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항해일지-⑨]”저를 살려줄 사람들 인줄 알고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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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의 마지막 날.
부산항 입항을 이틀 앞두고 있다.
환자가 속출했다. 선상생활에 익숙하지 않는터라, 감기와 몸살을 돌아가면서 한차례씩 앓는다. 게다가 새로 명명한 ‘쌍안경병’까지
얻어서 안통과 두통이 극심하다.
쌍안경 병이란, 오랜시간 눈을 혹사한 끝에 생긴 눈 아프고 머리 아픈 병을 말한다. 시력도 혼돈을 일으켜 쌍안경을 내려놓아도
잠시동안 계단이 살아 움직이는 등 적응을 못한다. 어제는 드디어 몸살이 심해져서 약 먹고 닭장안(좁은 침실칸)에 누워서 머리로
할 수 있는 온갖 청승(예를 들면 이대로 열이 올라서 오늘 밤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수장시켜 달라고 유서라도 써야되는 거
아닐까. 사람이 죽으면 ‘폐기물’이 되니, 바다에 던지면 처벌 받으므로 안되겠구나. 우리 엄마는 얼마나 슬퍼할까…등등)을
떨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덕분에 항해일지도 못썼다.

▲야생의 고래를 만나는 감격적인 순간

항해가 열흘을 넘어서자 다들 조금씩 지켜가고 있다. 서로 짜증을 내지 않기위해 애써 굳은 표정을 감추려 한다.
모두가 고맙다. 잘 버텨주는 막내 삼순이(올리버)도, 영상팀도, 얌전한 ‘마님’도 돌쇠처럼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에 저장된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을 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국적불명의 식사에 대한 불평도 높아지고 있다.

오전 해양경찰청과 통화.
항로와 항해위치 등을 묻고 안전운행을 점검한다.
배에서 내리면 작은 감사의 마음으로 남해안의 멸치라도 선물하고싶다고 했더니 다들 웃었다.

저를 살려줄 사람들 인줄 알고 온 것일까. 어제는 이 와중에도 기름에 깃털이 젖은 갈매기를 한마리 구조했다.
날지를 못하고 배의 갑판 위 밧줄에 앉아 있는 것을 리비가 데려와 모두들 기름때를 제거하느라 애를 썼다. 놀랬는지 노란 주둥이로
콕콕 쪼아대는 갈매기를 달래는 리비의 모습이 꼭 새엄마 같다. 운좋은 녀석 갈맥군은 지금까지 선실에서 잘 보호되고 잘 쉬고
있다.
내일은 날아갈 수 있을것이라고 한다.

배는 동해 포항에서 선상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먼바다로 가까운 바다로 횡행하며 고래관찰을 계속하고 있다.
고래가 발견될 때마다 꺄악 꺅 소리를 지르는 것이 유명 가수의 공연장에 나온 여학생들 같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작업에 열중중인 그린피스 활동가들

어제는 육지에서 고래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던 짐이 다시 배로 합류했다. 덕분에 선상이 조금 더 시끄러워졌다.
선원들은 오늘도 여지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선배들이 가르쳐주는대로 신입 자원봉사들은 훈련을 받고
작업에 임한다.
이배에는 여성일 남성일이 전혀 구분되어 있지 않다. 20여 미터 높이의 돛대도 안전띠를 매고 기어오르고, 카타리나는 맨발로
갑판을 누비며 기름칠도 한다.
다들 정해진 위치에서 하루하루 잠시도 쉴틈이 없다. 마치 군대생활 같다.
50년도 더 된 이배는 아마 앞으로도 50년은 끄떡 없을 듯 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이 항해의 마무리 일지를 올리게
될 것 같다. 시원섭섭하다.

<선상 인터뷰-④> 고래를
위해 살다-해양생물학자 ‘리비에어'(Libby Eyre)

‘리비’그녀는
참 작다. 서양인 답지 않게 자그만 몸매와 키를 가졌다. 호주출신의 해양생물학자. 서른 일곱인데도 얼굴도 조그만해서
꼭 소녀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고래 사랑은 너무나 크다. 마치 그녀가 태어난 사명과도 같다. 고래관찰에 참여한 한국측 팀원이
새벽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그녀가 벌써 뱃머리에서 쌍안경으로 바다를 살피고 있다. 오는 토요일, 부산항에 입항하면
한국에서의 고래관찰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간다. 그린피스의 비상근 활동가인 셈이다.
리비는 고래를 조사한지 20년차의 베테랑으로, 이번 한국행도 직장(맥콰리대학 박물관 큐레이터)에서 휴가를 얻어
고래조사차 왔단다.
침팬지의 대모 제인구달이 있다면 고래들의 대모 리비에어를 공중파에서 볼 날도 멀지 았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고래관찰에 참여해보니 노동강도가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든다. 리비는 힘들지 않나.
힘든것은 사실이다. 처음 고래관찰을 시작했을 때는 눈과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숙달되다보면
괜찮다. 직업의식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얼마나, 어느지역의 고래를 관찰해왔나.
1985년부터 시작했으니까 20년전부터 했다. 인도양의 고래관찰을 많이 했었고, 호주에서 인도양을 거쳐 지중해까지,
모리셔스에서 싱가폴, 통가, 호주 등에서 관찰했다.
아주 어릴때 도시에서 태어나 바닷가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부터 돌고래를 비롯한 고래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이 몹시
궁금했다. 힘든일이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고래를 찾아서 대양을 누비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래와의
해후를 꼽자면.

작년, 통가에서 고래조사를 할때였다. 마침 고래생태관광 프로그램이 있어 물속까지 에코가이드를 하는 중에 굉장한
경험을 했다.
몇사람들과 바닷속으로 내려갔을 때, 어미와 함께 쉬고 있는 혹등고래를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새끼고래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한쪽 팔(지느러미)로 끌어당겨 배위에 올리고는 지느러미로 꼭 감싸고 한바퀴 구르고는 슬며시 놓아주었다.
졸지에 고래에게 안겨버린 셈이었다.

무섭지는
않았었나.

전혀. 다만 놀랍고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나중에 함께 물속에 내려갔던 관광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서 조금 더 놀랐다.
어미고래는 새끼고래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고, 새끼고래도 나를 안고 한바퀴 구르는 동안에도
카메라를 의식한듯 바라보면서 행동 하는 것이었다.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리고 어떤 교감이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가끔 힘들때마다 그때 그순간을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우리나라 연안의 고래관찰과 함께 해양환경도 함께 둘러보았는데 어떤가. 특히 동해는 과거에 경해라고
불렸을 정도로 고래가 많은 바다였다.

고래가 다시 돌아와 살기에는 너무나 위협적인 요소가 많았다. 잦은 혼획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좁은 해역에서 이렇게
과도하게 밀집된 어로행위를 어떤 나라에서도 본일이 없다. 밀집해 있으면 어자원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나도 다시 한국의 동해가 경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해양학자 특히 고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사람들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래나 돌고래를 그만 죽이자는 말을 하고 싶다. 고래는 해양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이기도 하지만 해양생물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척도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고래에 관한한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비록 사라져가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귀신고래나 J-개체군으로 구별되는 한국의 밍크고래, 특히 참돌고래나 상괭이는
한국고유의 것이다. 호주나 미국등에는 없는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고래와 함께 하는 삶을 살것인가.
그렇다.나는 천성적으로 그렇게 태어난것 같다. 그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직 너무나 많고, 그들을 돕고싶다. 그린피스와도
고래보호 활동을 계속할것이다.
그린피스를 신뢰한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통역/ 안치현
글/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윤미숙 위원(거제환경연합)
사진/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이성수 위원(월간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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