셋째, 안 보여도 좌절하지 않고 틈날 때마다 계속 본다.

우리의 눈은 생각보다 먼 곳까지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현대인의 눈이 짧은 거리의 사물을 분별하는 데
익숙해져서 잠재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있을 뿐. 물새팀의 몇몇 이들이 수백 미터 바깥의 청다리도요와 마도요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년간에 걸친 훈련 덕분이다.

글, 그림/미루

이렇게 달마다 조사한 새의 종류와 마릿수를 가지고 새만금 물새떼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 우리 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의 공식적인 역할이지요.
시민생태조사단 활동 1주년 기념으로 지난 6월 발간된 자료집을 보면, 비록 아마추어 조사단이지만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고 자세하게
새만금의 자연과 마을을 관찰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3박4일간 두 발로 새만금을 가로지른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는 교사 모임>의 선생님, 학생들과 짧은 해후를 가지며
시원한 미숫가루를 얻어먹기도 하고, 한 학생이 등에 써붙인 “방조제를 부숴주는 센스!”라는 문구에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구수한
된장찌개로 저녁밥을 먹으며 새로 발견한 현상, 인상 깊었던 점들을 가지고 삼삼오오 수다를 떨었습니다. 저녁 6시, 어느새 헤어질
시간입니다. 기운차게 손을 흔들며 집으로 가는 차에 각자 몸을 싣습니다.

열린 시민생태조사단을 향하여


▲ 붉은 칠면초가 넓게 펼쳐있는 화포염습지 진봉갯벌

중요하고 공적인 얘기가 오가는 시간은 언제나 첫날 저녁입니다. 지난밤에도 어김없이 조사단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달 조사 발표회를 가졌지요. 95년만에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진 ‘개정향풀’을 발견해 화제가 된 우리 식물팀 단원들이 어깨에
힘 좀 주셨구요, 요사이 극성을 부리는 칠게잡이야말로 방조제 건설 이후 시작된 새만금의 지형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만나는 하구에 포진해있던 모래갯벌이 3km에 이르는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바다와 차단됨에 따라
점차 뻘갯벌로 변하고 있으며, 그래서 뻘갯벌을 집으로 삼는 칠게의 수가 급증한 것이라구요.
이런 심각한 얘기 중간중간에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웃음을 터트립니다. 벌써 스물한 번째 맞는 조사. 대부분의 단원들은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해온 새만금 동지들입니다. 마침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서 온 교수님과 학생들이 이날 저녁 발표회에 참석했다가, “웃으면서 재미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어요. 끈끈한 유대감과 유머감각이야말로 우리 시민조사단의 힘이지요. 하지만 그늘 없는 양지는
없지요.

기존 단원들 사이의 유대감은 지키면서, 새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더욱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누구라도 가족처럼 편하게 왔다갈 수 있는 열린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구요. 그래서 다음 번 9월 모임부터는 서로 의견을
터놓고 얘기하는 나눔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조사를 열심히 진행한 보람도 보람이지만, 의무감에서 벗어나 갯벌의 여유로운 품을 느낄 수 있었던 첫날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가을 새만금은 또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요? 살아있는 새만금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미니인터뷰]
“탁 트인 갯바람에 중독됐어요.”
– 물새팀 박은주 선생님(부산 명륜초등학교 교사)


▲ 박은주 선생님과 귀여운 자매, 두살차이 채연이와 서연이

“세 번째 오니까 이제야 나도 ‘조사단’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부산에서 새만금까지 차로 꼬박 다섯 시간. 일곱 살 채연이와 다섯 살 서연이, 두 딸을 데리고 오는 길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망원경 앞에 선 그녀의 표정은 밝다.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는 교사 모임>의 습지탐방을 통해 올 초 처음 찾았던 새만금은 상처로 얼룩진 땅이었다.
방조제 위에서 내려다본 꽉 막힌 갯벌.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막히고 마음이 괴로워서 아예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그때 결심했다. 새만금의 다른 모습, 살아있는 모습을 보러 다시 오겠다고.

“시민생태조사단은 방조제가 아닌 하구의 새를 보러 오잖아요. 새들이 속한 갯벌과 습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물새를 좋아하는 데에도 단계가 있나 봐요. 처음엔 안내해주시는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고, 다음엔 열심히
적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현장에 직접 와서 마음으로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산 지역 습지 보호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통해 ‘습지와 조류 생태 안내자’ 교육을 받고 있는 박은주
선생님은 습지 중독 초기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얼마 전에는 문득 갈대 소리, 물새 소리가 듣고 싶어 무작정 차를 잡아타고
순천만에 다녀왔단다. 그곳에서 거친 갯바람을 맞으며 큰뒷부리도요와 마도요 떼를 만났을 때의 가슴 벅찬 감동은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된다고.
두 딸 중 하나는 반드시 생태활동가로 키우는 게 요즘 그녀의 남모르는 꿈이다. 삼 세 번째에 겨우 정이 든 시민생태조사단,
개학을 맞은 다음달에도 탈 없이 올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녀와 물새팀 모두의 바람이다.

admin

(X) 습지 해양 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