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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중]국제포경위원회 제56차 연례회의를 열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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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국제포경위원회 제56차 연례회의가 개막했습니다. 일본의 집요한 투표 매수행위 때문에 일본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의 포경 찬성국가가 회원국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어 고래보호 역사에 새로운 어처구니없는 오점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56개국 290여명의 공식적인 정부 대표와 150여명의 업저버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고래 보호를 주장하는 비정부기구(NGO)들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책회의와
기자회견을 여는 등 아주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습니다. 회의 개막 한 시간 전에 국제인도주의협회(Humane Society International;
HSI)는 기자회견을 열어 ‘해양 포유동물과 수산업의 경쟁’에 관한 과학자들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전지구적으로 수산업이 고갈 위기에 처해있는데, 일본 등의 포경 찬성국가들은 고래를 비롯한
해양 포유동물이 수산자원을 너무 많이 먹어치우기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고 있으며 이것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식량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실제 수산자원의 고갈은 고래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남획 때문이다.’라고 기자회견의 서문을 열었습니다.

▲국제인도주의협회(HSI)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해양 포유동물과 수산업의
경쟁’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다니엘 폴리 박사

보고서를 발표한 다니엘 폴리 박사와 크리스틴 캐쉬너 연구원은 ‘인류가 소비하는 수산자원의 종류와
고래 등의 해양 포유동물이 먹는 자원은 종류가 다르며 겹치지 않는다. 인류는 소형 원양어종과 기타 물고기를 대부분 소비하는 반면,
수염고래는 대형플랑크톤을 주로 먹으며, 대형 이빨고래와 돌고래들은 오징어류를 주로 먹는다. 또한 인류와 해양 포유동물들이 먹이를
섭취하는 지역을 지도로 만들어 비교했더니, 인류는 연안 근처에서 집중적으로 수산자원을 포획하지만, 해양 포유동물들은 보다 광범위한
대양에서 먹이를 섭취하기 때문에 겹치는 지역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류와 해양 포유동물이 수산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는 주장은 왜곡된 것이며, 오히려 선진국들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산자원까지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개회식에서는 개최국인 이탈리아 대표의 환영사와 새로운 회원국 소개, 의장 선출과
인사말, 회의 의제 채택 등 일반적인 내용이 진행되며 오전회의가 종료되었습니다.

오후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요 NGO들은 공동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과
국제인도주의협회(HSI)의 회장을 비롯해, 그린피스 국제본부(Greenpeace International), 세계자연보호기금(WWF),
고래와돌고래보전협회(WDCS), 카리브보전협회(CCA) 등 세계적으로 주요한 환경 및 동물보호 단체 대표들이 모였는데, 이들은
회의가 과학이나 철학에 따라 논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원조에 좌우되고 있다면서, 가난한 나라에 경제원조를 지원하는 댓가로
인류 공동의 자산인 고래의 미래를 팔아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아 일본의 투표 매수행위를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회의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업저버들

포경 찬성국가와 반대국가 사이의 설전은 오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이 회의의 주요 의사결정을
비밀투표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이에 대해 포경 찬성국가와 반대국가 사이에 날카로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일본과 그를 따르는 많은
약소국가가 강대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회원국이 자유롭게 투표하고 회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밀투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포경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각 회원국의 투표성향을 알아야 논쟁과 협상이 가능하다며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자,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는데, 회원국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
해당 국가의 대표가 찬성(Yes)인지 반대(No)인지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국제회의를 처음 보는데다가,
그 결과가 앞으로의 회의 양상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회원국의 의사를 하나하나 물을 때마다 회의장 뒤편에 자리한 NGO 업저버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안도와 탄식의 한숨을 번갈아 터뜨렸습니다. 초반에는 일본의 제안을 지지하는 국가의 숫자가 더 많다가, 마지막에 반대하는 나라가
더 많아 결국은 찬성 24, 반대 29로 부결되었습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박한 순간이 지나고 결과가 나쁘지않자 NGO들은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국제인도주의협회(HSI)가 제작한 ‘해양 포유동물과
수산업의 경쟁’ 보고서

이후에는 세계의 고래 개체군 숫자에 대한 과학위원회의 보고와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이
자리에서도 두 편 사이의 첨예한 논쟁과 대립이 계속 되었습니다. 특히, 100여마리 만 생존하고 있을 정도로 멸종위기에 처한
북서태평양 귀신고래 보호를 위한 결의안 채택이 논의될 때에 또 한번의 날카로운 대립이 있었습니다. 이 귀신고래를 보호해야하는데,
이들의 주요 서식지인 사할린 일대의 연안에서 석유와 가스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귀신고래의 보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야기에,
러시아 대표는 개발로 인한 악영향의 증거가 부족하다며 강력히 반발했고, 여기에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북서태평양 귀신고래
회유지역 국가의 참여가 부족한 상태에서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독일이 이러한 결의안을 제출했다고 비판하며 일본이 거들었습니다.
결국, 이 결의안은 이를 제안한 영국 대표가 내용을 약간 수정한 다음 내일 아침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첫날 회의를 마쳤습니다.

울산 앞바다를 비롯한 한국의 동해안 일부 지역은 바로 이 북서태평양 귀신고래가 이동하는 길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귀신고래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오호츠크해 일대에서만 100여마리가 발견될뿐
우리나라의 동해안에서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입니다. 오늘 밤에는 이러한 결의안이 통과되고 귀신고래 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관심과
노력이 모아지기를 꿈꾸어 봅니다.

작성일/ 2004년 7월 19일
글, 사진/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국제연대국 마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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