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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④]”고래야. 너무 커서 표적이 되는 바다고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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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시시 눈을 비비고 갑판에 나서서 고개를 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름다운 서귀포항. 서귀포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섶섬 인근에 정박한 것이다.
남쪽에서 봐야 제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는 한라산이 하얗게 눈을 이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제주의 전설적 여신인 설문대할망! 우리가 왔수다게. 잘 살암수꽈? 어제는 예, 파도가 높앙 하영 고생핸마시.잘 부탁허쿠다.(설문대할머니!
우리가 왔어요. 잘 지내셨어요? 어제는 파도가 높아서 정말 고생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전부터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손님 맞이에 분주하다. 제주도의 언론과 제주환경연합 활동가들이 함께 승선하여, ‘그대들은 어인일로
왔는고?’ 라는 기자회견을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취미가 ‘쓸고 닦고 조이기’인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오늘따라 더욱더 열심이다.
하다못해 난간 손잡이까지 닦아낸다. 평소에 세수를 잘 안하는 대원도 머리카락에 물기를 묻히고 세수한 티를 내며 싱긋 웃는다.


아침 아홉시. 배의 크레인이 작동하여 고무보트 두 대를 내린다. 제주손님들을 모시러 출발.곧 제주해경 선박과 함께 십여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도착했다.
언뜻 창고로 보이지만 그래도 ‘브리핑 룸’인 고물아래 화물칸에 모두 모여서 기자회견을 하였다. 데릭 선장의 환영인사와 함께,
환경운동연합 고래모니터링 팀장의 고래조사의 의미 소개, 리비의 한국연안의 고래에 관한 간략한 브리핑에 이어 데이브의 그린피스
활동소개 등이 이어졌다.
“한국의 어민들은 고래가 어장환경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데이브가 말했다.
“수산자원 감소 등으로 인한 어민들의 고충을 이해는 할 수 있으나, 고래 때문에 해양 어족자원이 파괴된다는 말은 딱따구리
때문에 산림환경이 파괴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잠시 떠들썩한 선상이 모두가 떠나고 나자 다시 적막함과 긴 한숨들이 교차한다. 남은 일정과 고생에 대한 걱정들이리라.
오전 열 한시 이십분, 배는 서귀포항을 출발하여 성산 일출봉을 돌아 우도를 지나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린피스 활동가이자 액션코디네이터인 데이브는 속눈썹이 노래서 특이한 인상을 풍긴다. 그린피스에서 23년간 일했다고 하니, 젊음을
다 바친셈이다.
문득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활동비로 연명하며, 그나마 개인적인 치부를 추구하는 삶이 아님을 긍지로 삼고 바보들처럼 열심히 일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늘 생계와 노후대책에 고민하는 우리의 활동가들이 떠오른다.

고래야. 너무 커서 표적이 되는 바다고래야! 어쩌면 우리세대에 영원히 작별할지도 모르는 귀신고래야.
지구상에 고작 이백 여마리 남은 귀신고래야, 너는 영원히 귀신이 될래나? 오늘이 엿새 째. 오늘도 너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서귀포 연안에 자주 출몰하는 돌고래들도 샛바람에 다들 고요한 곳으로 피신했는지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일반시민 문선생이 칼칼한 찬바람속에 고래를 찾다가 경상도 토백이 말로 거든다.
“샛바람이 불면 고기들도 골 깨진다고 안나온다!”
배의 선두에서 찬바람속에 본의 아닌 눈물을 흘리면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훑어댔으나 해가 질 때까지 고래 비슷한 생물체도 만나지
못했다.

제주의 바닷빛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 짙은 에머랄드 빛 바다는 서귀포 앞바다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그린피스 활동가들도
물빛이 아름답다고 탄복한다.
바다에 둥실 보름달이 떴다. 선미에 높게 솟은 돛대와 초저녁 달이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이루어 흔들리며 몹시 아름답다. 부산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파도와 바람에 작신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피로하다. 배에서는 새나라의 어린이들처럼 일찍 잠들게 된다. 왜냐, 텔레비젼도 없고,
신문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니 컴퓨터를 보고 시간을 보낼 수가 없고, 조명이 어두워서 책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적는 일이 마치 우주선에서 작업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읽는 사람들은 차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배가 일렁거리는데다 시선을 활자에 고정시키면 속이 마구 울렁거려서 몇번이고 멈추고 토기를 참으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을. 그러다가
한가지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윙크를 하면서 자판을 두들기면 좀 낫다는 점이다. 즉 한쪽 눈을 감고 한쪽 눈만 뜨고 화면을 보는
것이다.지금도 그런 상태이다)

2005년 3월25일 발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글/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윤미숙 위원(거제환경연합)
사진/ 고래보호특별위원회 이성수 위원(월간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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