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습지 해양 소식

[항해일지-⑤]”그 많던 고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첨부파일 열기첨부파일 닫기

‘선박생활은 감옥과 같다, 한가지 추가되는 것이 있다면 익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 일등항해사 오스카가 식당 알림판에 분필로 적어 놓은 글이다.

제주도를 한바퀴 돌고 있다. 시속 7노트, 오늘은 총 140km에 이르는 해안을 돌며 고래를 관찰했다.
많을 때는 열 네개의 눈동자가, 적게는 여섯 혹은 여덟의 검고 노란 눈동자가 해안을 훑고 있다.
날씨는 왼종일 흐리다. 바다 빛깔도 당연히 흐린 회색이다. 회색 수면에 어쩌다 엷은 햇살이 비치면 그 번들거림은 마치 기름기가
잔뜩 묻은 프라이팬 같다.

제주도에 살적에 서귀포 해안에서 큰 무리의 돌고래떼를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직장 동료들과 낚시를 하다말고, 졸음이 가득한
따뜻한 시간 (아마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실눈이 되어 먼바다를 응시하다보면 거기, 살아서 펄펄 뛰는 파도가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파도가 아니라 돌고래 무리였다.
매우 빠른 속도로 점프를 계속하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려나가는 돌고래떼를 만나면 당분간 낚싯대를 접어야 했다.
“야, 쟤들 좀 봐라, 백 미터 달리기 대회라도 하나부지?”
“아니여, 저거엄마가 밥먹으러 오라고 부릉께 글치, 왜 우리 어릴때도 저러지 않았냐? 누구야 밥 묵자아, 그러면 비석치던
돌 저만치 던져버리고 냅다 달려들 갔잖여.”

그 생생하고 역동적인 유영을 우리 모두는 보고 싶었다. 한 무리의 돌고래 떼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면서 온종일을 보낸다. 그러나
그리운 것은 언제나 저만치 멀리 있지 않던가.

그 많던 고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다 먹어버렸다. 사람들은 우선 돈이 되는, 덩치가 큰 고래부터 잡기 시작했는데 거대한 대왕고래(30m
이상)가 주로 그 대상이었다.
대왕고래가 사라지자 다음으로 큰 참고래, 참고래가 줄어들다 다음 순서인 보리고래로 이어졌다. 덕분에 참고래의 95%가 감소하였고,
보리고래의 수도 75%나 감소한 상태이다.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마지막 차례는 돌고래가 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돌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아서 먹고 있기도 하다. 돌고래를 몰이식으로 쫓아서 내만에서 죽여 처리하는데 만 전체가 온통 붉은 피로 출렁이는 사진을 보면서
‘피바다’란 게 저런것을 말하는구나, 실감하였다.

마침내 1982년 세계 각국은 포경산업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고래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바법은 고래잡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라는데 합의하였다.
그런데 포경금지 이후, 20년간의 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체수는 좀처럼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고래는 다른 물고기들 처럼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한다. 보통 한번에 한마리씩 새끼를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
2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좀처럼 개체수가 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그들이 사는 해양환경은 위험요소가 나날이 발전하여 어미는 물론,
그나마 낳아서 이 삼년씩 길러놓은 새끼를 잃기 쉽상이다.
그물에 걸려서 익사하고(고래는 숨을 쉬는 포유동물임) 해양오염으로 병이 들어 좌초되고, 두꺼운 지방층엔 유해화학물질이 쌓여 건강한
유전자를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은 제주근해를 조사하는 까닭에 손전화가 작동되었다. 선명하게 올라가는 송수신 안테나를 보면서 모두들 입이 귓가에 걸린다.

각시한테로, 연인에게로, 부모님께로 저마다 안부를 전하느라 아랫갑판이 언어들로 부산하다. 메일을 하루에 딱 한번, 오후 여덟시
경에 잠시 보낼 수만 있기 때문에 바깥 소식들이 고팠던 탓이다. 단절과 소통의 의미를 새삼 절감하는 시간이다. 유일한 외부 연락망인
손전화마저 통화권 밖에 있으면 우리는 잠시 버려지고 잊혀진 사람이 된 느낌이다.

지루하고 힘들다는 생각을 서로 숨기고, 열심히 생활하려는 한국측 참가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중에서도 가장 막내, 서울환경연합에
입사한지 일주일만에 레인보우워리어호의 이번 조사에 주방장 보조로 발탁되어 하루종일 주방에서 일하는 막내 ‘삼순이'(강은주)의
밝은 웃음이 압권이다. 그녀는 별명메이커다.
근엄한 데릭선장은 ‘늙은 백상어’, 이태리 출신의 그린피스 활동가 오스카의 영어식 발음을 본따서 ‘인뽀르딴뜨'(인포턴트), 50년된
담배케이스를 소중히 갖고있는 노년의 엔지니어에겐 ‘타피오영감’, 워낙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인 환경운동연합 마부장은 어느새 ‘마님’이
되어 있는가 하면, 진중파인 환경스페셜 피디는 ‘개그피디 이피디’로 호칭하고 있었다.
정작 그녀는 자신이’올리버’ 혹은 ‘고방오리’로 불린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뽀빠이 만화의 올리버나 고방오리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녀의 모습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치고 시들시들해진 분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우리를 웃게 만든다.

오늘 식당의 알림판에는 처음으로 한국어가 씌어져 있다.
‘진정한 성공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에머슨.

<선상 인터뷰-①>-카타리나
니토(그린피스 활동가)


국적은 어디신가.
이태리의 북쪽 지방 밀라노.

그린피스 활동가가 된지는 얼마나 되었고,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선원으로써 맡은 임무는?
칠년차를 맡고 있고, 이 배에서는 갑판을 맡고 있다.

당신은 첫눈에 워리어(전사)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키도 크지 않고 덩치도 작은데 힘들지 않은가.
(웃음) 나는 원래 바다를 좋아해서 그린피스에 오기전에도 보트 관련 일을해왔고 작은 배의 선장이었다. 국제 요트경주에도
나간적이 있다.

주로 어떤 캠페인에 참여했었나?
많은 캠페인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스나미가 몰아친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벌였으며, 수마트라의 산림파괴에 항의하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실례지만 결혼했나? 가족은 어떻게되나? 자주 만나기는 하나?
서른한살인데 결혼을 아직 안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웃음), 부모님과 오빠가 이태리에 계신다. 일년에
한두번 정도 만난다. 때문에 부모님들은 내가 그린피스 활동가 중에서도 선원이 된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지는 않으신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혹은 지향점이 있다면?
자연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친환경적으로 사는 삶이다. 나는 이일을 하면서 매순간 행복하다고 느낀다. 사실이다.

글/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윤미숙 위원(거제환경연합)
사진/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이성수 위원(월간 함께사는길)

admin

(X) 습지 해양 소식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