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항해일지-⑧]수면위로 솟구치는 감동의 물결, 긴부리참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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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고야 말았다.
고래관찰에 나선지 아흐레째. 오후 세시 삼십 분경 동해안 울진 앞바다 ‘왕돌초’ 남쪽 3마일 해상에서 우리는 기어이 돌고래떼와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그보다 앞서 오전 열한시 삼십분에 4m급의 밍크고래를 잠시 만났으나, 그야말로 순식간에 빛나는 검은 등을 보이고는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두 입맛만 쩝, 다셨다.
검은콩과 노랑콩이 나란히 메뉴로 올라오자, 오늘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메주 쑤나 보다고 투덜대며 점심을 먹고 모두가 선장실
앞 갑판에 올라 바다를 주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전방에 정어리떼라도 몰린 것일까. 갈매기떼가 수상하게 모이는가 싶더니, 심상찮은 물보라가 튀기 시작했다. 쌍안경을 들이대며
모두가 동시에 환호성을 지른다.
엄청난 돌고래떼였다. 사방에서 물보라가 튀어 오르고 갈매기도 덩달아 신이 나서 날아오르고,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기로 유명한 돌고래들은 이내 이 수상한 배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불원천리 달려온 배라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뱃전 가까이에 모여들어 누가 누가 빠르나 경주가 시작되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살펴보니 그들은 ‘긴부리참돌고래’ 무리였다.
약 2,3백 마리쯤 될까.
보트 가까이 다가온 돌고래들은 예의 그 날렵한 몸매자랑을 시작한다. 수면위로 솟구치는 점프, 점프, 점프… .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탄성이 터진다. 바쁘게 돌아가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들.
한 시간 가까이 우리는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빙 둘러싸고 멀리서 가까이서 솟구치는 돌고래 무리와 함께 푸른 동해의 물살을 가르며
유영했다. 솟구칠 때마다 잠깐잠깐 눈이 마주친다. 그들도 우리는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오늘 느낀 것인데 돌고래의
동그랗고 상냥하게 생긴 눈은 우리의 야생 조류 ‘붉은 오목눈이’와 닮았다.

▲오늘 동해안 울진 앞바다 왕돌초에서 촬영한 긴부리참돌고래

행복했다.
생생한 야생의 기쁨으로 꽉 찬 푸른 느낌. 돌고래떼와 조우한 그 시간 우리는 몸과 영혼이 모두 가벼운 한 개의 깃털이 되어
지극히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몰했던 것 같다.
더불어 며칠동안의 목마른 기다림과 피로와 짜증이 한꺼번에 씻겨버린 것이다. 선상에서 ‘분위기 평가위원회’ 회장격인 문선생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내가 병원 문 닫고 고래보러 간다 카이, 나보고 머리가 우예된기 아니냐꼬 카더마는 지금 생각하이께네 내사마 그
사람들이 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구마는!”
병원을 문 닫아서 잃는 수입보다 훨씬 더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란 뜻이렸다.

모처럼 조사원과 취재원들의 얼굴에도 함박 웃음이 봄날 들꽃처럼 번진다.
저녁 식사시간, 행복은 절정을 이루었다.
후 불면 날아다닐 것 같은 길쭉한 쌀 대신, 제대로 익은 한국산 쌀밥과 김치, 게다가 장조림 맛과 흡사한 소고기 스테이크가
식탁에 올랐던 탓이다. 게다가 수자선생이 싸주신, 아껴두었던 물김치까지 꺼내서 먹었다. 드디어 비상용 한국식품이 동이 났다.
모르겠다, 어찌되겠지.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지겠지. 맞다 맞아, 아끼면 뭐 된다카더라.

배는 울진에서 회항하여 다시 지그재그로 먼 바다로, 가까운 바다로, 항해하고 있다.
하늘이 서서히 다홍빛으로, 다시 흐린 자주색이었다가, 옅은 보라색으로 서서히 물든다. 그 겹친 색깔위로 주홍색 동그란 해가
선명하다.
동해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저리도 참혹하게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선상 인터뷰-③> -그린피스 활동가 인도 출신의 변호사
‘딜립 꾸마르’

어딜
가나 다수의 무리속에는 말없는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의 가치가 불분명한 사람. 그러나 꼼지락거리며
제 맡은 일은 다해내는 사람.
한국의 환경연합 활동가들까지 모두 14개 국적이 섞여있는 이 배에도 수다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꼼쟁이가 있고,
더펄이가 있는가 하면, 잘 삐치는 사람도 있다.
딜립은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유난히 숨은 듯 보이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서른
살인데 결혼은 했나.

했다. 딸도 하나 있다. 아내도 변호사이다. 가족은 내 몸의 일부가 아닌가. 매우 그립고 보고 싶다.

변호사라고
들었는데, 왜 그 직업을 갖지 않고 그린피스에 들어와서 힘든 일을 자청하시나.

봄베이 대학에서 정치학과 국제학 석사를 했고, 이어서 변호사 자격을 땄다. 그러나 돈을 벌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그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다.
변호사 자격과 학위를 따기 전부터 인도 내에서 인권단체 관련한 NGO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1999년 구자라트 지역에서 심각한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화공약품처리 공장에서 장기간 불법 투기해 토양과
물을 오염시켜 이를 조사하여 폭로하였다.
이때 같이 일을 하던 동료가 그린피스 회원이었는데 그의 소개로 뭄바이에 입항하는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자원봉사(통역)을
맡으면서 인연이 되었다.
참고로 인도에는 지난 2000년에 그린피스 인도지부가 생겼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나 보다.

(씨익 웃음) 사실이다. 대학 때도 전체 수석을 거의 계속했었다.

고향이
바닷가도 아니고, 내륙지방 출신인데 긴 항해에 선원생활까지…힘들진 않나.

어촌출신도 아닌데 첫 항해 때부터 배멀미도 한번도 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도 놀랍다. 어릴 때 ‘작 쿠스토’라는
프랑스 해양생물학자의 책을 읽고 나도 저이와 같은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특히 간디선생이 ‘신의 아이들’이라는 별도의
계급을 부여한 ‘하리존’계급에 대한 처우는 언제쯤 개선이 될 것 같은가.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6,000년 전부터 이어진 오래된 문화다. 처음의 카스트제도는 지금처럼 고정된 계급관념이 아니라,
부족에서 각각 정해진 소임을 뜻하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최상위 계급으로 알려진 브라만도 당시에는 부족을 가르치는
선생, 한국의 전통으로 치면 훈장선생과 비슷했다. 임금도 받지 않고 지혜를 나누는 사람. 그래서 각각의 소임이나
능력에 따라 계급의 이동도 가능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서 고정화 되어버려 하층계급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폐단을
낳았다.

우리는 겨우 50여 년 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간디선생도 말했다. 법률이나 정치로 사람의 사고를 바꿀 수는
없다. 지금도 많이 좋아진 상황이고, 앞으로도 천천히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도인의 관점(웃음)에서 말하자면, 지금의 환경문제는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으로 인해서 초래된 환경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풀어야 한다.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어쩔 수 없고,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나오면 그때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당면한 사람이 해결해야하고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해당 사업들은 중단해야한다.
환경문제는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 뿐이다.
현재의 삶의 방식은 낭떠러지로 가는 지름길이다.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통역/ 안치현
글/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윤미숙 위원(거제환경연합)
사진/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이성수 위원(월간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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