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가락지로 맺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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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끼워주는 가락지. 이 한 쌍의 고리는
예로부터 남녀가 서로를 신뢰하고, 백년을 함께 하길 약속하는 징표였다. 지금도 가락지는 오색빛깔, 다채로운 무늬를 자랑하는
반지로 거듭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인간은 ‘만남과 약속의 의미가 있는 가락지’를 새에게 끼워주기 시작했다. 특히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에게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또 만났을 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새들의 얇고 가는 발목에 맞는 유색가락지를 선물했다. 그렇게
신비에 쌓여 있는 철새와 멋진 인연을 맺었다.
가락지는 인간이 새에게 주는 약속의 선물인 만큼 그 방해정도를 최소화시키고,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진다. 인간과 새를 이어주는
이 가락지는 이동하는 새의 생태를 더욱 정확하게 연구·조사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새가 이동하는 지역간의 국제적인
협력과 보호활동에 끈을 만들어 주고 있다.

▲ 저어새 번식지인 석도 비도에서 번식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어미 저어새와
어린 저어새 무리들.ⓒ 박종학

잊지 않고 고향 찾은 3년생 저어새, K36과 K38

지난 5월 31일 흐릿한 바닷바람 저 멀리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서해안 비무장지대의 작은 섬, 비도. 비도는 바로 옆 석도와 함께 전 세계 1400여 마리 남짓한 멸종위기
저어새들의 번식지로 알려져 있는 조그만 무인도이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저어새들 무리 사이로 유색가락지를 단 저어새
K-36과 K-38 두 마리가 오전 11시 30분경 환경운동연합 저어새 조사팀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날 발견된 K-36과 K-38은 지난 2002년 6월 석도·비도에서 진행된 ‘저어새 가락지 부착활동’에서 환경운동연합 저어새조사팀과
한국교원대 김수일 교수 연구팀으로부터 유색가락지를 선물 받은 저어새들이었다.
그때 그들은 비도에서 부화되어 태어난 지 2~3주밖에 안된 어린 새였으니, 지금은 만 3년을 꽉 채운 청년의 저어새들. 건강하게
자라나 자신들의 고향인 비도를 다시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기억하고 여기까지 다시 왔니. 인간의 목소리도,
기계의 움직임도 없는 이곳이 너희들을 품었던 둥지가 있던 그 곳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참 신기하다. 그 때 가락지를 달고
우리와 했던 재회의 약속을 잊지 않은 것이니. 반갑구나. 저어새야.’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 저어새
두 마리를 향해 저어새 조사팀 일원들은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K36과 K38에게 가락지를 달아주었던 한국교원대 김수일 교수는 “어린 저어새에게 가락지를 달아 주었을 때 앞으로 다시
만나면 이 친구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생존율이 어떻게 되는지, 번식나이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오늘 이 두 마리의 저어새를 발견함으로써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저어새가 둥지를 떠난 몇 년 뒤에도 다시 똑같은 곳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기쁨에 벅찬 목소리로 발견의 의미를 설명했다.
환경운동연합 저어새 조사팀 김인철 씨는 “저어새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기억하는 것 같다. 나고 자라던 환경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5년 차가 되면 번식할 수 있다고 하는데, 3년 생인 이들은 번식하기 위해 비도를 찾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K-36은 2002년부터 매년 저어새의 월동지인 대만
쩡원강 하구에서 관찰된 바 있고, K-38도 지난해 대만 쩡원강 하구 치쿠습지에서 처음으로 관찰되었다. 결국 번식지에서 가락지를
단 어린 저어새가 월동지에서 발견되고 또 다시 번식지에서 발견됨으로써 보통 저어새가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근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1마리의 어린 저어새에게 가락지 달기
성공, “다시 만나자 우리”

▲ 서해안 비무장지대
중 무인도 석도로 들어가 저어새 번식지 조사와 가락지 부착 활동을 하고 있는 조사팀.(아래사진 photo by
Kim, soo-il)

이날 환경운동연합 저어새 조사팀은 비도에서 K36과 K38을 발견한 기쁨을 잠시 뒤로하고,
석도에서 가락지 부착 활동을 시도, 11마리 어린 저어새에게 가락지를 선물하는데 성공했다. 2002년 6월 석도·비도에서
8마리의 어린 저어새에게, 그리고 지난해 구조된 온누리에게 K-39 가락지를 달아준 이후 세 번째이다.

환경단체 활동가와 학계 전문가 등 민간차원의 일원으로
이루어진 조사팀은 최소 방해를 위해 대표로 4명을 구성해 고무보트를 타고 저어새 둥지가 있을 석도로 향했다. 조심스레 섬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가락지 부착 활동을 준비했다.

특히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열린 2005 저어새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대만·일본·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저어새 연구가, 학자, 보호운동가들 30여명은 조사팀과 동행하면서 배를 타고 가락지 부착 활동을 지켜보았다. 비록 접근이
어려워 배 위에서 쌍안경으로 관찰하며 의견을 나누는 정도이지만,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지혜와
힘을 모아낸 의미있는 가락지 부착 활동이었다.

약 2시간 가량의 짧은 시간 내 4명의 대표들은 석도와 비도의 둥지 수, 저어새 개체수, 번식 상황 등을 파악하고 11마리의
어린 저어새에게 K-40에서 K-50까지 번호가 적힌 유색가락지를 달아 주었다.

조사팀 김인철 씨는 “주황빛의 작고 뭉툭한 부리, 검은 눈동자에 옅은 회색빛 솜털을 가지고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 저어새들에게
가락지를 달아 주는 작업은 온 감정이 교차하면서 이루어졌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 가락지 부착 활동에 참여한 한국환경생태연구소 이기섭 박사는 “지난해 석도에서 16개, 비도에서 2개의 둥지가 발견된
것에 비해 올해는 석도에서 12개, 비도에서 6개의 둥지가 발견됐다.”면서 저어새의 번식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곧바로 가락지
부착 성공 여부를 알렸다.

총 둥지 수가 18개로 지난해와 올해가 같은 상황이므로 1쌍(1개 둥지)의 저어새 부부가 새끼 2~3마리씩 번식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면, 예년에 비해 번식률이 나쁜 편은 아니다. 이 중 11마리의 새끼 저어새가 이번 가락지 부착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유색가락지를
달고 성장하게 되었다. 이 새끼 저어새들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그 자리에서 또는 월동지인 대만, 홍콩,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교원대 김수일 박사는 이날 조사팀과 함께 한 각
국의 저어새 연구가, 보호 운동가들에게 “만약 월동지로 돌아가 K40에서 K50까지 가락지를 단 저어새가 관찰되는지 더 잘
살펴 봐달라”고 당부하면서 어린 저어새들이 월동지까지 무사히 이동하길 희망했다.

저어새의 얇은 발목에 끼워진 유색가락지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중국, 일본, 베트남, 홍콩 등의 동아시아 나라를 잇는다. 각 나라들은 가락지를 단 저어새를 또 다시 만나길
간절히 바란다.
가락지 부착활동으로 국제적인 협력에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과학적인 사실을 공감하면서 저어새 이동경로의 비밀을 벗겨낸다.
인간과 저어새는 가락지로 그렇게 조화로운 인연을 맺어가고 있다.

글/ 사이버기자 조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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